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틀대며 조금씩 나아간다. 그게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노래 한 곡 들으며 가도 좋으리. 그룹 ‘열반’(Nirvana)이 부른 <젖비린내(Smells like teen spirit)>를 철들 무렵에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리차드 도킨스 박사의 주장을 짧게 요약하면, ‘종교는 물론, 신의 존재는 다 거짓부렁이다. 따라서 믿을만한 게 못 된다. 종교 대신 과학을 믿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마지막 문장이다. 

책의 영어 제목은 ‘Outgrowing God’인데,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outgrow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어판 제목으로 쓰인 ‘만들어진 위험’은 조금 맥이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는 셈이다. 

어쨌든 도킨스 자신이 바로 그 outgrowing God의 전형적인 경우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리스도인으로 자랐다. 나는 그리스도교 학교에 다녔고, 열세 살 때 영국국교회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열다섯 살 때 마침내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했다.” 

우리로 치면 중학교 2학년 정도,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혹은 철들 무렵(불어로는 l’age de raison이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옮기면 ‘생각할 나이’ 정도가 된다)에 자발적으로 신앙과 작별했다는 것이다. 

신앙을 버린 그가 간 길은 과학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도킨스는 우리를 향해 종교를 버리라고 이성적으로 설득, 권유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과학의 최고 무기는 이성(raison)이다. 그러나 그 이성은 과연 종교보다 우월한가? 사실이 아니니, 존재하지 않으니 믿지 말라? 과학은 인간의 무지몽매를 꾸짖으며, 종교를 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보라.

“하지만 그 위대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거의 절반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다행히 나머지 절반이 있고, 그들은 미국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강국으로 만들었다. 만일 <성경>의 모든 말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적으로 무지한 절반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미국이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미국? 위대함? 과학 강국? 미국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위대한 미국이여 다시 한번!(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를 앞세운 트럼프가 다스리던 나라다. 그 나라가 과연 온전한 나라였던가? 과연 미국민의 이성은 온전한 것이었던가? 

과학과 이성을 결합한 것은 데카르트(Descartes)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의 주인공이시다. 인간의 이성을 모든 만물의 잣대로 삼은 사람. 그것으로 서양 근대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춧돌을 놓은 사람. 근대과학은 데카르트의 첫 번째 자식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생각해보라. 내가 생각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의 숨겨진 비밀을. 나 아닌 그 어떤 타자는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는 그는 나보다 열등한 존재가 된다는 함의를. 생각이 없는 그들은 비(非)존재며 내게 머리 숙여 마땅하고, 나의 의무는 그들을 계몽시키는 것이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는 이성이 일구어야 할 식민지였다. 이성-과학은 제국주의와 동의어였다. (도킨스 씨, 사실이니 믿으시라!) 

오해는 피하자. 종교의 폐해에 눈감자는 게 아니다. 2000년의 종교와 200년의 과학을 등가로 비교하자는 것도 아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세상을 살균하는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도킨스의 말처럼, 종교의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보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인간들이 훨씬 더 이성적이어야 맞는 게 아닌가? 종교는 시대착오적이고 낡았다. 과학은 늘 최전선을 달린다. 그런 과학에 경고등이 켜진 것 또한 이미 오래다. 

생태론의 한 페이지만 들춰봐도 ‘과학적 인간들’이 어떤 풍경을 빚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과학은 결코 투명한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만이 인간 지식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릴 수도 없다. 가우디(Gaudi)가 말했던가. 자연계에 직선은 없다고. 

우리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이기도 하고 심지어 호모 임비벤스(Home Imbibens, 술 마시는 인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틀대며 조금씩 나아간다. 그게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노래 한 곡 들으며 가도 좋으리. 그룹 ‘열반’(Nirvana)이 부른 <젖비린내(Smells like teen spirit)>를 철들 무렵에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A mulatto An albino A mosquito My Libido / A denial a denial a denial. 검은 놈, 흰 놈, 모기, 나의 리비도. 모두 다 내 편이야. 우린 거부해. 모든 걸. 우린 거절이야. 타협은 없어.”(가사 번역 참조 https://hunhamble.tistory.com/708) 이렇게, 도킨스의 과학으로의 권유를 삐리용은 거부한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하여, 믿습니까? 믿습니다!

p.s. 백기완 선생은 통일이 종교였고 민중이 신앙이었다. 못다 이룬 꿈들은, 없지만 있는 그곳에서 다 이루시고 평화를 누리시길. 마음으로나마 술 한 잔 올립니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세상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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