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사회학과 졸업 후 기자를 꿈꾸며 상경해 5년 넘게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던 오수연은 ‘매일한국’ 인턴으로 입사한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의 꿈이 깨진 건 “허접한 지방대 출신”을 팀원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편집국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동료 인턴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를 탈락시키라는 편집국장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오수연은 그날, 매일한국 홈페이지에 부고 기사 형태로 자신의 유서를 송고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사진=JTBC 갈무리)
지방대 사회학과 졸업 후 기자를 꿈꾸며 상경해 5년 넘게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던 오수연은 ‘매일한국’ 인턴으로 입사한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의 꿈이 깨진 건 “허접한 지방대 출신”을 팀원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편집국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동료 인턴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를 탈락시키라는 편집국장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오수연은 그날, 매일한국 홈페이지에 부고 기사 형태로 자신의 유서를 송고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사진=JTBC 갈무리)

 

#1. 쿠팡 노동자의 죽음, 사회복지사는 '왜' 물류센터 알바를 했나?

올초 쿠팡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영하 10도 아래로 추위가 몰아쳤던 새벽, 혼자서 밤새워 일하다 쓰러진 것. 차가운 도시락 하나가 마지막 끼니였다. 지병이 없던 그녀의 사인은 심근경색.

물류센터에선 난방은 고사하고 내내 열린 문으로 강풍이 들어왔다. 고작 몸에 지닌 건 핫팩 하나. 보온병 반입도 금지돼 따뜻한 물은 마실 수도 없었다. "도난 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물품 반입을 막았다”는 게 쿠팡 측의 구차한 변명. 

십 년 전 이혼한 뒤로 홀로 아이 둘을 키워온 한부모 여성가장. 사회복지사인 그녀는 지난해 말 다니던 요양병원을 그만뒀다. 가계를 홀로 책임지고 있던 만큼, 새 직장을 찾기까지 공백을 메꿔야 했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여전히 돈이 필요했던 것. 밤새 일하면 일당 10만원 남짓. 아르바이트를 찾던 워킹 맘인 그녀의 눈에 물류센터 자리가 들어온 이유다. 그렇게 모두 여섯 번, 그녀는 동탄으로 향했다.

#2. “No Gain, No Pain은 이 땅에서 희망 고문이자 환상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열정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배워왔고 믿어왔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세상의 법칙은 내가 배우고 믿어온 것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노 게인 노 페인’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 희망 고문이자 환상이다. 실패에 대한 보험도 없이 꿈을 미끼로 유혹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No Gain, No Pain’...드라마 ‘허쉬’ 의 키워드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편견에 짓눌려 끝내 기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수습기자 오수연.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우리 사회에 내던진 통렬한 메시지다. 수연의 유서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며 ‘육개장 사발면 조문 행렬’로 이어졌다.

‘사탄의 맷돌’은 블레이크가 12세이던 1769년, 그가 살던 런던 서더크 인근에 문을 연 ‘앨비언 방앗간’에서 유래했다.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가 제분 기술자와 함께 세운 그 방앗간은 엄청난 생산력으로 영세 업소들을 압도했으나 2년여 만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도산했다. 당시 그 업소는 경쟁업자들 사이에서 악마의 방앗간으로 통했다.
일러스터 새뮤얼 윌슨 포레스가 그린 '앨비언 방앗간 화재'(1791). ‘사탄의 맷돌’은 블레이크가 12세이던 1769년, 그가 살던 런던 서더크 인근에 문을 연 ‘앨비언 방앗간’에서 유래했다.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가 제분 기술자와 함께 세운 그 방앗간은 엄청난 생산력으로 영세 업소들을 압도했으나 2년여 만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도산했다. 당시 그 업소는 경쟁업자들 사이에서 악마의 방앗간으로 통했다. (그림=wikipedia.org)

 

‘개미지옥’…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만약 어떤 이가 이십 대고, 여성이고, 지방에 살고 있는데, 거기에 고졸이고, 또 약간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 이 사람의 삶은 어떨 것이고, 임금은 어느 수준일지, 도대체 가늠이나 되십니까? 아니, 이 정도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나 있을까요?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다섯 가지나 가진 이 사람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떻게 느껴질까요?”

오래 전 ‘C급 경제학자’를 자처하는 우석훈이 내던진 질문이다. 여러분이 이 처지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의 말처럼, 아마도 '개미지옥'은 아닐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고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개미지옥. 

대한민국에선 네 가지 개미지옥을 거칠 수밖에 없다 입을 모은다. 10대엔 ‘사교육’, 20대는 ‘청년실업’, 30대엔 ‘내 집 마련’, 그리고 마지막으로 40대 이후는 ‘불안한 노년’...이 개미지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자신이 개미지옥에 갇혀 사는 지 정작 모를 수 있다. 알더라도 방도가 없어 모른 체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개미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안으로 꽤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실직한 가장, 취업 못한 자식, 부양해야 할 노부모. 이렇게 실업자 3대가 함께 살아가야 할 판’ 이런 자조 섞인 푸념이 전혀 남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만약 개미지옥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순간 낙오되고, 즉시 춥고 배고픈 인생으로 전락한다. 결국 ‘약한 고리’를 하나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승자독식의 토건국가,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그래서 모두를 개미지옥으로 몰아넣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한국경제에 우석훈은 ‘괴물’이란 딱지를 붙인다. 

사탄의 맷돌, 야수자본주의의 메타포

일찍이 칼 폴라니는 우리가 그토록 신봉해 마지않는 시장경제를 ‘사탄의 맷돌’에 빗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싯귀를 빌려다 쓴 것. 결코 상품화할 수 없고 역사적으로 상품이었던 적도 없는, 자연과 인간과 화폐를 상품화한 ‘거대한 전환’...산업혁명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기루 같은 이 메커니즘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모래알처럼 흐트러뜨렸다 역설한다. 

자연과 인간을 빨아들여 갈아버리는 사탄의 맷돌! 지난 두 세기는 이 악마의 힘을 천사의 날개로 포장하는 문명사적 전환이라 할만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연출하는 멋진 신세계?!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사탄의 맷돌은 모두를 위협할 만큼 지구의 온도를 높인다. 그리고 세상은 오히려 살벌하게 추워진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야말로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다. 꺼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파헤치고 집어삼킨 결과 기후위기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역병으로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휘몰아친 것.

그렇다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을까. 지구의 온도는 낮추고 세상의 온기는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사탄의 맷돌질은 지금이라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칼 폴라니는 말한다. 더 이상 자유주의적 개인이나 신자유주의 시장이 아니라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를 중심으로 새롭게 얼개를 짜야 한다고. ‘Free’가 아니라 ‘Social’이 바로 새로운 전환의 시발점이라고.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 그가 매달 셋째주에 연재하는 '호박벌의 제주비상'은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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