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사진=조성진 작가)
성산일출봉. (사진=조성진 작가)

성산 제2공항 건설 반대 싸움 측이 도민들에게 제2공항 건설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기로 가닥이 잡힌 모양새다. 이달이나 다음 달 전화로 도민들의 여론을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성산지역 주민들의 여론조사를 따로 하기로 하면서 또다른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

진작에 ‘제주도민 자기결정권 선언’이라는 주장이 나올 때부터 개인적으로 깊게 우려한 일이다.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앞날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다수의 결정이 꼭 바른 것이 아니라는 경험칙이 아니더라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압도적으로 반대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대 측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올 경우 이후 찬반 주민들 간의 갈등이나 대립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강정 싸움에서 주민들의 대립 골을 뼈아프게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따로 성산주민 여론조사는 이후 판을 뒤집을 맞춤한 빌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꼭 따져봐야 할 것이 이 싸움에서 반대 측이 주민여론을 주도하고 주민을 대표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모습도 도정과 도의회가 합의 주체가 되면서 반대측은 의견 개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익히 보았다시피 도의회는 믿을만한가, 인데 이는 자칫 도정과 도의회에 면죄부를 주면서 그들끼리의 딜도 충분히 가능하지 싶다. 끝내 명분과 실리를 죄다 잃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

어찌 보면 제2공항 반대 싸움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것이겠다. 이전 범도민행동부터 비상도민회의까지 맞춤한 그릇을 두고도 천막농성에 피켓팅과 전단지 배포, 도내 행진퍼포먼스까지. 이런 선전 선동을 통하여 반대의견을 여론화하고 도민들을 조직하고 확대하는 일은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가. 끝내 찬반투표로 갈 거면 비행기 타고 광화문에서 농성은 왜 했으며 이른바 제2공항반대 전국행동은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흔히 강정 싸움은 끝났는가 묻곤 한다. 강정 싸움이 강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싸움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의 싸움은 다른 그림이어야 할 것이다. 오랜 강정 싸움 이후 제주의 운동역량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이전 싸움에서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이전 싸움을 통하여 맷집을 길렀는가. 조직적으로 나아지거나 힘이 세질 수 있겠는가. 새로운 싸움에 대한 노하우와 자신감을 얻었는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제2공항 반대 싸움을 통하여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얻을 것인가. 무엇으로 새로운 싸움의 동력을 얻을 것인가. 다시 이름뿐인 비상도민회의를 꾸리고 다시 목숨을 축내는 단식을 하고 다시 외로운 피켓팅을 하고 다시 골목을 누비며 전단지를 돌리고 다시 천막촌에 웅크릴 것인가.

혹 도민회의가 ‘민회(民會:편집자)’ 아닌가. 제주의 오늘을 아파하고 제주의 내일을 걱정하고 제주에 사는 주체로 제대로 잘살기 위해서 단체와 개인, 마을과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끌어안고 전망과 지표를 찾고자 의논하고 결의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그것, 말이다.

가령 성산에 제2공항 건설을 막아냈다고 치자. 그러면 비상도민회의는 해체되어야 하는가. 또는 제주는 이제 비상을 벗어나 정상이 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상도민회의의 목표나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제주섬이 정상을 찾는 길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비상도민회의의 명칭은 적절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지금 제주는 무엇이 왜 어떻게 비상한 상태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제주의 현실은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다. 화산섬의 생명수를 제멋대로 퍼다 쓰면서 하수처리장은 일찌감치 셧아웃. 똥물을 그대로 바다로 싸지르고 있다. 쓰레기와 비료 농약, 양돈오물 등 악취와 오염으로 뒤범벅이 됐다. 제2공항 반대 피켓팅의 글귀처럼 쓰레기섬 똥물 바당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이전에 지금 바로 여기 제주민들에게 닥친 생존의 문제다. 

비단 제2공항뿐이겠는가. 송악산 개발, 선흘 제주동물테마파크, 한림 양돈장, 비자림로, 강정 해군기지 진입도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드림타워 등이 하나같이 제주의 위기 상황을 드러내고 있으며 제주 사람들이 같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해결하고 제주를 살리는 길은 ‘민회(民會:편집자)’라고 여긴다. 당장에 다시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에 힘을 실어주고 모여야 하는 이유다.

이성홍.
이성홍.

제주에 살러온 8년차 가시리주민이다. '살러오다', 한 때의 자연을 벗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호롱불 아니라도 저녁무렵 은근한 난롯가에서 콩꼬투리를 까고 일찌감치 곤한 잠들어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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