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알로에처럼 물렁한 맛을 상상하시겠지만 다릅니다. 살짝 단맛과 짠맛, 새콤하고 아삭하며 특유의 싱그러운 향도 있습니다. 뜨거운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찬 성질이 있어서 저민 마늘과 향기 나는 허브에 재어 두었다가 불에 구워 치즈와 곁들여 먹으면 잘 어울립니다.

(사진=villizine(김영헌) 영상 갈무리)
(사진=villizine(김영헌) 영상 갈무리)

풍석선생님. 월령리에 다녀왔습니다. 선인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요.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돌담길을 걷다가 그 위에 덤덤히 뿌리 내린 선인장들을 보고 “왜 문익점같이 일 좋아하는 이가 다시 없는 것인가!” 한탄하신 말씀을 떠올립니다.

선생님이 사탕수수를 두고 하신 말씀이셨어요. 월령마을이 생긴 지 200년이니, 선생께서 임원16지를 편찬하고 계실 때쯤에 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셈입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 100년쯤, 구시대의 악습을 개혁하고자 실사구시의 학문이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전후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는 선비인 선생께선 조선과 중국 일본 서양의 지식을 망라해 40년간 집필을 하셨습니다. (저서가 번역되기 시작한 21세기인 지금도 다양한 분야의 제도개혁들로 인해 갈등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영남과 호남의 바닷가 마을 정도면 사탕수수의 종자를 구해다 재배법을 간구하고 가르치면 가능할 일인데, 일부의 사람들만 멀리 연경(북경)까지 가서 설탕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 답답하셨으리라! “중국의 손님 접대 음식은 전부 이 사탕수수에서 나온다”라고 쓰시면서 조선의 새로운 음식문화가 피어나길 바라셨겠지요?

월령리 선인장 밭. (사진=villizine(김영헌) 영상 갈무리)
월령리 선인장 밭. (사진=villizine(김영헌) 영상 갈무리)

제주는 섬나라라는 뜻으로 탐라, 섭라, 탁라라고 불리었지요. 섬나라 제주 주변에 깊이가 300미터 이상 폭이 100km가 되는 따뜻한 난류가 늘 흐르고 있습니다. 멀리 남미대륙에서 시작되어 필리핀과 타이완을 지나 제주까지 오는데 2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이 물은 영양염과 식물성 플랑크톤, 혼탁물이 적어 투명하기 때문에 짙은 청색을 띄어 흑조(黑潮), 즉 쿠로시오 해류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이 해류를 타고 멕시코 근방에서 실려 온 선인장 조각들을, 물질하던 해녀들이 발견할 때도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그렇게 작은 마을의 해안에 밀려와 자생하던 선인장이 천연기념물로 정해진 것이 1976년. 약효로써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을 아는 약재상들의 요구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최근의 일입니다. 

선인장으로 만든 잼.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선인장으로 만든 잼.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200년 전에는 마을이 없었으니 몰랐을 테고 그 후에도 별로 중요하게 살피지 않았고 가시가 있어서 잣성(돌담) 근처에 던져두면 뿌리 내려 뱀이 다니는 것을 막아주거나 드물게 민간 약재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인장은 남미에서 아주 흔한 ‘채소’입니다. 선생이 계셨다면 분명 이 식물에 대해서 ‘왜 문익점같은 이가 다시 있어 가져다 뿌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와서 자라는 채소를 해 먹을 줄을 모르느냐!’ 하시며 관심을 가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멕시코에서는 열매를 ‘prickly pear’ 즉 가시 달린 배라고 하죠. 기온이 높아서 제주선인장의 열매와는 다르게 크기도 더 크고 색도 여러 가지. 맛도 더 달아서 과일로 흔하게 팔립니다.

월령리의 선인장은 재배 초기에 쌀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지역의 좋은 수입원이었다고 해요. 영양성분은 선인장 줄기 100g에 열량이 16Kcal, 하루 권장량으로 따지면 칼슘이 11%, 마그네슘이 11%, 비타민 A와 C가 각 8%, 식이섬유 8%가 되는 좋은 채소입니다. 

선인장 줄기 요리.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선인장 줄기 그릴 구이.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흔히 알로에처럼 물렁한 맛을 상상하시겠지만 다릅니다. 살짝 단맛과 짠맛, 새콤하고 아삭하며 특유의 싱그러운 향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초록색 선인장 줄기를 전혀 쓰지 않고 열매만 따서 쓰고 있습니다. 옛날 월령리 해녀들이 갈증 날 때 해안 돌 위에 자라던 이 열매를 따 먹어보니 갈증에 특히 효과 좋았었다는 말들을 하셨다고 해요. 

멕시코나 주변 나라 사람들은 ‘Nopal’로 불리는 이 채소를 여러 가지로 조리해 먹는데요. 뜨거운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찬 성질이 있어서 저민 마늘과 향기 나는 허브에 재어 두었다가 불에 구워 치즈와 곁들여 먹으면 잘 어울립니다.

아래에 선인장 줄기를 넣어 만드는 간단한 에그 스크램블 조리법을 적어 둡니다. 첨부한 영상에도 선인장 줄기 향이 어우러진 수프 만드는 법이 들어 있습니다. 제주 월령리의 선인장밭 구경도 하실 수 있고요.

선인장은 채소입니다!

선인장 에그 스크램블 만들기

1. 양파와 선인장을 작은 큐빅으로 썰어줍니다.
2. 달구어진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1을 넣어 약간의 소금과 함께 볶습니다
3. 투명하게 볶아졌을 때 달걀을 넣고 소금을 약간 더 치고 스크램블 해주세요.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사진=김은영 제공)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사진=김은영 제공)

우리는 현재에 산다. 과거에서 발원해 끊임없이 흐르며 미래를 향한다. 잊혀져 가는 일만 가능한 흐름 속에서 음식도 그렇다. 냄비 안에서는 늘 퓨전이 일어난다. 잊어버린 현재의 것들을 통해 현재 음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의미있겠다. 최근 출간된 서유구 선생의 <임원16지> 중 '정조지'에 수록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맛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오래된 미래의 맛을 통해서. 

 

김은영 요리연구가.

코삿헌 음식연구소 운영. 뉴욕 자연주의 요리학교 NGI 내츄럴고메 인스티튜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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