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딸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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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딸을 죽였다"
  • 박소희 기자
  • 승인 2021.01.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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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로 딸을 잃은 어머니 인터뷰
(사진=뉴스타파 목격자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자격' 갈무리)
(사진=뉴스타파 목격자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자격' 갈무리)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오모 씨(52)는 2002년 결혼 후 제주시로 건너왔다. 이듬해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미숙아(이른둥이)였던 터라 엄마 품보다 먼저 인큐베이터에 맡겨졌다. 서른넷에 본 늦둥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그간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주버니가 약하게 태어난 아이를 위해 ‘가습기메이트’를 선물로 사왔다. 1994년 초 제품을 개발했을 당시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현 SK케미칼)은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 제거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신생아 건강에 습도 유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물리도록 들었다. 면역력 약한 딸의 잠자리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리라. 하루 온종일 딸의 건강을 빌며 가습기를 틀어줬다. 

2004년 겨울 딸이 죽었다. 사망 원인은 폐섬유화. 워낙 약하게 태어난 아이라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났다 여겼다. 첫 아이 죽음을 잊기 위해 딸의 물건을 모두 버리기로 했지만 차마 다 버릴 수 없더라. 남편 몰래 제 딸 옷 한 벌 장롱 깊숙이 숨겼다.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질환 환자가 속출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감기 증상을 보이던 임산부가 입원 하루만에 숨지는가 하면 세 모녀에게 급성 폐질환이 동시 발생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그해 9월 환경단체로부터 나왔지만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였던 질병관리본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1월이 돼서야 가습기살균제 6종(PGH, PHMG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을 회수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2월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과의 인과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환경부는 그해 9월 PHMG, CMIT/MIT를, 2013년 8월 PGH를 유독물로 지정했다. 이미 불티나게 팔린 상태였고, 오씨는 딸을 잃은 뒤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1994년 초 출시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약 20여종으로 연간 60여만개 판매됐다. 당초 카페트 항균제 등의 용도로 출시된 화학물질(PGH, PHMG 등)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로 사용됐다. 다수의 인명피해는 2009년부터 2011년 가습기살균제 소비가 증가되면서 발생했다. 

환경부가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 제도 보고서 내용 캡처
환경부가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 제도 보고서' 내용 갈무리

첫 논란이 불거졌던 당시만해도 오 씨는 딸의 죽음이 가습기살균제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연결짓지 못했다. 환경부가 2011년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에 착수했지만 소식에 어두웠던 그는 2014년이 돼서야 가습기살균제 논란 보도를 접했다. 어쩌면, 혹시, 만약,  보도를 접한 그는 두려웠다. “제 딸의 숨통을 제가 막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어서다. 

그는 2004년 딸이 죽고 11년 뒤인 2015년 3차 피해조사(2월~12월) 기간에서야 딸에 대한 피해구제 신청을 냈다. 신청 후 일년이 지나자 환경부 관계자가 찾아왔다. "이정도면 피해구제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겠다"고는 돌아갔는데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25일 기자와 만난 오 씨는 딸의 죽음, 인과성 인지, 피해인정 호소로 이어진 약 20년의 세월을 더듬으며 지난한 기억을 정리했다. 

"너무 긴 세월이라 정확날 날짜들이 잘 생각이 안나네요."

지난해 9월 사회적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사참위 특별법)이 개정되며 피해 인정 범위가 확대됐지만 이전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증빙해야 할 서류들이 많았다. 

그는 딸의 사망진단서 외에 가지고 있는 병원 진단 기록이 없었다. 병원측은 10년 된 기록이라 폐기한 상황이었다. 피해구제 업무를 맡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전화하면 “용역일 뿐이라 어쩔 수 없다”며 환경부에 넘기고, 환경부에 전화하면 “지급대상 범위 기준에 따라 처리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딸은 죽었는데, 다들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다. 

당국에 연락도 해봤다. "법을 알기를 해, 절차를 알기를 해, 기사를 봐도 내용이 어려워 다 이해하기도 어려워, 피해자 조직은 산발적으로 존재해... 잘 모르겠으니까 제주도 차원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받았으면 싶었는데, 소관부처가 없어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오씨는 막막했다. 답답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자신이 딸의 숨통을 본인이 끊은 것 같아 양가 부모는 물론 남편에게도 아직 말하지 못했다. 둘째딸은 제가 첫째인줄 알고 산다. "첫딸의 존재 자체를 아예 지우고 사는 맘이 벙어리 냉가슴이라"라고 말할 땐 그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하루하루가 물에 젖은 휴지 같았다. 솟아오르는 울화와 옥죄오는 죄책감을 덜고자 청와대 게시판에 “나는 제 딸을 죽인 살인자입니다”(2019년 5월 30일)라는 제목을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제발 가습기메이트를 쓰지 말아달라. 나같은 엄마가 되지 마라”는 호소문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용서받고 싶은 심정에 무속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 “딸이 죽은게 오히려 잘 됐다”는 말을 듣고 무속인과 대판 싸우기도 했다. 

그는 “건강하지 않아도 살아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리 말해 매우 속상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딸이 오래 살았으면 저도 같이 죽지 않았을까 싶다. 같이 노출됐으니까. 딸이 저를 살리려고 짧게 안기고 가지 않았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라고 했다. 

오씨는 기관지가 약해져 감기만 들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그럴 땐 잠도 잘 못잔다. 돌발성 난청이 생기기도 했지만 피해인정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9월 25일
지난해 9월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자 증명서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사진=오씨 제공)

 

2014년 첫 신청서를 내고 7년 차인 지난해 9월 25일 드디어  딸에 대한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자 증명서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17년만에 제대로된 사망진단서가 나온 셈이다.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조사중인 사회적특별조사위원회 업무에서 진상규명은 제외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켜 사실상 특조위 손발을 잘랐다. 

오 씨는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사망자가 오늘(25일) 기준 1300명대다.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수는 1618명이다. 그것도 정부 인정 기준에 부합한 경우만 집계한 거다. 그런데 가해 기업인 SK케미컬과 최근 무죄 판결까지 받았다. 저는 옥시 제품을 사용했는데, 옥시 등에도 너무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종식일은 피해자들이 모두 구제받고, 가해자들은 모두 처벌받는 날”이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주요 화학물질인 PGH/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는 고분자물질이며 CMIT/MIT(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는 혼합물질로 가습기살균제 외에도 포장재, 화장품 등에 항균 및 방부기능을 위해 사용됐다. 위해성을 알고도 고분자물질을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의 회사들은 2016년 기소돼 2018년 유죄가 확정됐지만 혼합물질을 사용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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