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양용찬이 꿈꾸었던 제주, 세상에서 가장 붉은 노을을 등에 이고 참말 제주사람들이 두루 어울려 어깨 겯고 발맞추며 아름다운 굿판을 열어가는 봄섬 제주의 그림을 그려본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사거리에서 딸아이와 제2공항 반대 피케팅.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사거리에서 딸아이와 제2공항 반대 피케팅.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에 터 붙이고 산 지 8년째다. 조금은 제주를 알 것 같고 조금은 제주사람이 된 것도 같고. 제주를 향하여 내 목소리를 내어도 좋을 법하다 싶은데 아직 ‘육짓것’이라는 콤플렉스는 흔쾌히 가시지 않는다.

제주어(왜 제주말이라 안하고 제주어라 고집하는지 모르겠지만)로 주고받는 동네 형님이나 삼춘들의 대화를 알 듯 말 듯한데 굳이 알아듣는 체를 해야 할 거 같은. 제 소개할 때 한날한시라도 이르게 입도했다 해야 조금 더 인정받을 거 같은. 어쨌든 면접을 치르는 수험생 모습같은 육짓것의 초조함을 감추기 쉽지 않다.

지난해 한진오의 책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펴냄, 2019)를 숙독한 적 있다. 그이의 슬로건처럼 되어버린 ‘굿처럼 아름답게’에 대하여 도발적일 수도 있는 ‘굿은 아름다운가’라는 제목으로 리뷰를 쓰면서 또 한 번 육짓것으로서의 자기검열을 거친 것도 같다.

어쩌면 굿과 신화를 통하여 제주의 영성과 시원에 가닿고자 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가시리놀부_제주읽기> 또한 ‘누가 제주사람인가(‘제주사람은 누구인가’와 느낌이 다르다)’ 또는 ‘나는 제주사람인가(제주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몸짓일 수 있겠다.

제주에 터 붙이고 살면서 마냥 좋아만 보이던 제주의 모습이 내부인의 눈으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큰 생각거리 중의 하나가 ‘제주다움’ 또는 ‘제주스러움’이었다. 돌문화공원도, 해녀박물관도 들렀다. ‘제주다움’을 표방한 돌하르방공원도 구경하였다. 4·3 평화공원도, 너분숭이도 가보았다.

어찌 보면 위의 것들이 모두 제주며 또 어느 것도 딱히 제주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워 보였다. 제주사람 한진오의 표현대로 끝내 ‘제주사람으로 살아남기’는 무엇인가. 그이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과 사유를 오롯이 지키는 제주사람으로 살아남는 투쟁”이라 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과 사유란 뭘까. 이를 지키고 살아남는 싸움이란 어떤 걸까. 거기에 외지 출신 제주민의 자리는 있는가.

제주사람으로서 제주에 사는 일은 어떤 것일까. 제주의 영성과 신성을 가슴에 품고 기리며 기꺼이 평등과 공생의 굿판을 꿈꾸는 이들, 그럴 것이다. 출신을 떠나서 제주를 아끼고 망가지는 제주를 아파하고 기꺼이 이에 반대하는 이들, 그럴 것이다. 제주에서 나거나 들어와 제주에서 나머지 삶을 살다가 제주에 뼈를 묻겠다는 이들, 그럴 것이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은 없는가. 어쩌면 해답은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1991년 그러니까 무려 30년 전에 개발과 투기자본이 들어와 난개발을 일삼으며 제주의 자연경관을 파괴하고 훼손하며 제주민의 삶터를 거덜 낼 것을 미리 본 듯 제주의 한 청년이 제 목숨을 던져 이에 저항하였다. 양용찬, 그이의 유서에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한다”고 적고 있다.

양식 있는 이라면 누구나 제주의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자연생태의 파괴와 훼손을 안타까워한다. 어쩌면 제주사람은 그러한 개발과 그에 따른 자연의 훼손을 제 ‘삶의 터전’으로서 연결 지어 아파하고 반대하는 이 아닐까. 끝내 제주를 ‘생활의 보금자리’로 여기고 누리고 살아가려는 이 아니겠는가.

제주의 큰 어른인 강우일 주교의 말씀처럼 제주를 살리고자 하는 이, 곧 이 땅 제주가 위급한 비상의 상황임을 인지하고 생명수를 오염시키고 퍼다버리는 어떠한 뻘짓도 용납할 수 없다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들이야말로 참말로 제주사람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어떤 제주도의원이 이주민을 보고 “제주를 떠나라”고 하였단다.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인지 알 수 없으나 집 팔고 땅 팔아 연고도 없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거기에 드센 괸당의 섬에 제대로 살아보려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떠나라 하였단다.

우애와 환대로 품을 벌려 따뜻하게 맞을 일이지 떠나라는 막말싸가지라니. 이른바 지역 토호들 땅 좀 가지지 않았는가. 그이들 비싸진 땅 팔아 얼씨구나 떠날 일이지, 망가진 제주, 생존의 기로에 선 제주를 살려보겠다고 같이 살아보자고 들어온 이들에게 할 말은 결코 아니다.

나는 제주에 ‘살러’왔다. 한때의 자연경관을 벗 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의 모습을 그리며 ‘살러’왔다. ‘굿처럼 아름답게’는 몰라도 30년 전 양용찬이 꿈꾸었던 제주, 세상에서 가장 붉은 노을을 등에 이고 참말 제주사람들이 두루 어울려 어깨 겯고 발맞추며 아름다운 굿판을 열어가는 봄섬 제주의 그림을 그려본다.

다시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성실하고 단정한 몸짓으로 봄섬 제주에 대한 예의와 경의를 다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제주사람인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한다

덧.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가 명절 쇠고 2월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남은 기간 반대 여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밖에. 제주사람이라면.

이성홍.<br><br>
이성홍.

제주에 살러온 8년차 가시리주민이다. '살러오다', 한 때의 자연을 벗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호롱불 아니라도 저녁무렵 은근한 난롯가에서 콩꼬투리를 까고 일찌감치 곤한 잠들어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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