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 관아지 전경. (사진=고봉수)
제주목 관아지 전경. (사진=제주특별자치도 디지털콘텐츠)

나의 어린 시절, 제주목 관아지는 법원, 검찰청, 경찰서, 세무서 등 18개 동의 건축물이 모여 있었던 곳이다. 지금의 제주 정부종합청사보다도 더 많은 공공기관이 제주목 관아지에 있었던 셈이다. 검찰청과 경찰서가 있어서 그런지 그 앞을 지날 때면 왠지 무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법원과 검찰청은 1972년 12월에, 제주경찰서는 1988년 10월에 광양으로 옮겨갔다. 공공기관의 이전이 원도심의 공동화를 재촉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법원과 검찰청이 이전한 빈 건물에는 민간이 운영하는 사업장들이 들어섰다. ‘오도관’이라는 태권도장도 그중 하나였다. 요즘은 부모가 자녀를 태권도 학원에 많이 보내지만, 당시에는 자녀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가 드물었다.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아버지 몰래 ‘오도관’을 몇 개월 동안 다녔었다. 매일 새벽에 도장에 모여 사라봉까지 구보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태권도장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나무 둘레에 설치된 원형 철제 벤치에 앉아 분수대와 관덕정을 보면서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곳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던 것이다. 

80년대 초 대학 시절 어느 여름날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가 길어졌다. 밤늦게 집에 도착해보니 현관 입구가 잠겨있어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곳 원형 철제 벤치에서 노숙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집에 들어가다가 일찍 가게 문을 여는 어머니와 마주쳤다. 

야단맞을까 봐 당황하던 나는 “새벽 운동 갔다 왐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재빨리 “예”하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던 추억이 있다. 그 후로도 원형 철제 벤치에서의 노숙은 몇 번은 더 있었던 것 같다.

기간지주. (사진=고봉수 제공)
기간지주.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목 관아의 담장 서편에 기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이곳에는 한짓골 사는 내가 무근성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자주 다녔던 길이 있었다. 지금은 복원사업으로 인해 그 길은 없어지고 담장으로 막혀있다. 1991년에는 이 일대에 지하주차장 조성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는 주차장 확보 없이 조성된 지하상가의 주차장 필요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차장 조성을 위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관아건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주차장 조성사업은 문화유적 복원사업으로 변경되었다. 1998년까지 인근 사유지 매입, 부지 정리와 건물철거 등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철거공사가 한참이던 1997년 8월에는 옛 법원 청사 공사 현장에서 알몸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관덕정 주변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여성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현재까지 영구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있다. 원도심 공동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복원 이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목 관아 활용에 대한 많은 용역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화를 못 느끼고 있다. 지표면의 높낮이 차이로 인한 접근성의 어려움, 높은 담장으로 인한 폐쇄성, 관 주도의 이벤트성 공연의 한계, 박제화된 전통적 문화재 관리방식 등 기존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원도심 활성화의 주요 방안의 하나가 제주목 관아 인근 문화재의 적극적 활용이라고 본다. 제주목 관아의 활용은 관광객 유입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삶과 생활에 대한 고민에서 접근한다면 활용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일부 지역주민들이 모여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를 결성하였다. 시민 689명의 서명을 받아 9월 1일에 “제주목 관아를 사적공원(시민공원)으로 개방을 촉구하는” 주민청원을 제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4가지이다

 1. 개방형 사적공원(시민공원) 조성
 2. 야간개장을 통한 원도심 야간 명소 조성
 3. 박제화된 관리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 활용방안 모색
 4. 제주 문화의 명소로 조성

대문 개방 전(왼쪽)과 개방 후(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대문 개방 전(왼쪽)과 개방 후(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목 관아가 1993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제주목 관아의 주인은 문화재청이고 제주특별자치도는 세입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지방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현실이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를 요청했다. 

그 결과 이달 초부터 제주목 관아 공간 사용 신청이 서류 작성 후 문화유적과에 방문 접수하던 것에서 온라인 신청으로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20년간 닫혀있던 진해루의 대문이 상시 개방되어 외부에서 관아의 일부 내부 풍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활짝 열린 진해루 너머에는 매화가 고즈넉하게 피어있다. 봄소식을 미리 접하고 싶다면 제주목 관아에 가보길 권한다. 

저녁이면 나와 아내는 가끔 제주목 관아 담장 길을 산책한다. 올해 초부터 담장 따라 경관 조명이 설치되면서 담장 길 풍광이 멋스러워졌다. 그런데 고증해서 복원되었다는 귀중한 담장 중간중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크린하우스가 세 군데나 있다. 제주목 관아 주변 주민들의 반대로 이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목 관아의 가치를 제대로 알린다면 크린하우스를 적당한 위치로 옮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행정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담장 길(왼쪽)과 서쪽 담장 크린하우스(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담장 길(왼쪽)과 서쪽 담장 크린하우스(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목 관아의 활용에 대한 몇 가지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1. 문화재 개방과 활용
   • 문화재를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활용
   •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한 야간개방 추진. (예. 원주 강원감영)
2. 다양한 운영 방식
  • 사적 공원 형식으로 문화재 관리와 공원 관리를 병행하는 방식 도입
  • 전면 개방 운영이 어렵다면, 새벽과 밤에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개방 시간의 탄력    
    적 운영 
3. 시민 향유를 위한 접근성 개선
  • 전통 담장의 높이 하향화나 개방형 담장 도입 논의
    (예. 원주 강원감영 복원 시 2단계 구간은 1.2m로 낮춤, 대구 경상감영공원의 무담장)
  • 무료입장, 유니버설 디자인 도입 및 전면 진입부의 보행 환경 개선

문화재청,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했으면 좋겠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자연유산본부에서 발주한 ‘제주목 관아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 연구’(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목 관아 복원사업은 자체로 완결되는 자족적인 사업이 아니라 원도심의 활성화와 직결되는 사업”이라면서 “각각의 복원사업이 지역과 연계되지 않으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므로 제주목 관아 복원사업과 원도심 재생사업을 연계하기 위한 지방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제주목 관아를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이며 ‘도시 생활의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지방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기대해 본다.

진해루 야경. (사진=고봉수 제공)
진해루 야경. (사진=고봉수 제공)
고봉수.
고봉수.

제주 성안(원도심)에서 태어나 5대째 사는 토박이. 고교 졸업 후 30년만인 2012년 한짓골에 있는 생가로 돌아와 보니, 과거 제주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한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관덕정 광장 주변 활성화 사업’의 주민협의체 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에는 제주목 관아를 사적공원(시민공원)으로의 개방을 요구하는 주민청원을 도의회에 제출한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의 대표를 맡았다. 한짓골에서 건축 관련 사무소 ‘이엠피 파트너즈’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한라대학교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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