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18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을 맞아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진행된 홍섬담 작가의 '오월' 전시 모습. (사진=안혜경 대표)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을 맞아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진행된 홍섬담 작가의 '오월' 전시 모습. (사진=안혜경 대표)

 

코로나로 전전긍긍하다 2020년 한 해가 지나가버렸다. 독일작가의 올해 전시는 무한정 연기했다. "다시 일자를 정할 때까지 작가도 살아있고 우리 공간도 유지된다면 전시하자"며 서로 웃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확진 여부 통보를 기다리는 시간은 엄청 피 말리는 경험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사람을 멀리할수록 안전해진다니, 젠장! 갑자기 격리되거나 어느 순간 사라지더라도 남겨진 자료들을 누군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빠서 쌓아만 둔 자료를 정리했다. 몸이 불어 작아진 옷들은 새 주인을 찾아갔다. 활동이 주춤해진 격리의 시대에 때맞춘 일이었다. 정리에 일 년의 1/6을 할애했지만 흘린 땀과 들인 시간만큼 정리되고 비워져 기분이 상쾌했다. 전시했던 작가별로 찾아보기 쉽게 자료를 정리해놓으니 안도가 되었다. 바닥에 쌓여 있던 책들과 꽂아둔 책들까지 다 빼내어 내용별로 다시 분류해 재배치한 책꽂이에 꽂아놓고 보니 7할 정도가 아직 못 읽은 책이었다. 필요한 독서 분야가 선명해졌고 의욕도 솟아났다.

독재 정치 권력의 개발 만능과 편향된 가치를 미화하고 내면화하는 공교육과 미디어로 이해한 세상은 휘어진 거울에 비친 상이었다는 걸 대학에 진학한 후 당시 금서였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여성해방의 이론체계> 등 여성학 관련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제한하는 가부장제가 관습, 문화, 예절, 사랑 등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고 강요되고 있었고 그걸 내면화하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칭하는 터무니 업는 망언을 학자의 연구로 둔갑시킨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와 이영훈, 유석춘 같은 이들은 심하게 왜곡된 거울의 생산자들이다. 

예술이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주어 가슴으로 느낀 감동으로 굳어진 뇌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고 세상을 보는 투명한 창이 되어준다고 믿기에 일상과 사회적 이슈를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전시와 여러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어 전시와 영상 등에 관련된 기획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과 영화는 세상의 지식과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길이라 믿지만 아쉽게도 책은 품절이 너무 빠르고 지역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귀하다. 그러니 작품뿐만 아니라 도서와 영화 자료에 집착하게 되는 건 내 소유욕 때문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 역사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되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오늘 나의 확신이 내일도 유효할지 늘 되짚어보는 각성과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내겐 책과 영화와 예술작품들 그리고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의 교류가 오래된 편견을 깰 수 있는 마음의 자양분이다. 다시 쌓이는 자료를 정리할 노동에 기꺼이 시간을 들일 것이다. 

반전 평화와 인권에 영향을 미친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중가수로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했을 때 내심 놀랐었다. 그의 음악 활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롤링 선더 레뷰: 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를 최근 찾아봤다. 알고 있던 유명 노래 이외에도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노래들이 넘쳤고 사회에 참여하는 그의 행동이 남달랐다.

여전히 저항의 향기를 내뿜는 노년의 밥 딜런이 “인생은 찾는 게 아니예요. 어떤 것도 찾는 게 아니죠. 인생이란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예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고요” 라고 말한다. 눈이 확 뜨이고 시원해진다. 맞다. 인생은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 그렇다. 이전의 나가 아닌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것! 맨 땅에 헤딩으론 어림도 없다. 젠장! 그가 창조한 그를 만나러 두툼한 시모음집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을 구입했다. 어디를 펼쳐도 노벨상 수상의 충분한 이유가 느껴진다. 새롭게 창조되는 나를 만나러 그의 시집을 넘긴다.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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