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미국 매릴랜드 주 하워드 카운티 보건소에서 만난 한글 안내문. 반가워서 찍었다. (사진=양영준 한의사)
19일 미국 매릴랜드 주 하워드 카운티 보건국에서 만난 한글 안내문. 반가워서 찍었다. (사진=양영준 한의사)

 

내가 사는 곳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인 메릴랜드주  하워드 카운티(군 단위) 내 엘리콧시티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를 감싸는 메릴랜드 주 일부와 북 버지니아 인구를 합하면 인구는 700만을 살짝 넘고, 한인 인구는 20만 명 채 안된다. 한국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유명한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가 여기에 포함된다. 

워싱톤 D.C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각 카운티들은 미국 내에서도 수입, 교육, 보건, 범죄 등 각종 삶의 지표에서 최상위에 속한다. 특히 교육 부문이 월등해 한인을 포함해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을 위시한 아시안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다. 굳이 영어를 못해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직장을 쉽게 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갈수록 아시안 인구가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 이 곳은 코로나 초기 때부터 하루 평균 약 7000명 정도가 감염되고 사망자는 200명에 이른다. 교통체증이 심각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많이 한산해졌다. 지금은 회복(?)되는 추세다. 

나는 이곳에서 자그마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부쩍 줄었지만 PPP( 개인 월급 유지 프로그램) 덕분에 삶을 근근이 유지중이다. (미국의 코로나 지원대책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지난 1월 9일(현지 날짜)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마지막 환자를 보고 서둘러 보건국으로 향했다. 오후 2시 54분 예약이었는데 15분 남기고 도착했다. 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준비해 간 서류와 라이센스를 제시해야 건물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있었다. 내 앞의 미국 할머니 두 분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마 백신 접종한다는 소식에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오신 것 같았다. 

건물 내부는 꽤나 조용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진과 영상 촬영 금지(NO PHOTO NO VIDEO) 팻말이 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사진을 찍을 요량이었는데, 각 코너마다 서 있는 경찰들 눈치에 포기했다.  

체온을 체크하고 대기줄에 섰다. 그렇게 약 40분 가량 기다렸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6명의 간호사들이 백신 주사를 놓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간호사가 내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고는 왼쪽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한 시간 기다림 끝에 맞은 코로나 백신의 느낌. ‘아, 이렇게 안 아플 수 있나’. 나는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와 QR 코드를 입력했다. 다음 스케줄이 잡혔다. 28일 뒤인 2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 54분. 나의 백신접종기록이 QR코드를 통해 CDC(질병 관리 본부)에 자동 전송됐다. 백신 접종후 부작용 사례와 연락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는 해당 지역에 공급된 백신의 약 30% 가량 밖에 접종이 안된다고 한다. 아마 접종 시스템 구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반면 웨스트 버지니아는 주 방위군이 접종백신의 운반과 보관, 접종까지 책임을 지고 있어 인구의 약 70%가 접종했다. 물론 한국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약 3시간이 지나니 주사 맞은 부위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이 통증은 약 3일 정도 지속이 됐다. 좀 심한 근육통과 비슷했다. 일주일가량 피로감을 느꼈고, 약간의 두통이 동반됐다. 일상에 크게 지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은 코로나 확진 뒤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직 부작용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가 만나본 확진자들의 공통된 증상을 전하며 첫 칼럼을 마칠까 한다. 확진시 식욕 부진과 음식맛을 잘 못 느낀다. 열이 3일 정도 오르락내리락 하다 정상체온을 찾는다. 부작용 이야기가 별로 없다보니 미국의 젊은 청년과 장년층들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부족한 글로나마 고향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 참으로 설렌다. 삼춘들의 건강을 빌며.

 

제주 한경면이 고향인 양영준 한의사는 2000년 미국으로 이주, 새 삶을 꿈꾸다. 건설 노동자, 자동차 정비, 편의점 운영 등 온갖 일을 하다가 미 연방 우정사업부에 11년 몸담은 ‘어공’ 출신. 이민 16년차 돌연 침 놓는 한의사가 되다. 외가가 북촌 4.3 희생자다. 현재 미주제주4.3유족회준비위원장과 민주평통워싱턴협의회 일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칼럼 [워싱턴리포트]를 통해 미국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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