"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

20년 전 이맘때 신용카드 광고를 타고 전국적으로 유행한 말이다. 꽤 오래된 유행어인데, 신년이면 여전히 들려온다. 계좌 잔고가 행복의 절대적 지표로 치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많이 불리라는 기원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듣기 괴롭다. 그 쉬운 결론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첫 번째, 이 인사는 '부자'인 자본가들이 자신의 직원에게는 하지 않는 인사라는 것이다. 자본가는 직원이 자신의 직원으로 남아있는 한 '부자'가 되는 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지 않기를, 부자가 되기 위해 그리 서둘지 않기를 바란다. 직원의 월급 인상을 억누르면서 부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일 테니까.

두 번째,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결코 부자가 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단 이미 '부자'인 이들끼리는 이 인사말이 불필요하다. 부자가 아닌 이들이나 주고 받는 말일 따름이다. 다음은 귀납적 증명: 주변을 돌아보라. 저 광고가 나온 후 20년이 지났다. 부자 되라는 '덕담'을 주고받은 이들 중 부자가 된 사람이 한 명은 있는가.

'부자 되세요'라는 말 뒤에는 다음 문장이 생략돼 있는 셈이다. "당신이 부자가 된 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아니까 한 번 해본 말이에요." 그러므로 '부자 되세요'는 진심을 담은 새해 인사가 되기 어렵다. 이 말을 던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듣는 이에 대한 기만일 따름이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는 지난해 회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하지 못했다. 해를 넘겼다. 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가 중대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지 22일째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때로는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운 이 땅의 노동 현장에 서 있는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낸다.

"새해엔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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