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재훈 기자)
서귀포시 시내에 위치한 브런치카페 <애나의숲>(사진=김재훈 기자)

브런치카페 <애나의숲>.

수프(SOUP)를 파는 카페다. ‘숲’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공간 곳곳에 이런저런 식물 놓아두었다. <애나의 숲>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는 데 딱히 말은 필요 없다. 주문하려는 메뉴를 메모지에 써서 카운터를 지키는 애나 씨에게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애나 씨가 메뉴의 가격을 알려준다. 수어를 할 수 있다면 메모지에 메뉴를 쓰는 과정은 필요 없다. 애나 씨는 수어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카드로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으면, 애나 씨가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른 방문자 명부에 이름을 작성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린다. 카운터와 조리실 양쪽으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간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수어로 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내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따뜻한 토마토 스튜.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건강한 맛이다.

(사진=김재훈 기자)
애나의숲 김애나 사장(사진=김재훈 기자)

<애나의숲> 사장은 1997년생 김애나 씨. 사장답게(?) 당당히 카운터를 맡고 있다.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 애나 씨는, 장애를 갖고 있다. 복합장애다. 발달장애와 청각장애, 그리고 뇌병변과 뇌전증. 수어(手語)와 필담으로 소통가능하다. 발달장애로 인지 능력은 비장애 성인들에 못 미친다. 한쪽 팔에는 힘이 잘 실리지 않는다. 그런데, 혹은 그럼에도 창업을 했다. 사장이 돼 카운터를 맡고 있다. 간단한 메뉴도 만들고, 서빙도 한다.

주소: 서귀포시 중동로48번길 8

전화번호: 070-4115-9122

이용시간: 월~토요일 09시부터 21시까지

일요일 휴무

음식점은 창업하면 5년을 버티는 곳이 5분의 1에 불과하다. 10곳 중 2곳. 더군다나 코로나19 여파로 폐업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김애나 씨와 그 가족들은 자영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만치 않을 것이리라 생각했고, 역시 만만치 않다.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나날이다. 애나 씨의 어머니 김도희 씨는 “매일매일 배운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하루하루가 실험의 나날이다. <애나의 숲>은 애나 씨가 독립적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실험하는 장소인 셈이다. 그의 부모는 그 뒤에서 뒷받침하는 방식을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매일 마주하게 된다.

(사진=김재훈 기자)
화분에 물을 뿌리고 있는 김애나 씨 (사진=김재훈 기자)

<애나의숲>은 지난 2020년 8월 8일 문을 열었다. 장애인창업지원센터에서 창업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선정됐다.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크다면 큰 돈. 하지만 가게를 여는 데는 어림없었다. 커피 관련 기계들과 관련 집기류만 해도 몇백만 원이 들어갔다. 애나가 가지고 있는 돈에 아빠 돈을 보탰다. ‘애나 사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가족이 모두 달라붙은 셈이다. 하지만 <애나의숲>이 개업한 때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자영업자들이 휘청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창업을 연기할 수는 없었다. 지원금을 지급하는 기관의 스케줄과 사정에 따라야 했기 때문.

카페 운영을 위한 실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현장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으뜸가는 공부과정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현재도 매일매일 좌충우돌이다. 반복되는 일들은 애나 씨에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조그만 부분에 변수가 생기면 어머니 김도희 씨가 나서서 해결사 역할을 해내야 한다. 다시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장이 된 발달장애인의 사례는 아마, 애나 씨가 처음 아닐까. 처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극히 드문 케이스다. 비장애인들도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보따리를 싸는 냉혹한 자영업의 세계에서 발달장애인이 사장 노릇을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아닌 게 아니라 애나 씨는 사장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카운터를 보게 한 이유가 있을 터. “오픈 전 업무분담을 위한 회의에서 애나 본인이 카운터를 보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수 개념이 약하거든요. 한 시간 내내 설득을 했고, 다른 역할을 하겠다는 답을 받았는데... 막상 오픈 날짜에는 카운터에 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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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로 소통 중인 김애나 사장과 어머니 김도희 씨(사진=김재훈 기자)

자존감 강한 애나 씨는 카운터를 맡겠다는 의욕을 보였고 가족은 존중했다. 김도희 씨는 “애나를 위해 여기가 존재하니까, 자립을 위해 본인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한 거죠. 근데 손님 입장에서는 카운터를 지키는 분이 일단 말로 소통을 하지 못하니, 상황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몰래 도와줬는데, 애나가 눈치를 챘어요. 째려보더라고요. 이 분이 자존심이 상했던 거죠.”

‘이 분’. 김도희 씨는 딸 애나 씨를 줄곧 ‘이 분’이라고 높여 불렀다. 일단 서류상 <애나의숲> 사장은 애나 씨이기 때문일까.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발달장애로 종종 아이처럼 행동하는 애나 씨를 어머니가 먼저 성인으로 대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또 사회가 성인으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말투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김도희 씨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농림식품부의 공모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요리책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선정된 것. 김도희 씨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럼에도 요리책은 단순명료하고, 실용적이다. 발달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엄마의 입장에서 직접 자식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요리책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담겨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메뉴는 밥짓기, 계란말이, 오이피클, 된장찌개. 이 네 가지 요리를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생존요리’로 보고 요리법을 그려넣었다. ‘눈높이’ 요리책인 셈이다. 물론, 발달장애는 개인마다 그 정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발달장애인 전체를 위한 요리책이 되기는 어렵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정도의 인식 능력이 있으면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요리책이다.

이 책은 2019년에는 서귀포의 장애관련 전문가들 및 장애인 부모들이 참여하여 사회적 협동조합 '제주드림'을 설립한 후 발달장애인의 일자리와 자립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2020년에 발달장애인 성인을 위한 요리교실을 열고 요리교실의 성과에 힘을 얻어, 책과 영상작업까지 진행한 것. <애나의숲>은 앞으로도 분주할 예정이다. 사장 애나 씨는 사회를 배워갈 것이고, 김도희 씨는 딸 애나를 비롯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과 실천을 해나갈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진=김재훈 기자)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애나 사장, 김연희 활동보조사, 김애나 사장의 아버지 김상화 씨, 어머니 김도희 씨(사진=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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