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런던 시내의 거리. 기존의 크리스마스 시즌 치고는 한산한 편이지만 여전히 붐비는 거리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김지민)
지난해 12월 17일 런던 시내의 거리. 기존의 크리스마스 시즌 치고는 한산한 편이지만 여전히 붐비는 거리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김지민)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기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런던 시내의 건물과 나무들은 일루미네이션 불빛으로 환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붐볐다. 택시 창문 밖으로 요맘때만 볼 수 있는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말했다. “내일부터 런던 4단계로 격상이래요.” 창밖을 보고 있는 사이 라디오에서 발표된 모양이었다. 방역 4단계는 흔히들 알고 있는 봉쇄령(lockdown)으로 하루에 한 번 식량 조달을 포함한 일부 허락된 목적을 제외하고 집을 나갈 수 없다. 모든 식당과 카페는 포장 및 배달만 가능하며 비필수시설 (헬스장 등)들이 문을 닫는다. 그렇게 나는 봉쇄령에 접어드는 런던을 극적으로 탈출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며 시작된 K-방역은 영국과 비교하자면 물 샐 틈이 없는 수준이었다. 해외 입국자 확인 절차를 위해 각기 다른 목적의 담당자만 네 번 정도 만나게 했다. 이들은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어플리케이션 설치 여부, 발열 등의 증상 여부, 자가격리하는 곳의 주소지, 그곳까지의 이동 방법 등을 면밀히 확인하였다. 그리고 공항에서 격리지로 이동하면 나와 같은 해외입국자에게는 자가격리 상황을 관리 감독하는 관할 구청 공무원이 1:1로 배정된다. 담당 공무원은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나의 격리 상황을 체크한다. 나의 담당자는 불시에 격리지로 찾아와 내가 격리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동원되는 인력과 구조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방역에 대한 굉장하다는 감정은 곧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관할 선별진료소에서 목도한 어떤 순간 때문이었다. 해외입국자는 격리가 시작될 때와 해제될 때 총 2번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입국 후 검사를 받기 위해 관할 보건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기자가 많아 내 차례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검사대기를 위해 마련된 장소는 야외에 설치된 천막으로 난로가 서너 개 정도 놓여 있긴 했으나 그다지 공기를 데워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서로 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난로 주변으로만 모여든 사람들이 편치만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감기 걸리겠는데, 따위를 생각하며 꽁꽁 얼기 시작하는 몸을 조금이라도 더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안내를 담당하시던 공무원 분이 소방대원 한 분을 대기 장소로 모셔왔다. 검사를 위해 오신 분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내 두 분께서는 연신 사과하시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소방대원 분께서 확진자 접촉이 잦았기 때문에 급히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군소리 없이 몸을 웅크린 채 끄덕끄덕, 동의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격리 해제 전날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상황이 생겼다. 그때는 검사를 받아야 할 소방대원들의 수가 꽤 많아 그랬는지 소방 대장님이 함께 나서서 사과했다. 

왜 저렇게까지 사과해야 할까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은 ‘왜 그들을 위한 전용진료소 또는 우선검사줄이 없는가?’였다. 이것은 고마움이나 미안함의 영역을 떠나서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의료진 및 소방대원과 같은 방역 최전선의 인력들이 무너지면 방역체계에 매우 큰 부담이 생긴다. 그러니 이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대우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당연하다. 영국의 경우, 판데믹 초기 검사 키트의 물량이 충분치 않아 증상이 있어도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우선검사를 받을 수 있는 필수인력들을 따로 구분하여 검사 예약을 가능하게 했다. 군대를 동원하여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를 설치하고 의료종사자들의 우선검사를 실시하기도 했었다. 검사 방법이나 예약 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필수 또는 최전선 핵심인력들을 지정해 명시하고 우선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은 참고할만한 하다.

작년 3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던 첫 번째 봉쇄령 기간 동안 영국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전 국민이 각자의 집에서 박수를 치는 캠페인을 진행했었다. 한국에서 진행된 ‘덕분에’ 캠페인처럼, 의료진 및 핵심 인력들을 응원하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영국의 의료진들은 박수보다는 모자란 보호장비를 제공해 달라고 호소했다. 의료진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박수만 치는 것은 결국 퍼포먼스가 될 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혹시 최전선의 핵심인력들을 그저 ‘코로나 영웅’들이라고 칭송만 하고 있지는 않나? 우리 사회 또한 ‘덕분에’ 캠페인을 퍼포먼스로만 남기지 않으려면 그들의 처우는 어떠한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할 것이다.

 

 

 

 

 

 

김지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제주 4·3에 대해 연구 중인 김지민은 온 마을이 키운 박사 과정생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와 런던을 잇는 [지민in런던]은 매월 둘째주 월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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