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저물어가는 신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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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저물어가는 신화시대
  • 제주투데이
  • 승인 2021.01.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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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⑰오름허릿당 하로산또-1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오름허릿당의 당신은 백주또와 소천국의 열여덟째 막내아들이다. 열여섯째 아들인 궤네기또가 영웅적인 스토리를 써내려갔으니 막내아들은 또 어떤 편력을 보여줄까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어려웠다. 하기야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막 자료들을 뒤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궤네깃당 신화인 경우 제주신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듯이 말이다. 

오름허릿당 당신이 송당계 신이라는 것조차 신당 조사 책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2008년도에 발간한 <제주신당조사(제주시편)> 자료를 보면 오름허릿당의 당신은 ‘서편또 김씨하르방, 동편또 오름허리 일뤠중저 송씨할망, 요왕또’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의 계보는 ‘해신계’라고만 되어 있다. 앞쪽에 제시한 신당 조사 해설에는 송당계 신들의 계보로 ‘18남 제주시 도두동 오름허릿당’이라고 되어 있는데 구체적인 조사 자료에는 그러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성기의 <제주도 무가 본풀이사전>(민속원)을 뒤졌고, 마침내 당신(堂神)이 ‘한라산에서 솟아난 하로산또’라고 구술한 자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궤네깃당본풀이에 비하면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이거라도 감지덕지다. 짧은 자료라도 당 신화가 있으면 여러 가지를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당들은 당 이름 정도만 남아 있고, 그러한 당들도 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오름허릿당 하로산또의 행적은 그다지 하로산또답지 않아서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그의 행적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또한 시대의 반영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름허릿당의 당 본풀이 속에서 시대의 어떤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구술 자료를 이야기로 형식으로 풀어보았다. 

오름허릿당의 제단과 신이 드나드는 구멍인 궤. 돌멩이로 막아놓았다. (사진=김일영 작가)
오름허릿당의 제단과 신이 드나드는 구멍인 궤. 돌멩이로 막아놓았다. (사진=김일영 작가)

오름허리 좌정한 할마님(할머님의 옛말;편집자)은 송씨 할마님이고 하르바님(할아버님의 제주어;편집자)은 한라영주산에서 솟아난 하로산또이다. 하로산또는 부모에 불효한 죄로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던 하로산또가 도들봉 오름에서 송씨 할마님을 만났다. 송씨 할마님은 갈 데 올 데 없는 하로산또를 받아들여 부부연을 맺었다.

송씨할마님과 하르바님이 부부로 살려하니 먹고 살 방도를 찾아야 했다. 부부가 손을 잡고 도들봉 오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름 아래 집도 많고 인민도 많고 후손들도 많아서 잘만 하면 무슨 수단이 날 듯하였다. 송씨할마님과 하르바님이 날을 잡고 오름 꼭대기에 앉아 기도를 올렸다. “산신령이시어, 우리한테 영검한 힘을 주십서”

마을 사람들이 이런 광경을 발견하고는 수군거렸다. “어떵허연 오름에 전에 없이 백발 노부부가 나서 빌엄신고? 거 참 이상한 일이여.” 마을 유지들이 모여 앉아 의논하였는데, 오름의 어른들한테 신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니 마을의 큰 어른으로 대접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마을사람들은 오름 허리에 꽃을 심고 탑을 쌓은 후에 송씨할마님과 하르바님을 마을의 본향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양반이 ‘오름에 뭔 귀신이 있겠느냐?’고 사람들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본향당에 가서 당 울타리도 허물어버리고 나뭇가지도 끊어버리며 훼방을 놓았다. 이에 송씨 할마님과 하르바님이 분노하여 풍운조화를 일으켰다. 그때부터 어린 아이는 허물(피부병)도 많이 나고, ᄌᆞᆷ수(해녀)는 물에 들었다가 죽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보제기(어부)도 배 타고 바다에 가면 바람이 일어나 배가 뒤집어져 버렸다. 그러니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송씨 할마님과 하르바님은 ‘이 마을에는 좌정할 곳이 못 된다.’라고 하면서 떠나려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오름 아래에 다시 신당을 설립하고 송씨 할마님과 하르바님을 요왕또와 함께 모시기 시작하였다.

이런저런 소소한 역정을 거친 후에 백주또와 소천국의 열여덟째 막내아들은 도두봉의 오름허릿당에 좌정한다. 그런데 열여덟째 아들이 좌정하는 과정은 그의 형님들과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부모님한테서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한 마디로 노숙자 내지는 게와지(거지)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이를 불쌍하게 여긴 송씨할마님이 거두어주니 비로소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명실은 아이의 명을 길게 해 달라는 기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명실은 아이의 명을 길게 해 달라는 기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송씨 할망은 애월지역과 제주시 서부 지역에 광범위하게 좌정하고 있는 여신으로 아기를 낳게 하고 건강하게 키워주는 산육신이다. ‘할망’이라는 용어는 신화에서 ‘할머니’라는 의미보다는 ‘여신’의 의미로 해석하는 게 맞다. 그래서 제주의 창조신을 ‘설문대 할망’이라고 하고 아름다운 농경신 자청비를 ‘세경 할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소천국의 막내아들 하로산또는 거지로 떠돌다가 이 송씨 할망에 의해 구제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부부신은 도두봉에 좌정하여 신으로 대접을 받는데 그 과정 또한 녹록하지 않다. 그들은 한라영신에게 ‘영검(영험)’을 달라고 빈다. 본래 신으로서 영검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평범해졌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마을에서 센 영감, 그러니까 똑똑하다거나 세력이 강한 사람이 ‘오름에 뭔 귀신이 있느냐?’고 하면서 당의 울담도 허물어버리고 신목의 가지도 꺾어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먹물 좀 먹었다는 사람이 ‘미신’을 내세우면서 사람들의 신앙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그러자 신이 노하여 자손들에게 허물, 그러니까 피부병도 앓게 하고, 물에 드는 잠수도 죽게 하고, 어부들의 배도 뒤집어 버리는 풍운조화를 주었다. 이렇게 흉험을 주고 나서야 자손들이 다시 잘 모시게 되었다는 결론이다. 

보통 신들이 좌정하고 나서 자손들에게 대접을 받기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하여 풍운조화를 일으킨다는 모티브는 흔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오름허릿당 당신의 노여움과 풍운조화가 어쩐지 최후의 발악처럼 느껴져 안쓰럽다.

도두봉에서 바라보는 노을.
도두봉에서 바라보는 노을. (사진=제주투데이DB)

신을 모시고 신에 의지하여 살던 시대, 그러니까 신화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게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신들의 노여움에 의한 풍운조화를 겪고 나서 다시 신으로 모신다는 결론은 사실 해가 저무는 순간의 노을처럼, 퇴장하는 신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사람들은 1만8천 신들을 신앙하지 않는 시대이다. 신앙하던 신들이 신화 속에 박제되고, 박제된 신들마저 흐르는 세월에 풍화되어 바스러지고 있다. 그래도 오름허릿당의 산신은 미약하게나마 길지 않은 당 본풀이 속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해 본다.                              

#지전물색이 화려한 도두봉 오름허릿당 

지난해 2월 둘째 날, 도두봉 오름허릿당을 찾았다. 이곳은 전에 한 번 다녀간 곳인데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첫 번째 기행 때 워낙 많은 당들을 답사 계획했던 터라 잠시 둘러보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름허릿당을 포함해서 세 군데만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하고 여유 있게 움직였다. 겨울 끝자락인데도 드물게 화창하고 따뜻한 것이 봄나들이 나온 듯 마음이 사뭇 즐거웠다.

소천국의 열여덟째 아들이 좌정하고 있는 오름허릿당은 이름 그대로 도두봉 오름의 허리께에 있다. 오름 입구 장안사 절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위치하고 있는 신당이다. 바로 옆에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수시로 운동하러 드나드는 사람도 많지만 들은 바가 없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을 것같이 살짝 숨겨져 있었다.

오름허릿당 신목 팽나무 가지마다 지전물색이 걸려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오름허릿당 신목 팽나무 가지마다 지전물색이 걸려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어로 ‘오시록허게(잘 드러나지 않게 가려져 아늑하고 포근하게)’ 자리잡은 당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지전물색이 반기듯 모습을 드러내 한순간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물색들은 이 당의 주인공이 당연 ‘송씨 할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지전은 하얀 종이를 오려 만든 저승 돈이고, 물색은 주로 여신에게 바치는 화려한 옷감이나 저고리 치마이다. 그러니 당 안은 온통 송씨 할망에게 바친 제물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송씨 할망이 산육신이라 그런지 아이의 명을 길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바치는 명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제단 옆에는 여인의 고무신과 함께 아이의 꼬까신까지 곱게 놓였다. 당 안 신목 팽나무 가지마다 지전물색이 걸려 있었는데 당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기도를 올리고 갔는지 그 행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제단 위 양쪽에 있는 궤(구멍)에는 음식물이 가득 담겨 있어 아직도 사람들이 자주 오고 있고, 다녀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궤는 신이 드나드는 통로의 의미로 제를 지내고 난 후 음식을 그곳에 담아 놓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당은 제단과 궤와 튼튼하게 쌓아놓은 당 울타리 등이 제대로 갖추어진 신당이었다.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작가 여연.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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