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의진맥] "젖먹이 묻고 검질 매던 여인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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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의진맥] "젖먹이 묻고 검질 매던 여인네처럼"
  • 김수오
  • 승인 2021.01.25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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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수오
(사진=김수오)

 

동짓날 밤이었다.

강추위 예보대로 밤이 깊어질수록 매서운 바람에 눈발이 거칠어졌다. 들판의 제주마들은 여느 때처럼 서로 몸 맞대어 추운 밤 견디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 내 손도 꽁꽁 얼었다. 

먹장구름에 별빛도 사라진 깊은 밤, 들판을 내려오는데 멀리서 가냘픈 망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망아지 하나 죽은 듯 누워있고 어미말이 바람맞으며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어둠 속 가까이 지켜보니 다리 끌던 망아지였다. 

뒷다리가 마비되어 앞다리로 몸을 끌면서 어미말을 따라다니던 어린 망아지. 꿋꿋하게 잘 버티는 모습에 볼 때마다 맘 짠하던 그 망아지였다. 잠든 듯 누워서 간간이 신음하듯 우는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걸음 내내 망아지의 울음소리가 칼바람타고 따라왔다.

 

사진=김수오
(사진=김수오)

 

사흘뒤 동틀 무렵, 강추위에 얼었던 산길 도로가 열리자 부랴부랴 들판으로 들어섰다. 조마조마 찾아간 자리에 망아지는 끝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동짓날 긴긴밤 지샜을 어미말은 얼어붙은 들판에서 묵묵히 눈 헤치며 풀을 뜯고 있었다. 

그해 겨울 얼어 죽은 젖먹이 묻고 묵묵히 검질매던 제주 여인네처럼.

 

사진=김수오
(사진=김수오)

 

 

제주다움을 담기위해 야사를 누비는 김수오 한의사
제주다움을 담기 위해 산야를 누비는 김수오 한의사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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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boo 2021-01-28 21:03:19
생명의 숭고함앞에서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제주다움을 담고자 한라산자락을 누비는 한의사님, 앞으로도 경이로운 진맥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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