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고진숙)
세화오일장 (그림=고진숙)

어릴 적 세화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머니는 고팡(식량이나 물건 따위를 간직해 보관하는 제주어)에서 좁쌀이나 보리쌀을 한되박 덜어 구덕에 담아지고 장으로 가셨다.

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니의 구덕에는 제수와 제철 과일, 싱싱한 생선 등속과 함께 내가 기다리던 맛있는 풀빵이나 강냉이가 있었다. 냉장고가 없었던 그 시절, 배지근한 밥상과 코시롱한 군것질거리를 선물하는 세화오일장이야말로 내겐 5일마다 받는 신의 축복 같았다.

세화오일장은 역사의 무대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벌인 가장 강력한 저항운동이었던 ‘제주항일 해녀 항쟁’이 벌어진 곳이 세화오일장이었다. 그때 해녀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까지 대략 1만여 명이 세화오일장에 모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사람 다 모이는 것이 제주민란의 특징인데, 해녀 항쟁도 그랬다. 구좌, 성산 사람들은 걸어오든 배타오든 다 모였다. 일본인 제주도사(지금의 도지사)는 깔끔하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세화오일장이 가진 저력이자 자랑거리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오일장은 자리를 두 번 옮겨서 지금은 아름다운 세화 바당 앞 매립지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큰 장이 선다.

"이젠 시에(제주시) 오일장도 여길 못 따라가. 제주에서 1등!"

단골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밀려드는 손님에 치여 돈도 싫다는 표정으로 막 퍼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세화오일장에 큰 장이 서는 이유는 시내에서 가장 먼 까닭이다. 세화오일장은 제주 동쪽 사람들에게 유일한 대형마트이자 백화점이다. 제주 시내 상권과 겹치는 함덕오일장의 경우는 별명이 ‘흐지브지 함덕장’이었다.

시골 노인들은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이용할리도 없고 백화점 물건도 탐탁지 않지만, 세화오일장에서만은 완벽하게 만족하는 옷과 신발을 찾아낸다. 세화오일장에선 노인 할인은 일상이다. 젊은 사람에게 만삼천 원인 털신도 만 원에 사고 의기양양 하신다.

없는 것은 없고 있는 것은 다 있는 세화오일장에는 이상한 나라의 묘목가게 할머니가 계신다.

"라일락 이수꽈?"
"있고말고."

할머니에게 사다 심은 라일락은 키도 크지 않고 꽃도 베롱한게 영 이상했다. 알아보니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훤칠한 키의 라일락이 아니라 아담한 ‘미스김라일락’이었다. 다음번 할머니에게 산 딸기 모종은 뱀딸기였다! 그러나 나는 만족한다. 그것은 인생이 내게 보내는 농담이기 때문이다.

세화오일장은 막걸리를 사 들고 머리 고기 앞이거나 싱싱한 생선 앞에서 입맛을 다시는 할아버지들의 미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산항에 어쩌다 참치가 걸려 들어오는 날이면, 당분간 안줏거리 걱정이 없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고, 생선가게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참치를 해체하며 좋은 구경거리를 덤으로 안긴다.

믿고 속는 세화오일장에서는 삶의 농담을 만나거나 행복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5일마다 신이 보내는 선물이다. 오로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제주에서만 가능한 멋과 맛이다.

 

고진숙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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