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진 하로산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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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진 하로산또
  • 제주투데이
  • 승인 2021.01.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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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⑱오름허릿당 하로산또-2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기슭에 있는 오름허릿당을 답사하고 나서 도두봉에 올랐다. 야트막한 오름이어서 걸어 올라가는 데 10분이면 족했다. 오름 전체가 공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올라가는 길도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수월했다. 

따뜻한 겨울 햇살에 빨간 동백꽃이 유난히 반짝이며 시선을 끌었다. 제법 살이 오른 새 한 마리가 동백꽃잎을 쪼아 먹는 게 보였다. 까치보다는 작고 동박새보다는 큰 회색 빛깔의 새 한 마리가 우리들이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는데도 천연스럽게 여유를 부리며 도망가지 않았다. 

도두봉에서 바라본 제주 해안. 끝자락으로 길게 펼쳐진 곳이 제주공항 활주로다. (사진=김일영 작가)
도두봉에서 바라본 제주 해안. 끝자락으로 길게 펼쳐진 곳이 제주공항 활주로다. (사진=김일영 작가)

도두봉은 붉은 송이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화산 분석구인 오름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등성이가 붉은오름보다도 더 붉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송이 덩이들에 시선을 주면서 오름 꼭대기로 오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해안 풍경이 한순간에 우리를 무장 해제시켰다. 

동행한 친구가 도두(道頭)가 “‘도두봉이 바다로 툭 튀어나온 것이 섬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 바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오름 꼭대기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어찌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제주에 여행 온 사람들이 공항에 가기 전에 이곳 도두봉에 올라서 탁 트인 바다 광경을 구경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어찌하여 제주에 살고 있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다 마음먹고 길을 나서도 깊은 숲속 휴양림이나 아름답다고 소문 난 오름을 향하게 되고, 마을 뒷산처럼 평범하게 자리 잡은 봉우리에 굳이 올라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제주신화를 접하면서 나의 제주도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제주신화 속 신들의 행적을 찾아다니느라 평소 가보지 않았던 한라산 자락과 계곡, 바닷가를 누비기도 하고, 이름만 들었던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가 뒷산에 올라 동네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빛바랜 지전물색과 새 지전물색은 당의 역사를 대변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빛바랜 지전물색과 새 지전물색은 당의 역사를 대변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도두봉 전망이 좋아 조선 시대에 위급을 알리는 봉수대 터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였다.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위급을 알렸다는데, 도두봉 꼭대기에 서면 봉수대 터로 그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도두봉이 공항 가까이 있으니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수시로 볼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구경거리라면 구경거리다. 다만 비행기가 날아가는 순간에는 옆에 있는 친구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다는 게 애로사항이지만 말이다. 

도두봉에 서서 하로산또와 송씨 할망이 봉우리 아래를 내려다보던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하로산또와 송씨 할망은 집들이 많고 인민 자손이 많아 대접받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도두봉에 좌정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바닷가 마을은 옛날이야기고 이제는 카페와 호텔, 상가, 리조트 등으로 제법 화려하다. 

소박하고 한적했던 바닷가 마을은 비행기 소음으로 도무지 조용할 수 없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옆에 하수종말처리장이 있어서 확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하는 동네가 바로 도두마을이다. 하지만 상가가 밀집하고 여행자들도 많이 찾고 있어서 도두동은 부자 소리 듣는 동네라고 한다. 오름허릿당에서도 도두동 사람들의 넉넉한 살림살이를 느낄 수 있었다.

도두봉에서 바라본 비행기 이륙 장면. (사진=김일영 작가)
도두봉에서 바라본 비행기 이륙 장면. (사진=김일영 작가)

보통 없이 사는 사람들은 신당에 올 때 양초 하나 들고 와 빌기도 하고, 여기에 정성을 보태 과일을 올리기도 한다. 허나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양초나 과일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동저고리와 치마를 여신께 제물로 바쳤으니, 당 안의 화려한 지전물색이 동네 사람들의 형편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오름허릿당에는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당도 잘 관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앙은 산육신 송씨 할망에 대한 것이다. 당 안의 화려한 지전물색, 그리고 명실과 꼬까신은 사람들이 신앙하는 대상이 아기들의 신이고 여인들의 신인 송씨 할망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한라산의 신 하로산또의 존재가 희미할 대로 희미해졌다고나 할까. 

하로산또는 산육신 ‘송씨 할망’과 해녀와 어부들의 신 ‘요왕또’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좌정하고 있는 것이리라.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굳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를 못 느낀다고나 할까. 때때로 폭풍을 일으키곤 하던 비와 바람의 신 하로산또는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열일하는 부인 곁에서 조용히 깃들고 있었다. 

마무리하며

이번에 ‘한라산의 신들’이라는 주제를 맡아 정리하면서 많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무엇보다도 ‘미륵신’ 정리를 맡은 친구와 사진작가 선생님과 셋이서 함께하는 소규모 답사가 매력 넘치는 길 위의 여정이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하던 답사와는 달리 여유를 한껏 누리며 걷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신당만 둘러보고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니 여러 번 다녀왔어도 그 당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에 두세 곳만 목표로 삼고 천천히 마을길을 걸으니 비로소 ‘그곳에 다녀왔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거 한 가지, 마을의 신당들을 둘러보면 그 마을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당과 신당을 연결하는 길이 마을길이요, 신당에 좌정하고 있는 신을 이해하면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보였다. 

한라산에서 솟아나 여러 마을로 퍼져나갔던 하로산또들의 서사를 상상하고, 좌정했던 성소를 답사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도 재미있고 보람도 느꼈다. 기회가 된다면 하로산또들의 배우자였던 여신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요즘 하는 말로 ‘스토리텔링’ 작업을 한 번 더 하고 싶다.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작가 여연.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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