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전국체전 성화 점화 장면(사진=e영상역사관 국가기록사진)
1998년 전국체전 성화 점화 장면(사진=e영상역사관 국가기록사진)

제주 사람치고 설문대할망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내 또래나 그보다 윗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심심찮게 설문대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까.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제주 역사상 최초로 열린 1998년 전국체전 개막식이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최종점화 장면에서 백록담을 닮은 성화대가 위용을 드러냈고 거대한 여신의 상반신이 TV 화면에 등장했다. 설문대였다. 최종점화자가 여신의 손가락 위에 오르자 거대한 할망은 그를 백록담으로 인도했고 마침내 먼 옛날 그러했던 것처럼 활화산의 불길이 다시 치솟았다. 이 섬의 창조주는 그렇게 이 나라 모든 곳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뭍사람들도 제법 설문대를 알게 되었다.

얼치기 광대가 설문대를 찾아다니기까지

어릴 적 할머니가 쏟아내는 옛날이야기 보따리 속에 묻혀 지냈던 나는 대학 진학 후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탈춤반 활동을 시작으로 광대가 되었다. 풍물을 치고 마당극을 하며 청춘의 리즈시절을 보내던 중 내 고향 제주의 굿과 만났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에의 전수자로 들어가 당대를 호령하는 큰심방을 스승으로 모셔 굿을 배웠다. 그러는 사이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제주의 굿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도대체 어떤 원리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날이 쌓여 결국 십여 년 동안 연구자의 삶을 살게도 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방정맞은 천성이 격식을 갖춘 연구보다는 되든 안 되는 상상한 모든 것을 펼쳐내는 삼류 예술가의 길로 나를 몰아세웠다.

이렇게 굿판을 전전하던 나는 설문대할망의 놀라운 권능에 빠졌던 어린 날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옛 기억을 소환시키려고 불쑥 튀어나온 계기와 맞닥뜨렸다. 지난 2011년이었는데 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페스티벌을 연출해달라는 제안이었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던 터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고민을 며칠 동안 이어간 끝에 수락했다. 진짜 고민은 이때부터였다. 사실 2010년 설문대페스티벌을 평가해달라는 부탁에 지독한 혹평을 했던 것이 부메랑처럼 나에게로 되돌아온 것이다. 모름지기 연출을 맡는다면 설문대를 소환하는 절실한 동기는 물론 설화를 분석하고 축제에 걸맞는 주제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 여며야 할 단추 아닌가. 평가를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이해가 필요했다.

금릉석물원에 있는 장공익 명장의 작품 ‘설문대할망 신상’(사진=한진오)
금릉석물원에 있는 장공익 명장의 작품 ‘설문대할망 신상’(사진=한진오)

제주의 굿판에 설문대의 자리는 없다

이쯤되면 ‘굿을 그렇게 오래 탐구했다면서 설문대를 제대로 모른다니 그게 말이 돼?’ 이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있겠다. 틀린 질문이다. 제주도굿 속의 신들이 무려 1만8천이나 된다는데 설문대도 당연히 있으려니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다.

애초에 인류가 세상을 주재하는 힘을 상상하는 능력을 얻었을 때 최초의 신들은 자연물 자체였다. 시간이 흐르며 눈앞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광물과 동물과 식물이며 자연현상을 숭배하던 것을 넘어서서 초월적인 존재를 상상했다. 물고기와 새가 합쳐진 신이며 황소와 사람이 합쳐진 신들을 여기저기서 태어났다. 사냥으로 연명하던 시대에는 수렵신이 필요했고 괭이를 쥐고 씨를 뿌리던 시절에는 농경신이 필요했다. 인간의 상상은 자신이 신과 닮았다는 데까지 이어지며 제주의 1만8천 신들처럼 세계 곳곳의 신들이 태어났다.

이렇게 하나의 신이 새롭게 탄생하면 전 시대의 신은 신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떠나 그림자 한 점 남기지 않고 속절없이 자취를 감췄다. 우라노스가 크라노스에게 거세를 당하고, 크라노스는 다시 제우스의 손에 쓰러진 것처럼. 어떤 신들은 최후의 사연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했고, 또 어떤 신들은 옛이야기 속에만 머물 뿐 더 이상의 권능을 내보이지 않는 전설의 존재가 되었다. 신화는 말 그대로 의례와 더불어 종교의 밑바탕이 되는 뿌리였는데 불경스러운 표현을 쓴다면 효용 가치를 상실한 신은 사라지기 마련인 것이 인류사의 명백한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제주섬의 창조주 설문대 또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굿에서 빠져나가 전설의 존재가 되었다. 물론 굿을 탐구하다 보면 드문드문 설문대를 떠받들었던 사례와 만나기도 하지만 존재감은 미미하다. 아무튼 설문대할망제를 내리 3년 연출하는 사이 나는 여신의 모든 것을 깊숙이 탐구하며 온 섬을 속속들이 누비는 설문대루트 탐험가가 되었다.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비념의 한 장면. 2020년 5월.(사진=한진오)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비념의 한 장면. 2020년 5월.(사진=한진오)

설문대루트 대장정에서

설문대할망페스티벌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신 탐색의 여정을 시작한 뒤 4~5년 동안 진행한 답사와 분석의 결과는 두 가지 작업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오디오드라마 ‘숨을 잃은 섬’의 극본이었고 다른 하나는 탈장르작업인 ‘사남굿 설문대’의 연출이었다. 두 가지 작업을 위해 제주섬의 신화와 전설을 탐색하던 중에 설문대와 비슷한 존재들도 만났다. 제주도의 우주창조신화인 초감제에 등장해 하늘과 땅을 떠받쳤다는 도수문장, 곽지리 과오름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는 과오름하르방이 있었다. 횡간도를 공깃돌로 쓰려고 했다는 추자도의 거인 엄바구장사 전설지를 찾아갈 땐 죽을 정도로 뱃멀미에 시달리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지고지순하게 이어진 여신을 향한 짝사랑은 설문대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해줬다. 어찌하여 여신께선 일출봉의 등경돌에 불 밝히고 옷을 기웠으며 이 섬 여러 곳에 솥단지를 앉혀 밥을 지었을까? 권능의 상징과도 같은 여신의 왕관, 족감석을 벗어두고 물장오리의 심연 속으로 영영 사라졌을까? 여신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곳을 물어물어 신발끈을 야무지게 매조지고 무던히도 헤맸다. 마침내 하나의 현장을 찾아내 전설 속에 숨겨진 신성한 메시지를 하나둘씩 깨닫는 순간은 절절한 세레나데에 대한 화답이라도 얻은 것처럼 열 오른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렇게 공들인 보람이 작업으로 이어져 두 가지의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대중의 평가를 떠나 자족감에 충만하기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글 꾸러미 ‘섬이 된 할망’은 십여 년간 벌여온 설문대루트 대장정의 리포트이며 굿밖에 모르는 얼치기 예술가의 창작노트다.

1998년 전국체전 성화 점화(사진=MBC뉴스 영상 갈무리)<br>
1998년 전국체전 성화 점화(사진=MBC뉴스 영상 갈무리)

 

창조주를 향한 빗나간 프레임

때론 지루할 만큼 길 수도 있겠고 때론 무성의할 만큼 짧을 수도 있는 ‘섬이 된 할망’ 시리즈에 앞서 설문대에 대한 세간의 시선에 대해 두 가지만 진단하고 첫 만남을 마무리하고 싶다.

2000년대 들어서서 폭발적으로 이어진 뭍사람들의 제주러시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제주신화 열풍은 설문대를 이 섬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로 떠오르게 했다. 전설의 경계를 넘어서서 다시 신화의 영역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가히 ‘설문대리턴즈’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나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필자 또한 그런 조류를 탔으니까 어깃장을 놓는 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기도 하겠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니 해야겠다.

첫째, 우리는 설문대를 이야기할 때 드러나는 신체성에만 매몰된다. 거대한 외형에만 홀려 마치 어밴저스의 캐릭터라는 된다는 듯이 모름지기 설문대를 형상화할 때 일단 커야 한다고 여긴다. ‘할망’이라는 단어에 갇힌 해석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이들은 늙은 노파로 설문대를 형상화한다. 이들이 신체성의 프레임에 갇혔다기보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러하다. 할망이라는 말은 할머니처럼 너그럽고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은 지혜로 충만해서 그리 부르는 것인데 유치하게 진짜 노파로 만들어버렸다고 책망한다.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뒷전이고 드러나는 외형에만 갇혀 할망이 어쩌니저쩌니하기 전에 생각해보시라. 우리가 단군할아버지라고 부르거나 특정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인류의 신앙이 조상숭배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다. 나는 신의 피조물이며 신이 나의 부모라는 관념이다. 제주섬의 창조주를 할망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물학적 신체성에서 벗어나 신과 인간이 하나라는 신인합일의 세계관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설문대를 모성의 존재로만 한정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설문대가 오백장군을 낳은 어머니 여신이며 그들을 위해 죽솥에 빠져 죽어 고결한 희생으로 모성의 상징이 되었다고 입이 마르게 칭송한다. 사실 설문대와 오백장군 전설은 애초에 상관없는 전설 두 가지를 6~70년대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재가공된 것이라며 학계에서는 여러 차례 비판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왜곡 여부를 뒤로 물려놓더라도 모성에만 매몰되는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선이다. 설문대는 제주섬의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인데 하필이면 어머니의 모성만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세상의 창조신들은 남신과 여신을 초월한다. 남신이 아기를 낳고 여신이 아버지의 몸에서 태어난다. 생물학적 성징으로 남신과 여신을 구분 짓는 신체성도 경계해야 하지만 더더욱 삼갈 것은 신성에게도 현모양처의 순결한 희생을 요구하는 남성적 시선이다. 비단 이것은 설문대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제주신화는 물론 세계 곳곳의 신화를 관통하는 남성중심주의다. 오죽하면 이미 1980년대에 시노다 볼린이란 신화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신성한 힘은 젠더 너머에 있다.’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작가.(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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