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김진숙은 복직할 것이고, 제2공항은 중단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게 진짜 ‘세상 이치’니까."

2021년 2월 7일, 35년 전 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청와대 앞에 섰다. 암 투병 중인 김진숙은 작년 12월 30일 부산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지지와 동참 속에 34일 동안 전국을 돌아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김진숙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인 35년 전 민주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강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회사가 이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해 해고를 당했다. 그후 그의 복직투쟁과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고 정치권에서까지 복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본의 답은 없었다. 작년 12월말로 정년을 맞은 김진숙은 ‘복직 없는 정년 없다’면서 아픈 몸으로 청와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하지만 34일 간의 걸음 앞에도 청와대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같은 날 한반도 남쪽 섬 제주도 성산에서는 수십 명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손을 닿으며 절을 하고 있다. 칼바람에도 땀이 송글송글 배이기 시작한 등에는 ‘반대로 지켜줍서’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2월 15일부터 시작될 제주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서 ‘반대’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하는 성산주민과 도민들의 삼보일배 행렬이다. 2015년 급작스레 제2공항 부지로 성산이 결정된 이후 5년 이상 갈기갈기 찢어진 공동체를 회복해보려는 처절한 몸짓이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 강변했던 강정 해군기지의 현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성찰의 걸음이다. 자본에게만 특별한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채 무기력한 방관자로 내몰린 도민의 울부짖음이다. 하지만 그 울음과 몸짓 앞에 펄럭이는 것은 ‘제2공항 인접, 투자 대박’이 새겨진 플랭카드였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두 풍경이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35년 해고 노동자와 공동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주민들 모두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주체이면서도 정작 그 권력운영의 과정에서 때로는 배제되고 고통 받는 모순적 체제에 저항하는 상황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한창일 때 전국을 순회하는 대행진을 한 적이 있다. 강정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는 사회문제들을 찾아보고 함께 연대하는 마음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제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약 한 달 이상의 기간 동안 많은 현장을 다니고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확인했던 것은 현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노동과 평화, 인권, 환경, 지역을 파괴하는 당사자는 언제나 국가와 자본이었다. 견고한 국가체제와 그를 지탱하는 자본의 힘 앞에 전국 모든 곳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새 정권이 새롭게 바뀌고, 기대를 걸었던 민주화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된 지금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새롭게 권력의 장에 등장한 그들은 변하지 않는 세상, 아니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세상 이치라는 게 말이야’라고 사람들에게 타이른다. 부당하게 한 인간의 삶을 짓밟은 해고와 일개 촌부도 납득할 수 없는 국책사업도 적당히 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받아들이라는 겁박이다.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는 알고 있다. 국가권력과 자본의 눈엔 아무 것도 아닌 한 걸음이 결국 그들만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것을. 옳은 것이 이기고, 희망이 이긴다는 믿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암 투병에도 김진숙과 동료들은 걸었고, 시린 겨울 칼바람에도 성산주민들과 도민들은 걷고 또 걸었다. 끝내 김진숙은 복직할 것이고, 제2공항은 중단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게 진짜 ‘세상 이치’니까.

오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부장원 민주노총제주본부 부장원 조직국장
부장원 민주노총 제주본부 사무처장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