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콩국. (사진=TV Halla '당찬 제주인의 자연밥상' 15편-제주콩국 영상 갈무리)
제주 콩국. (사진=TV Halla '당찬 제주인의 자연밥상' 15편-제주콩국 영상 갈무리)

바람이 맵고 차다. 아니 마음이 얼어붙고 몸이 움츠러든다. 만남을 금기시하는 코비드19 팬데믹이 일상화되니 접촉으로 온기를 얻었던 손과 가슴이 더 시리다. 그래서일까.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던 콩국이 그립다. 
 
콩국은 배추나 무를 넣고 끓이다가 날콩가루를 넣고 끓이면 되는 조리법이 단순한 음식이다. 하지만 불 세기와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비린내가 나거나 넘쳐서 낭패를 보는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 욕하고 싶을 때 끓이라고 하는 국이라고도 한다. 

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비타민 B1, B2, 나이아신,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및 항암물질인 글리시테인(glycitein)과 골다공증과 암을 예방하는 이소플라본(isoflavone)도 많이 들어있다. 

슈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는 렌틸콩은 식이섬유가 사과보다 21배 많고, 동부콩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세계 장수촌 중 하나인 에콰도로의 작은 섬 빌카밤바(Vilcabamba)는 질병이 없는 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콩을 주식으로 먹는다.

제주에서는 콩을 떼어놓고 음식을 말할 수 없다. 제주에서는 된장이 양념에서 절대적 역할을 한다. 쌈 채소는 물론 수박마저 된장에 찍어 먹고, 찬물에 강된장을 풀어 국으로 먹는다. 배춧국, 미역국, 무국도 된장을 쓰고, 물회도 된장으로 간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날 콩잎에 멸치젓을 얹어 밥을 싸서 먹고, 보양식이나 별미로 콩죽을 먹는다. 

콩자반은 마늘지와 함께 밥상에 늘 오르는 반찬이고, 조림에도 콩자반이 들어가야 제주식이다. 경조사에는 ‘둠비’라는 마른 두부가 상에 오른다. 둠비는 생콩을 갈아 끊이면서 응고제로 바닷물을 사용하여 만든 물기가 없는 제주 전통두부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된장은 푸른콩으로 담갔었다. 하지만 값싼 외국산 백태가 수입되면서 푸른콩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푸른콩된장이 국제슬로푸드협회 생물다양성재단의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서 다시 재배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주에서는 육지와 달리 콩이 주작물이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콩이 척박한 제주 땅에서 재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라이조비움(Rhizobium)속 토양미생물들은 콩과작물의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를 형성하여 질소를 고정한다. 

콩에 착생하는 근류균은 라이조비움 자포니쿰(Rhizobium Japonicum)이다. 콩은 일생동안 필요한 질소량의 30~70%를 공중질소고정작용에 의하여 얻는다. 조상들은 부족한 질소를 돗거름, 쇠거름, 듬북거름 등으로 보충했다. 또 보리를 갈기 전에 콩을 키우다 경운하여 밑거름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서귀포시가 경관보전직불제사업으로 지원하는 안덕면 동광리 메밀밭.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메밀밭.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에서 콩은 보리, 조, 메밀 다음으로 중요한 식량작물이었다. 그러나 수입자유화가 되면서 장콩은 자취를 감추었다. 제주에서 재배되는 콩은 98% 이상이 콩나물용 콩이다. 품종은 대부분 ‘풍산나물콩’이고 기계화에 적합한 ‘신화콩’과 ‘아람콩’이 재배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재배면적은 2009년 7603ha에서 2019년 4620ha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국내 콩나물용 콩 재배면적이 워낙 적다보니 제주가 국내 생산량의 70~80%을 차지한다. 

지금 제주 지하수는 질산성 질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과다시비와 축산분뇨가 원인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화학비료사용량은 2011년 2만2000톤에서 2019년 2만7300톤으로 24.1%가 증가하였다. 돼지 사육두수는 54만두로 분뇨량은 하루 1500톤이 넘는다. 도민 한 사람이 2.5kg의 분뇨를 매일 받는 꼴이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제주는 삼다수를 팔기는커녕 미래세대가 물을 사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이 보기 좋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기 위하여 비료·농약·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고투입농업에서 저투입농업으로 바꾸어야 할 변곡점이다. 저투입농업은 병해충종합관리(IPM)로 농약사용량을 줄이고, 작물양분종합관리(INM)로 화학비료사용량을 절감하며 정밀농업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농법이다. 물론 최고의 저투입농업은 유기농업이다. 

농업이 이용하는 자원인 공기, 물, 흙, 생물은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용되어야 할 자원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 자원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농업인의 기본적인 윤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콩 재배를 늘려야만 한다. 월동채소를 재배하는 지역에서는 같은 작물만 계속 이어서 짓는다. 연작을 하면 영양성분 불균형이 발생하고 염류가 집적될 뿐만 아니라 토양물리성이 악화되고 토양전염병과 선충의 발생하여 수확량이 떨어지는 기지현상이 발생한다. 

기지현상을 막고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마늘-콩-보리(헤어리베치)-마늘’, ‘양배추-수박-보리(헤어리베치)-콩-양배추’와 같은 윤작(작물을 주기적으로 교대하여 재배하는 방법;편집자)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콩과(科)작물을 위주로 한 윤작이야말로 저투입으로 흙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농법이다. 

유기 인증을 받으려면 콩과작물이나 심근성작물이 포함된 윤작을 해야만 한다.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친환경 농산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외부 자재를 투입하지 않고 땅을 살려 작물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농업이다.   

오늘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눈 맞은 배추가 들어간 콩국을 먹고 싶다. 물론 콩국은 내가 끓일 것이다.

고기협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제주지원 유통관리과장.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매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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