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소리는 귀에 거슬린다‘고 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좋고(良藥苦於口 而利於病)),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하면 이롭다(忠言逆於耳 而利於行)’는 고사(故事)에서에서 비롯됐다.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이 말은 훗날 한고조 유방(劉邦)이 천하대업을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충언(忠言)으로 기록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하나로 통일했던 진시황(秦始皇)이 죽어 진(秦)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때 유방은 군사를 일으켜 진(秦)을 치고 왕궁이 있는 함양을 정복했다.

유방이 진격하여 본 함양의 왕궁은 호화의 극치였다. 곳곳에 금은보화가 널려 있었고 절세미인들이 넘쳐났다. 유방은 황홀경에 빠졌다. 승리에 도취되었다.

이때 신하 번괘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인데 승리에 빠져 주저앉아서는 아니 된다”는 고언(苦言)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이 나섰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여를 했던 소하 한신과 함께 3걸 중 한사람이다.

장량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하면 이로운 것’이라는 공자의 말을 상기시키며 승리에 취하지 말고 추슬러 일어서기를 간청했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 군진을 가다듬고 강력한 항우의 군사를 대패시켜 천하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로 든 ‘쓴 약과 쓴 소리’ 이야기는 “무릇 지도자는 바른 소리, 쓴 소리를 내치지 말고 받아 들여야 대사를 망치지 않는다”는 경구(警句)나 다름없다.

독선과 독단, 자만과 자아도취에 빠져 정사를 그르치는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최근 임기를 일 년 남짓 남긴 문재인 정권을 향해 쏟아지는 진보진영 원로들과 진보 지식인들의 쓴 소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이들이 문 정권에 보내는 날카롭고 독한 비판과 주문은 ‘그래도 아직은 문 정권에 애정이 남아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임기동안 정신 차리고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라는 간절함과 간곡함이 묻어 있어서 그러하다.

이런 뜻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아프고 귀에 거슬리더라도 이들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진영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원로 정치학자 최 창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강연과 논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에서 비롯됐다"고 진보 세력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법과 제도, 나아가 정당정치의 규범들을 무시하고 뛰어넘는, 그래서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넘어서는 권력남용 또는 초법적 권력행사‘를 민주주의 위기로 보았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문제를 여론이라는 이름의 의견집단에 기대어 결정 한다”는 지적이었다. 나름의 소신 있는 국정 철학과 정책수행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인 것이다.

“정당 간 협의도 없고 반대를 적대시하며 국정을 운영한 결과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촛불을 자신들 뜻대로 해석하고 전유하며 ‘적폐청산’이라는 기조로 국가주의적 운영을 해 나가고 있다”는 주장은 “촛불로 세워진 정부가 촛불을 배신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질책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앞서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 한다’라는 논문에서 “특정 정치인을 열정적으로 따르는 이른바 ‘빠’(극성팬) 현상은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한 ‘정치 운동'이라며 조직된 다수가 공론 장을 지배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며 시민사회 공론 장을 황폐화 시킨다“고 팬덤에 의한 ‘여론 왜곡 현상’을 질타한 바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2006·창작과 비평사)로 유명한 진보 원로 언론인 홍 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도 최근 언론 인터뷰(11일 시사저널)에서 문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에도 임금님이 아닌 대통령으로 돌아오길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잡초, 즉 적폐를 다 없애겠다고 해서 기대를 줬는데 정작 자기 앞마당에 무성한 잡초는 건들지도 않았다”고 ‘자기 편은 무조건 옳다’는 문정권식 ‘신 적폐현상‘을 꼬집었다.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요란하게 새로운 적폐를 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이어 “국정 최고 지도자라면 국민사이에 의견이 분열돼 있는 현안에 대해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추진하고, 욕먹을 각오로 돌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팬덤 화 되다보니 비판적 목소리는 아예 외면해 버린다”고 대통령의 불통정치와 ’팬덤 눈치 보기의 비겁한 침묵‘을 겨냥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 준만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독선과 오만에 빠져 ‘싸가지 없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거칠고 독하게 일갈했다.

“적폐청산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 즉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선택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라면서 내 멋대로의 ‘내로남불 식 국정운영’ 스타일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들 진보진영 원로들과 진보 지식인들의 문재인 정권 비판은 ‘정권 레임덕 현상’에 편승하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배척하거나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그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대를 걸었고 지지했었던 우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감안하면 그들의 지적은 문정부로서는 더욱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들 비판의 큰 얼개는 ‘팬덤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국민과의 소통에 임하고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걸맞게 국민을 위한 국민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정치의 장을 열어 달라”는 간절한 주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쓴 소리와 주문에 귀 기울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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