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기떡. 전통 오메기떡과는 차이가 크다. (사진=플리커닷컴)
오메기떡. 전통 오메기떡과는 차이가 크다. (사진=플리커닷컴)

소설 <운수 좋은 날>에 김첨지가 “이런 오라질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이라며 아내에게 야단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조는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곡식이었다. 조는 해방 전까지도 70만ha 정도의 면적에서 재배되었을 만큼 삼국시대부터 오곡 중 하나로 꼽혔다. 

벼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제주도에서 조는 더욱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제주사람들은 조밥과 조범벅을 먹었고, 다양한 조떡과 조로 빚은 술을 제상에 올렸다. 1960년대까지도 제주도 경지면적의 1/3이 조밭이었다. 

조는 제주도 무속 신화에도 등장한다. ‘세경본풀이’에서 자청비 부모는 성추행범 정수남이를 청미래덩굴로 찔러 죽이고 온 자청비에게 넓은 밭에 좁씨를 닷 말 닷 되 칠새 오리나 뿌려놓고, 그 좁씨를 남김없이 주워오라고 한다. 

자청비가 눈물로 다리를 놓으면 그 좁씨를 모조리 주워가는데, 한 알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청비가 체념하고 담 밖으로 나오는데, 개미 한 마리가 그 좁씨 한 알을 물어서 나오고 있었다. 자청비는 좁씨를 빼앗으며 개미허리를 발로 밟았다. 그래서 개미허리가 홀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 전시실에 있는 농경의 여신 자청비.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 전시실에 있는 농경의 여신 자청비. (사진=제주투데이DB)

조는 제주 농요(農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2년, 제주특별자치도 제16호로 지정된 ‘밭 밟는 소리’, ‘사대소리’, ‘타작소리’도 좁씨를 뿌린 뒤 밭을 밟고, 조검질(김)을 매며, 타작할 때 불렸던 노동요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조는 ‘여우꼬리조(foxtail millet)’ 계통으로 재배역사가 오래된 만큼 품종도 다양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금양잡록>에는 15개의 품종이 소개되어 있고, 1933년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는 우리나라에 재배하는 3279개의 수집종을 분류하여 1085개의 이품종명을 부여하였다. 

1985년, 박양문의 ‘제주지방 재래종 조품종에 관한 연구’에는 수내시리, 흐린생이조, 모인생이조 등 34개의 품종이 제주도에서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재래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다행히 최근에 농진청에서 잡곡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품조, 조황메, 삼다찰 등을 육성하여 보급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약 110ha의 면적에서 220여 톤을 생산하고 있는데 전국 생산량의 12% 정도를 차지한다.

농촌진흥청의 연구에 따르면 조는 α-아밀라제(Amylase) 및 α-글루코시다아제(Glucosidaze) 저해 효과가 있어 당뇨에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세인트 토마스 병원의 고혈압 연구소에 따르면 조에 들어 있는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관리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조에는 식이섬유도 백미보다 7배 이상 들어 있다. 따라서 조를 꾸준히 섭취하면 변비 해소, 콜레스테롤 저하, 혈당조절에 도움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에는 수면을 촉진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세로토닌(Serotonin) 호르몬을 촉진하는 트립토판(Tryptophan) 성분이 곡류 중에는 가장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신경이 예민할 때 좁쌀죽을 끓여 먹었었다. 

전통 오메기떡. 차좁쌀 가루를 반죽해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 구멍을 낸 뒤 끓는 물에 삶은 떡이다. (사진=플리커닷컴)
전통 오메기떡. 차좁쌀 가루를 반죽해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 구멍을 낸 뒤 끓는 물에 삶은 떡이다. (사진=플리커닷컴)

나는 오메기에 대한 향수가 크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실 술을 담그기 위하여 오메기떡을 만드셨다. 흐린조 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하여 둥글게 편 뒤,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돌리면서 도넛 모양의 술떡을 빚으셨다. 그리고 그 떡들을 끓는 물에 넣고 배수기(죽을 쑬 때 휘젓는 나무 주걱의 제주어:편집자)로 저으며 더 끓이다가 익으면 꺼내셨다. 이 떡이 오메기떡이다. 

그때부터 나의 본능이 살아 움직였다.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떡에 누룩가루를 섞고 떡 삶았던 물을 부으며 떡을 하나씩 으깨며 버무리셨다. 그러다 살짝 오메기떡 하나를 나에게 주셨다. 

가루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던 나는 찰지고 흐랑흐랑(물렁물렁의 제주어:편집자)한 떡을 씹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떡을 먹으면 단 것에 익숙해진 혀가 맛없다며 거부할 지도 모른다. 

오메기떡이 항아리에 들어가 발효되면 감주가 된다. 감주의 맑은 윗부분만 따르면 오메기술이고, 그냥 막 휘저어서 마시면 좁쌀술이다. 오메기술을 증류하면 고소리술이 된다. 나는 도수가 낮고 달달한 술을 좋아한다. 어릴 때 고팡(식품을 보관하는 창고의 제주어:편집자)에서 혼자 감주를 몰래 마셨던 경험이 몸에 각인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최근에 보리빵과 함께 제주 특산품으로 자리 잡은 오메기떡은 전통 오메기떡과 전혀 상관없다. 지금의 오메기떡은 찹쌀가루에 쑥이나 차조가루를 첨가해 진녹색을 띠도록 하고, 반죽 안에 팥소를 넣어 둥글게 빚은 뒤 팥·콩고물이나 견과류를 묻힌 떡이다. 

이 떡이 오메기떡으로 불린 것은 ‘떡담’이란 떡집이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쌀가공식품산업대전’에서 이 떡을 ‘오메기떡’이란 이름으로 출품하면서부터다. 이후 TV 예능 프로그램 ‘수요미식회’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조가 들어가지 않고(들어가도 첨가물 수준으로 들어가는), 모양도 오메기떡과 전혀 다른 떡이 오메기떡이란 이름을 얻었다.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현재 '오메기떡'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원재료. 제주산이 없는데도 버젓이 제주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사진=고기협 제공)

이제 사람들은 오메기떡 하면 으레 이 오메기떡을 떠올린다.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오메기떡의 원료에는 제주산이 하나도 없다. 주재료인 찹쌀은 국내산이고, 팥 등 부재료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그런데도 제주 특산품으로 버젓이 팔린다. 

잡(雜)이 붙었지만 잡곡은 인류의 생존을 책임져온 곡식이다. 또한 강한 생명력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 지구가 더워지고 물이 부족해도 재배할 수 있는 미래의 중요한 식량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3%이다. 그리고 2019년 1인당 양곡 소비량은 66.3kg이다. 쌀이 57.9kg, 보리쌀 1.4, 밀가루 1.1, 두류 1.9, 서류 3.1, 잡곡 1.1이다. 쌀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입해서 먹는다. 

향후 농업발전전략을 수립할 때는 조, 메밀, 기장, 수수, 밀, 옥수수, 팥, 녹두, 콩, 고구마 등 식량작물들을 반드시 포함시켜 자급자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어릴 때부터 잡곡밥 먹는 것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식생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식량주권 및 건강과 환경을 지킬 수 있고, 농업도 지속가능해진다. 

끝으로 <운수 좋은 날>의 내용이 바뀌는 상상을 해 본다. 

“저런 오라질 놈! 피자도 못 먹는 놈이 조밥은”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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