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비대위 제공)
가습기살균제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비대위 제공)

 

법원이 문제가 된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어 판 업체에 무죄 판결을 내리자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피해자 구제까지 차단할 수 있는 판결이란 점에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졌다.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명백하게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없다"며 정부에 역학조사 진행과 사회적참사 진상규명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현재까지 정부에 신고된 제주도 피해자는 46명으로 이 가운데 구제 대상 사례는 26명에 그쳤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전직 임원진 13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가 폐질환을 유발하거나 심화하는지가 재판의 쟁점이었는데, 재판부는 CMIT·MIT의 인체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고 실재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은 재판 결과에 할말을 잃었다. 정부에서 인정한 가습기 관련 피해자는 현재 1413명. 이중 사망자는 256명에 이른다. 인과성을 증명하지 못해 정부의 구제 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까지 합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1심 재판부는 '동물실험 결과로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고, 피해자들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형국"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지난해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진상 규명은 끝났다"며 가습기살균제 관련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연장에 반대해 가습기 피해에 대한 진상조사는 사실상 종료된 상황이다.

정부 책임론이 거세지자 어제(21일) 임명된 한정애 신임 환경부장관은 내정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중형동물을 대상으로 추가실험을 진행하자"고 제안해 논란을 더 키웠다. '인과성을 입증해 가해기업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자'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재판부가 동물실험 결과를 유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면피용 대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피해자들은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사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딸을 잃은 제주도민 오 씨(일도동)도 제주투데이와 전화통화에서 "내 몸이 이렇게 아픈데 폐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 듣고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피해자 구제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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