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한수리 영등굿에서 한라산을 향해 기도하는 해녀. (사진=한진오 제공)
한림읍 한수리 영등굿에서 한라산을 향해 기도하는 해녀. (사진=한진오 제공)

 

구름 속의 손 물결 속의 발

할머니의 갈린 목소리는 다른 세상을 잇는 게이트였다. 아이는 할머니로부터 노일저대와 자청비, 콩데기 ᄑᆞᆺ데기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갈 수 없는 세상과 만나곤 했다. 그들은 모두 할머니가 꾸며낸 실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의심이 없진 않았지만 단 하나의 증거 때문에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산이었다. 얼마나 컸으면 한라산을 만들었을까. 커다란 할망이 섬을 만들고 그 가운데 높은 산을 만들었다니. 아이는 구름결을 매만지는 커다란 손과 일렁이는 물결을 헤치는 거대한 발을 상상했다. 하얀 솜털이 꽃수염으로 바뀌어 거뭇거뭇 짙어가며 상상이 이울어지기 전까지는.

아이가 다시 설문대를 떠올렸을 땐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되돌아온 기억 속의 여신은 어릴 적 지녔던 절대적인 믿음보다는 의문의 존재였다. 달리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여신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었으니 아이는 스스로 물음표가 되었다. 물음표는 그렇게 설문대의 흔적을 찾는 탐사에 나서며 무엇보다 먼저 한라산을 바라보며 섬과 산의 창세기를 상상했다.

산이 되어 섬에 잠든 여신

나는 물음표가 되었다. 새삼스럽게 설문대할망을 탐색하게 되는 사이 물음표의 첫 여정은 한라산이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든 이야기는 물음표가 아니더라도 아는 이들이 많다. 치마폭으로 흙을 날랐다거나 거대한 삽으로 퍼서 산을 만들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산부리를 손으로 뽑아 내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고 빈자리는 백록담이 되었다는 사연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근데 할망께선 무슨 이유로 산부리를 뽑아냈을까?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한라산을 깔고 앉아 빨래를 하려는데 너무 뾰족한 것이 불편해서 뽑아낸 것이라고 한다. 멀리 날아가서 내려앉은 봉우리가 산방산이 되었다. 그 탓에 한라산은 암산이고 산방산은 숫산이 되었으니, 산방산을 백록담에 끼워 맞추면 제짝을 찾은 것처럼 영락없이 들어맞는다고도 한다. 비슷한 이야기 중에는 다랑쉬오름도 제법 높아서 봉우리를 툭 쳐서 파냈다고 한다.

백록담과 산방산의 사연 중에는 사냥꾼과 옥황상제의 이야기도 있지만 설문대할망의 행적이 한 가지 더 있다. <백록어문22집>(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2006)에 실린 이야기는 사뭇 다른 사연이다. 

오백 명의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 죽었다. 사실을 모르고 죽을 먹던 아들들이 아버지의 뼈를 발견한 뒤에 통곡하던 나머지 그 자리에 돌이 되었고 낙심한 할망이 산부리를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는 할망이 죽솥에 빠져 죽었다고 해서 이와 다르다. 할망이 죽솥에 빠져 죽었다며 어머니의 순결한 희생과 모성에 감동하는 이들에겐 다소 충격적일 수 있겠다.

이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이렇게 단 한 가지의 서사로만 전승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당연히 해석 또한 한 가지 답으로 모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해서 할망이 한라산과 백록담, 그리고 산방산을 만든 창조성보다 희생과 모성을 강조하는 것만 부각되는 것일까.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남성중심의 시선이다. 여성의 본성을 모성에 고착시키는 권력화된 사회의 태도가 신성에게도 미친 것이다. 여신은 당연히 어머니여야만 한다면 죽솥에 빠져 죽은 아버지는 지고지순한 부성인가 묻고 싶다. 희생의 모티프를 젠더의 문제로 한정 짓지 말고 천변만화하는 대자연의 변신과 순환으로 볼 수는 없을까? 

안덕면 사계리 잠수굿에서 산방산을 향해 기도하는 해녀. (사진=한진오 제공)
안덕면 사계리 잠수굿에서 산방산을 향해 기도하는 해녀. (사진=한진오 제공)

 

이런 시선도 있다. 전해오는 설화는 아니지만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한라산이 곧 설문대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서귀포 쪽에서 한라산을 보면 머리카락을 한껏 늘어뜨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사람의 상반신을 닮았다고. 한라산이 잠들어 있는 설문대할망이라고 강조한다. 

누가 일러주거나 가르치지 않았지만 한라산 남쪽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하루 같이 봐온 한라산이 설문대라고 여겼다는데 원시의 먼 옛날부터 지녀온 주술적 사고의 산물이다. 신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를 일러 ‘사체화생(死體化生)’이라는 말을 붙여 해석한다. 신을 비롯한 주술적 존재들은 죽어서 무엇인가로 변신한다는 말이 사체화생의 모티프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로 변신한다는 주술적 사고와 설문대할망이 곧 한라산이라고 말하는 서귀포사람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일치한다. 모성보다는 생명력과 창조력에 시선이 모인 것이다. 

설문대가 한라산을 만든 사연이며 그 해석이 여럿인 것처럼 공교롭게도 제주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고향에서 본 한라산이 제일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 설화 또한 그럴듯하다. 어떤 이야기에 주목하고 어떤 해석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설문대는 물음표에게 당신에게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음표가 된 내 선택은 사체화생이다. 나는 그렇게 물음표를 가슴에 품고 설문대의 행적과 사연이 담긴 설화지를 탐사하며 ‘숨을 잃은 섬’이라는 희곡에서 섬과 산의 창세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창조주 설문대를 그리며.

구름 속의 손 물결 속의 발
이어라 이어라 이어도이어

황황한 하늘에 베틀을 걸고
허허로운 바다 위에 물레를 놓아
바람결 구름결 끌어 당겨
덜커덩 덜커덩 세상을 잣는다.
이어~ 이어~ 이어도이어 
덜커덩 덜커덩 이어도이어

낮은 덴 높이고 높은 덴 낮춰라.
물 가운데 섬 하나 섬 가운데 산 하나
햇살을 씨줄로 달빛을 날줄로
덜커덩 덜커덩 세상을 잣는다.
이어~ 이어~ 이어도이어 
이어라 이어라 이어도이어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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