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해변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해변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오후 4시쯤 되면 모래판(터진목)에서 “타다닥” 콩 볶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총소리였어.

기축년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혹시 새해 해돋이는 보셨나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예년처럼 인파가 몰리는 해돋이 명소에서 일출을 보기가 어려웠던 거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 저는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을 했습니다. 사회부 기자들은 12월 31일이 되면 새해 해돋이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 취재에 나섭니다. 아쉽게도(혹은 다행스럽게도) 저는 해돋이 촬영을 나가 보진 못 했습니다만, 취재를 다녀온 동료들로부터 해가 잘 보이지 않아 난감했다거나, 살짝 눈을 붙였다가 해돋이 장면을 놓칠 뻔했다 하는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듣곤 했습니다. 

제주에도 아주 유명한 해돋이 명소가 있습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 자리한 성산일출봉입니다. 언론들도 주로 이곳으로 새해 해돋이 취재를 나가곤 하는데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는 광치기해변을 포함한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새해 해돋이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형 캠프파이어와 불꽃놀이, 무대 공연 등 해맞이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마련돼 인기였지요. 

그런데 73년 전 제주4·3 당시 이 광치기해변에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이 해변의 다른 이름은 터진목입니다. ‘터진 길목’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물때에 따라 진입로가 잠겼다가 드러났다 해서 제주도 본섬과는 반쯤 분리된 섬 속의 섬이었다고 합니다. 4·3 당시 학살의 광풍이 가장 극심했던 1948년 말부터 1949년 초까지 이곳에서는 성산읍(당시는 성산면) 주민 200명 정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이 공간은 주민들에게 있어 ‘일상적인 학살의 장소’였다고 합니다. 터진목에 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4·3 때 10대 소년이었던 한 유족 어르신은 오후 4시쯤 되면 모래판(터진목)에서 “타다닥” 콩 볶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총소리였다고 저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살의 주체는 군인으로 신분이 격상된 사적 폭력조직인 서북청년단 특별중대였습니다. 경찰은 이를 도왔습니다. 

지난해 11월 5일 터진목에 위치한 제주 성산읍 4·3추모공원에서 열린 성산읍 4·3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원 제공)
지난해 11월 5일 터진목에 위치한 제주 성산읍 4·3추모공원에서 열린 성산읍 4·3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족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원 제공)

지난해 4·3 당시 이곳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신 분도 만나 뵀습니다. 당시 생후 17개월이었던 이 어르신은 어머니 품에 안겨 총탄을 맞았습니다. 아기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본 토벌대는 두 발 더 총을 쏘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어머니는 죽고, 아기는 살아났습니다. 기적이었죠. 어르신은 이 당시 자신을 안고 사형장(터진목)으로 갔을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하면 지금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광치기해변 한편에는 4·3 당시 희생된 성산지역 주민들을 추모하는 추모공원이 있습니다. 매해 11월 5일 이곳에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제주다크투어도 지난해에 위령제에 참석했습니다. 

위령제 며칠 전부터 급격히 추워졌던 날씨가 이날만큼은 거짓말처럼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창 성산지역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분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터라 익숙한 분들을 많이 뵐 수 있었습니다. 고령의 유족들은 가슴 한쪽에 4·3은 상징하는 동백 배지와 추모 띠를 붙이고 위령제에 참석하셨습니다. 위령제에서도 유족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안가의 멋진 풍광과 대비되는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이곳에 추모공원도 생기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안내판 등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광치기해변에 방문했을 때 한번 눈여겨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끝으로 성산지역 4·3유족이자 시인인 강중훈 선생님의 시 일부를 전하며 이달의 다크투어 유적지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전략)
타다닥 타다다닥 볶아대는 그 딱콩 소리에 놀라
포승당한 채 끌려가다 학살당한 뜬구름 끝자락
빨간 원추리 꽃잎에 박혀 까맣게 타고 있는
파랑·파랑·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강중훈, <강낭콩 익을 무렵> 중에서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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