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읽기]병든 여우의 즐거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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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병든 여우의 즐거운 숲
  • 노지
  • 승인 2021.01.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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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장애를 신의 형벌인 양 공포스러워 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졌다는 종교적 언술에 귀가 솔깃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떤 경우에도 신의 장애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병든 여우 한 마리가 있다. 온몸의 관절이 굽거나 오그라드는 관절굽음증 여우.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숲을 헤맨다. 다른 여우들에 비해 먹이 찾는 일도 수월하지 않을 테고. 숲을 헤매다가 다른 짐승들에게 쫓긴다면? 얼마 못 가서 물어뜯기고 그러다 피 흘리며 죽어갈까. 어차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텐데, 그렇게 사는 건 죽느니만 못한 게 아닐까.

실제로 이 여우는 총에 맞아 죽었다. 캐나다 야생동물 보호단체가 밝힌바, 마을 주민은 병들어 보이고 절룩거린다는 이유로 총을 쐈다. 일종의 안락사라고 할까. 그러나 부검결과 여우는 짐작했던 것과 다르게 근육량이 충분고, 위장에 음식물도 가득 차 있었다. 여우는 여우대로 잘 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사살이라는 방식으로 그 여우의 생을 응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여우를 사살한 주민의 선의(?)를 믿어줄 수야 있다. 불구의 몸으로 견뎌내기에는 현실의 삶이 가혹하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꽤 광범위한 동의가 이뤄지고 있으니까. 병 든 여우를 쏜 사람은 여우가 그렇게 사는 건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을까. 여우를 죽여서 그 여우의 생을 응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나. 

이번에는 아픈 아이를 상상해보자. 관절굽음증 여우 말고, 관절굽음증에 걸린 다섯 살 여자아이의 생애는 어떨까. 언니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방, 아이는 자기도 언니들처럼 부기우기 댄스를 추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꿈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몇 번이고 고꾸라진다. 자꾸만 주저앉는다. 그 방에 딱 한 명만 그런다. 그래서 아이는 알게 된다. ‘아, 이것이 장애구나!’ 자라면서 아이는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너는 원숭이처럼 걷는구나, 개처럼 먹는 것 같아, 가재 같은 손을 가졌네, 이제 보니 닭이나 펭귄을 닮았어. 그뿐이기만 할까. 아이가 들은 많은 말들 가운데, ‘그렇게 사는 건 죽느니만 못해’ 따위의 말은 없었을까. 사람들은 이 아이에게 동물을 빗대어 말하는 데 서슴없었지만, 이 아이를 죽여서 응원하지는 않았다. 여우와 아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우와 달리 언어적 동물인 이 여자아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자신의 책 『짐을 끄는 짐승들』에 비장애중심주의 아래에서 동물과 장애인이 같은 종류의 억압을 받아왔다고 쓴다. 그는 수나우라 테일러다.

손짓으로 간단한 언어생활이 가능한 침팬지들이 있다. 침팬지의 언어적 능력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다. 수어를 사용해서 담배와 간식을 달라고 하거나 실험실 우리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면,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지 말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연구대상에서 면제되는 침팬지들이 생기기도 한다. 운이 좋은 경우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 옮기, 오월의봄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 옮기, 오월의봄

“어떤 동물의 언어나 소통능력이 어째서 그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게 되는가? 미국 수어를 모르는 침팬지는 외롭게 감금되고 실험당하는 삶을 선고받는 반면, 수어를 쓰는 침팬지는 어째서 해방을 촉구하는 대중적 항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수어가 가능한 침팬지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어를 쓰는 장애인들에 대한 이중적 태도까지 겨냥한다. 유인원들의 몸짓은 자기를 표현하는 특별한 재능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를 자신들의 언어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은 동물과 장애인을 결핍된 대상으로 바라본다. 언어적 생활이 가능하고 장애가 없는 동물의 몸이 아니라면 '죽느니만 못한 존재'로 취급해버리기도 한다. 

『짐을 끄는 짐승들』의 부제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이다. 동물과 장애는, 비인간중심주의 기준에 따르면 열등하거나 결핍된 존재들일 뿐이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한 바구니에 넣고, 인지상정 운운하는 입들을 닫게 만든다. 의존하는 짐승들, 보살핌을 받는 짐승들의 목소리들을 듣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고백도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돌이켜보건대 나는 비장애중심주의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인간이 모든 영역에서 동물보다 우위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 없고, 어린 시절에는 장애를 신의 형벌인 양 공포스러워 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졌다는 종교적 언술에 귀가 솔깃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떤 경우에도 신의 장애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또한 나는, 인간은 언어를 허락받아 생명체의 최고 존엄이 되었다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믿어’ 왔다. 이것들은 나의 상식이었다. 

따라서 관절굽음증 여우의 즐거운 숲 생활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키우는 개가 꼬리를 흔드는 동시에 이를 드러내고 짖는 이유를 알고자 애써 본 적이 없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언어세계가 왈왈왈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거나 기록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고작해야 인간의 언어 한 종밖에 구사하지 못 하는 처지라는 걸 이제야 깨우친다. 나와 같은 처지의 당신들도 좀 꾀어보고 싶다. 2021년은 '소의 해'다. 올해의 첫 독서로 『짐을 끄는 짐승들』을 권한다.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세상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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