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는 강정마을 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시작한 지 어느새 5000일이 되어간다. 흘러간 많은 날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투쟁에 각각의 방식으로 함께 했다. 오는 23일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5000일을 맞아 강정평화네트워크는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에 참여해온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윤희성. 4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강정을 방문했다. 생명평화대행진에 꼬박꼬박 참여해왔다. 13살이 됐다.(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윤희성. 4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강정을 방문했다. 생명평화대행진에 꼬박꼬박 참여해왔다. 13살이 됐다.(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윤희성

제주해군기지반대운동 하는 걸 보니 강정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 소통하며, 이렇게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반대운동인데도 싸움이랑는 거리가 멀고, 내가 주로 본 것은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었어요. 어린이들이 가면 항상 반겨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어요.

아침에 생명평화 백배 절을 하고 “구럼비야 보고싶다~”, “구럼비야 사랑해~” 라고 구럼비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구럼비를 향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알게 해 줬습니다. 강정 우렁각시 활동을 보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제주해군기지반대운동이 계속되고, 강정이 진짜 평화의 마을이 되어 오래오래 기억되길 빕니다.

 

'열매'(활동명)의 뒷모습. 열매는 경상북도 성주 주민이다. 사드에 반대하며 소성리평화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열매

2017년 7월 말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성주의 주민들로 구성한 몸짓패<평사단> ‘평화를 사랑하는 예술단을 줄임’ 과 함께 제주를 향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매년 여름이면 제주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면서 제주를 동서로 가로질러 평화대행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2016년 7월에 한반도 사드배치를 성주지역으로 확정해서 성주주민들의 거센저항이 일어난 지 일년이 넘어설 때였습니다. 미국의 전략무기 사드2기를 한반도로 들여왔던 부정하고 타락한 박근혜정권을 국민촛불이 무너뜨렸고, 세상은 조금 달라질거란 기대를 품고 우리는 제주로 향했었습니다. 국민이 촛불로 탄생시킨 정권이 사드배치를 무효화시킬 거란 기대를 반쯤은 품고 우리보다 앞서 아픔을 겪었던 강정을 향했었던거지요.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빌려 강정 마을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낯선 이국적인 땅,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평화대행진 전야제에 평사단의 공연이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강정마을은 이미 우리가 겪은 일을 10여년 전에 일찍 겪었고, 잔인한 국가폭력으로 마을공동체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아픔을 겪을만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상처가 덕지덕지 아물지 않았지만, 여전히 건설되어버린 해군기지의 문제를 알려내기 위해서 소수의 주민들과 강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성주의 미래를 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우리가 강정에 도착했을 때쯤, 언론은 중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촛불정권이라 믿었던 문재인대통령이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사드 4기를 8월말까지 추가배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나먼 제주에서 적폐청산 6대 과제중의 하나인 사드를 추가배치한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당장 성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고통을 겪었던 곳에서 나는 앞으로 내가 겪을 아픔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나 갈등했습니다. 꾸역꾸역 일주일간 평화대행진을 참여했습니다. 아름다운 오름과 바다를 가로질러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살과 뼈가 다 타들어갈 거 같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비오듯이 땀을 흘리면서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성주주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고, 발목이 뻐근했습니다. 두꺼운 양말을 신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두툼한 트레킹화를 신지 않았더라면 아마 걷지 못하고 차를 얻어타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바늘로 물집을 터트려서 물을 빼고 반창고를 붙여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성주로 돌아갈 날까지 걸었습니다. 

그 후 3년이 흘렀습니다.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마을 진밭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졌고, 미군기지를 건설하는 공사가 계속 되고 있어 주민들은 항의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성주주민으로 끝나지 않을 시간을 살아갑니다. 강정주민들과 강정을 사랑하는 평화지킴이들이 그렇듯이, 소성리의 주민들과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들은 다른 시공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정이 겪은 일들을 되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도 생각해봅니다. 

한번씩 비켜가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성주주민이지만, 소성리로 오르지 않는 시간은, 소성리를 떠나서 온전히 내가 잘 살 수 없는 시간임을 확인하게 합니다. 내가 끝낼 수 없는 시간을 우리는 함께 살아갑니다. 

 

24일 촛불집회서 만난 박외순 공동집행위원장(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 이날 집회에도 집회 기획을 맡은 9명과 실무진 40여명은 자리를 지키고 시민들을 도왔다. @변상희 기자
박외순 제주주민자치연대 위원장(사진=제주투데이DB)

박외순

"질긴 놈이 이긴다!"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님의 외침.

시민단체 상근활동가인 나에게 이기는 싸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완강한 표현으로 ‘많지 않다’고 하지만 거의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게든 막아내고 어떻게든 지켜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힘도 세고 질긴 그들은 절대 우리보다 빨리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은 그들이 이긴 것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도 우리는 뭘 그리 막아내고 뭘 그리 끝없이 지켜내야만 하는지 직업적 운동가로서 자괴감도 들지만 간혹 강동균 회장님의 구호를 떠올리며 깊이 반성하게 된다.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질기게 버텨 왔는가. 지레 먼저 스스로와 타협하고 적당한 거리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강정싸움’으로 불리워지는 제주강정해군기지반대싸움. 너무너무 이기고 싶었고 너무 지켜내고 싶었다. 강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말한다. 이미 기지가 들어섰는데 뭘 더 할게 남아있나?? 그러게,,아직 질기게 버틸 일이 남아 있다. 내가 잊지 않고 떠나지 않고 머물러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앞자리에서 뭔가를 주도하진 못해도 끝까지 자리 차지하고 남아 있을 수는 있겠다.

2007년 5월, 서귀포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부지로 확정된 이후 무려 1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미사여구의 명분은 애초에 신뢰하지도 않았으며 정박할거라던 크루즈도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다. 태풍이 오면 1조원이 넘는 이지스함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피난을 보내야하면서도 굳이굳이 강정해군기지를 왜 유지해야하는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에너지수송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대양함대론을 주창하고 있지만 세계 경찰인 미국이 태평양과 인도양 공해상의 제해권을 다른 나라에게 줄 가능성이 전혀 없고 한국 또한 미국과 대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양해군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공군은 제주에 전략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포기한 적이 없다.

갖은 말재간으로 순간순간 비켜갈 뿐 강정해군기지 건설 이전에 이미 함께 추진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자국 구축함이나 수송선 보호를 위한 기동성 확보라는 명분하에 공군기지는 해군기지와 세트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성산에 추진되고 있는 제2공항은 공군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온갖 권모술수로 건설된 제주해군기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0일의 긴 시간동안 웃음을 잃지 않고 춤과 노래로, 글과 작품으로, 기도와 미사로 자리를 지켜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우리나라 평화운동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음을, 긴 싸움의 정점에서 어쩌면 낙심하고 있을지도 모를 성산읍 주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음을 되새겨보며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전한다.

 

정선녀(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정선녀 천주교 강정마을 공소회장. 2012년부터 해군기지현장을 지켜 왔다. (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정선녀

제주특별자치도 본관 크루즈사무실에 배치된 홍보 관련 리플렛, 강정현장에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알리는 현란한 현광판, 거대한군부대와 쿠르즈시설을  설명하는 광고사진이 오늘현장과 비교됩니다. 5천일동안 매일 새벽백배와 미사 인간띠에  평화를 염원하는 연대자들이 제주 어느 관광지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평화는 제주강정해군기지폐쇄가 답입니다. 미핵추진잠수함, 한미연합훈련하고 돌아온 장병들의 휴양지, 주의보만 내려도 텅비어버리는 군항은 비무장평화의 섬에 악 자체입니다. 인권이 무시되고 바다생태가 죽어가고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미래를 잃어버린 이곳이 제주의 미래와 생태를 회복하는 열쇠는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기도합니다.

 

앤지 젤터(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앤지 젤터. 영국의 국제평화활동가. 1980년대부터 전세계를 무대로 반핵·반전·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공)

앤지 젤터 Angie Zelter

강정에서 계속되는 ‘저항 투쟁’은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군사주의, 공포, 그리고 기업 권력에 저항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의, 공정함과 평화를 위한 투쟁입니다. 저는 2012년 3월 7일 그들이 구럼비를 폭파시킬 때 해군기지 안에 있었습니다. 군대와 기업들이 파괴하기 위하여 권력 남용을 과시한 그 날은 슬프고 충격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문화들 에도 불구 세계의 평화애호인들 간 연대와 연결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 폭파를 막지 못했지만 권력에 진실을 이야기 했고 더 인간적이고 온정이 있는 세계를 위해 함께 행동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계속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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