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배워서 남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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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배워서 남 주자”
  • 김덕남 주필
  • 승인 2021.01.03 19: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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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뜸 의술’의 큰 별, 105살 구당 김남수 선생이 남기고 간 말

‘국보(國寶)이며 문화재인 신의(神醫)’라 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조정래가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선생(이하 구당선생)’에게 보내는 존경과 찬사였다.

2011년 이상호 탐사보도 기자(전 MBC 기자)가 펴낸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라는 책의 ‘추천의 글‘을 통해서다.

‘많고 많은 환자들을 죽음의 위협에서, 아픔의 고통에서 건져 생명의 새 빛과 환희를 되찾게 해 주시는 구당 선생은 하나도 과장하지 않고 우리의 국보적 존재이며 살아있는 문화재’라고 썼다.

그가 출연했던 어느 TV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그분은 명의(名醫)를 넘어서 신의(神醫)라고 스스럼없이 말했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신기한 임상경험에서 체험한 진솔한 고백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오른쪽 어깨를 한 번의 침, 서 너 차례의 뜸으로 완치돼 못쓰던 오른 손으로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기적을 체험 했다”고 놀라워했다.

여기서 ‘구당 선생’의 신기에 가까운 침뜸 의술의 진수(眞髓)를 읽을 수 있다.

무극보양뜸의 창안자이자 침뜸의학의 대가인 구당 선생이 지난주(12월27일) 고향 (전남 장성)에서 105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구당 선생의 떠난 후 선생의 족적과 업적, 신비한 침뜸 의술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갖은 질시와 방해, 법적 압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소처럼 우직하게 뚜벅뚜벅 침뜸 의술에 매진했던 삶의 궤적이 돋보이고 눈물겹기 때문이다.

선생은 1915년 생이다. 아버지로부터 한학과 침구를 배웠다. 28세이던 해인 1943년 서울 동대문에서 ‘남수 침술원’을 열어 본격적인 침술의료의 길을 걸었다.

해박한 침과 뜸의 이론으로 중국 베이징 침구 골상학원 객좌교수와 녹색대학 대학원 석좌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의사회 등 일부 한방 기득권세력과 자본 권력,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력의 침묵으로 배척당하며 침사자격이 정지 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 2009년에는 미국으로 ‘의료 망명(?)의 길’에 오르기도 했었다.

미국 조지아 주 정부는 한국에서 핍박받는 구당 선생을 초빙하여 합법적 임상치료 허가를 내줬다. 안정적인 체류비자 발급까지 해 줬었다.

침구는 침과 뜸의 자극으로 자연 치유력을 이끌어내는 치료법이다.

1998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3여백종의 질병을 침뜸술로 치료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었다. 사실상의 국제공인의 의술이다.

이와는 별도로 서구의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면 받아들여 이용하려는 대체의학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침술을 비롯한 동양의학과 민간요법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각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침뜸 의학을 연구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침뜸 의학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이를 배척하고 서양의학의 본고장에서는 환영받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일부 옹졸한 한방 의료계의 빗나간 욕심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11월 ‘침사자격으로 뜸 시술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용인 할 수 있다’며 구당 선생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에는 대법원에서도 서울시가 구당 선생에게 내렸던 ‘침사자격 정지 처분’에 대해 ‘부당하다’고 확정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구당 선생은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면서도 무료 침뜸 사회봉사와 후진 양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년 교육과정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한 침뜸 교육원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6000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구당 선생의 ‘침뜸 의지와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제주에서도 지난 2014년 신구범 전제주지사와 고계수 요법사(도보여행가) 등이 모여 구당 선생의 승인아래 ‘제주 침뜸 교육원’을 개설하고 지금까지 100여명을 배출했다.

구당 선생이 이끌었던 이들 ‘뜸 사랑 봉사자’들에 의한 침뜸 무료 시술 혜택을 받은 인원은 1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침뜸은 구당 선생에게 ‘종교적 신앙’이나 다름없다.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보람이고 행복”이라고 했다.

구당 선생은 살아생전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생활신조가 ‘배워서 남 주자’인 것이다. 배우고배우고 익혀서 그것을 남을 위해 행사하자는 뜻일 터였다.

‘배워서 남 주자’는 가르침은 가진 것을 모두 나누자는 무욕의 삶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선의 공동체를 위한 낮은 울림이라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비방(秘方)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권유에도 ‘무극보양뜸’과 ‘화상침’등 비장의 비법을 남김없이 공개하여 공유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픈 이들을 위해 남김없이 침뜸 무료 의술을 펼쳐온 구당 선생의 ‘70여년 무한 침뜸 의료봉사 족적’은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구당 선생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부르는 이들도 많다. 52년간 아프리카 정글에서 흑인을 위해 의료 봉사를 했던 슈바이처와 질병에 고통 받는 가난한 이들에게 70여 년 간 침뜸 무료 시술 봉사를 해왔던 구당 선생을 치환(置換)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슈바이처를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라 한다면 구당 선생도 질병으로 고통 받는 ‘병든 이들의 성자’로 불러 마땅한 일이다.

노동해방 시인 박노해도 구당 선생을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시를 쓴 바 있다. 구당 선생이 의료봉사를 시작한 지 20주년 되던 해인 2004년, 구당 선생의 덕행을 노래한 헌시(獻詩) ‘우리들 나눔의 성자여’가 그것이다.

‘오늘은 누가 힘든가

오늘은 누가 아픈가

느린 걸음으로 찾아다니며

따뜻한 맨손으로 어루만지는 사람

물은 세 걸음만 걸어도 스스로를 맑게 하듯

그대 몸 안에 숨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

아픈 그 자리에 믿음의 나무를 심는 사람

<중략>

그대 부디 건강하라

그대 어서 푸르러라

그대 첫 마음의 등불을 밝혀 들고

앞이 안 보이는 이 병든 세상에

생명 평화 나눔의 침뜸이 되라고

내 아픈 자리마다 작은 생명 불을 놓으시네

작고 강인한 은빛 침을 놓으시네

내가 잊고 달려온 지혜를 일깨우시네

오늘은 누가 힘든가

오늘은 누가 아픈가

느린 걸음으로 찾아오시는

오, 우리들 살림의 손길이여

우리들 나눔의 성자여‘

영면한 구당 선생을 기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구당 선생이 차곡차곡 쟁여놓고 떠난 ‘침뜸 의학’의 정수(精髓)를 현대 의학과의 협진이나 통합진료에 엮어 고통 받는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구당 선생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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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21-01-04 14:09:23
많은 약들이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것 중에서 유효성분을 뽑아 내어 그걸 화학적 방법으로 대량생산하는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진단 내지 치료법이 현대의학의 범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종두도 영국의 민간에서 소의 수두에 감염되면 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민간 요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침이나 뜸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이걸 어떻게 과학화 할 것인가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어떤 병 내지 증상에 효과가 있으며, 그 효과는 다른 치료법에 비해 얼마나 효과가 더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적어도 위약효과(僞藥效果 . placebo)보다는 효과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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