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이 말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의 원작자(?)는 18세기 극우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1753-1821)이다. 선거철만 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언론에서 투표 독려 캠페인에 이 문구를 써 왔는데 따지고 보면 공화제보다 군주제를 옹호했던 극우주의자의 발언을 사용해 왔던 셈이다.

비슷한 말로 ‘민도(民度)’가 있다. 한 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수준을 일컫는 이 말의 뿌리는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이다.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제는 스스로를 ‘문명의 전달자’로 자부했다. 우매한 조선 땅에 선진 문물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었다. 이런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적 편견을 일제만 지닌 것은 아니었다. 1920-30년대 신문이나 잡지를 살펴보면 ‘민도유치(民度幼稚)’니 ‘민도우매(民度愚昧)’라는 말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도 당시 폭넓게 퍼진 사회진화론적 인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수준이 늘 민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치사만 살펴봐도 정치 수준이 국민 수준에 밑도는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정치인의 힘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라는 두 보수기득권 정당의 가장 큰 착각은 지금 자신의 성과가 노력의 대가라고 여기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이 20일 넘게 계속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광장을 배신한 정치 때문이다.

눈을 지방의회로 돌려보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원희룡 지사 앞에만 서면 도의회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사석에서 만난 한 의원은 ‘힘이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문화예술 관련 예산 전면 삭감 문제로 만난 어떤 의원은 “의정 칼럼”으로 썼는데도 제주도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한 적도 있었다. 의결권과 감시권을 지닌 도의회 의원이 겨우 신문에 칼럼 몇자 쓴 것으로 할 일을 다하겠다고 하는 발언을 듣고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의정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겉으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지역구 예산 반영을 위해 도청 주무관 앞에서 앓는 소리나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도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모두 시민적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도의원들의 발언을 들으면 그들의 머릿 속에 도민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아스럽다. “동성애, 동성애자 싫어한다”는 혐오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의원도 있었다. 국민의힘 강충룡 의원의 막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충룡 의원은 제2공항에 반대하는 이주민을 일컬어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 육지에서 내려온 반대 전문가"라 칭하며 "제주도를 떠나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2020년 제주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는 “환경단체들이 중국에서 돈을 받기 때문에 중국발 미세먼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술자리 뒷담화에서도 안 할 이야기를 공식 회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도의원. 이런 발언이 논란이 될 때마다 오해였다는 '해명 아닌 해명'으로 일관하는 강 의원을 볼 때마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강충룡 의원만이 아니다. 품위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동과 발언은 더 있다. 제11대 제주도의회가 출범한 지 석 달이 채 안 됐을 때 더불어민주당 양영식 의원은 동료인 홍명환 의원의 페이스북에 욕설로 댓글을 달기도 했다. 문제가 되니 바로 삭제했지만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사였다. 단순 실수였다고 하겠지만, 프로이트가 지적했듯이 사람의 속마음은 작은 말실수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 공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욕설은 달 수 없는 것이었다.

양영식 의원의 경우 지난해 11월 제주도의회 의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의 연간 월정수당 인상도 모자라 도의회 사무처에 “의정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해 달라”면서 안마의자 설치도 요구했다. 이 정도면 도대체 왜 의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강충룡, 양영식 의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호 의원은 지난해 8월 정무부지사 예정자 인사청문회에서 지역 숙원사업인 비자림로 확장공사와 관련해서 질의를 하던 중 “이걸(공사를) 왜 멈춰 가지고 이 XX하는지 모르겠다”고 비속어를 쓰기도 했다. 결국 산회 직전 사과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강성균 의원은 2018년 7월 제주도 주요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의원 발언에 반박·논쟁·주장을 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가 전공노 제주지역본부 반발을 사 이튿날 사과하기도 했다.

도의원들의 수준 이하 발언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 개인의 일탈, 혹은 자질 문제인 것일까. 이런 발언이 계속되는 이유는 막말에 대한 징계가 단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다. 막말을 하더라도 오해였다는 해명 아닌 해명만 해도 되는, 책임지지 않는 정치 때문이다. 제주도의회 안에는 윤리위원회가 있다. 지난 2016년 7월 5일에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선임한 이후에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의원들의 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도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회로 노력해 나갈 수 있도록 의원의 윤리심사 및 자격․징계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게 된다". 윤리위원회의 설치 목적이다. 하지만 의원들의 연이은 막말 파문에도 위원회는 개점 휴업이다. 좌남수 의장은 강충룡 의원의 혐오 발언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지적하기는 했으나 윤리위 징계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효성 없는 제재가 계속되는 한 막말은 회기 내내 계속될 우려가 있다. 반성 없는 정치가 계속되면 부끄러움은 도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책임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은 퇴출만이 정답이다. 이제 시민의 힘으로 경고 카드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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