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고진숙)
제주를 상징하는 똥돼지 (사진=고진숙)

제주를 상징하는 문화는 ‘똥돼지 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돼지고기는 모든 가축 중에서 경제성이 가장 뛰어나다. 소의 젖꼭지가 두 개인데 비해 돼지는 12개 이상이니 만큼 다산을 하고 임신기간이나 성장기간도 소에 비해 아주 짧다. 게다가 육질도 부드럽고 고소하며 고기양도 많다. 

돼지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땀샘이 많지 않아 기르는데 물이 많이 필요하고 워낙 잡식성 대식가이다. 물과 식량이 귀한 중동지방에선 어쩔 수 없이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농사짓기 어려운 제주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질 뻔했다.   

제주 사람들에게 소는 ‘밭갈쉐’라고 하여 집안의 기둥뿌리였고, 풀만 먹었다. 그에 반해 돼지는 먹성은 좋으나 쓸모는 없고, 오로지 맛있는 고기만 제공할 뿐이다. 그걸 위해 인간이 먹기도 빠듯한 음식을 나누기엔 제주 땅이 너무 척박했다.

원래 돼지의 주식은 밤과 도토리라고 한다. 참나무가 많은 유럽에서 돼지도 번성하고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들 가령 햄과 소시지도 풍부하다. 도토리란 말이 돼지를 뜻하는 ‘도’혹은 ‘돝’에서 나온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돼지가 도토리를 주식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밤과 도토리마저도 돼지에게 나눠줄 형편이 못되는 제주사람들이 돼지를 기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똥돼지이다. 똥돼지의 주식은 이름에 있듯이 똥이다. 

현기영 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에는 민란을 일으켜 읍내 성에 모인 한 남자의 고뇌가 나온다. 그를 괴롭힌 문제는 화장실 문제였다. 자기의 돼지는 굶고 있는데 그 아까운 먹이를 아무 데나 막 버리고 있다는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한 것이다. 제주 사람에게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돼지의 성스러운 먹이였다. 

돼지는 살아서는 사람이 남긴 온갖 불결한 것들을 깨끗하게 한다. 돼지가 사는 통시(화장실)에 넣어둔 보릿짚을 잘근잘근 밟아서 온갖 더러운 것들을 질 좋은 거름으로 만든다. 

돼지는 죽어서도 아낌없이 주고 간다. (사진=고진숙)
돼지는 죽어서도 아낌없이 주고 간다. 본문 中 (사진=고진숙)

돼지는 죽어서도 아낌없이 주고 간다. 제주에서 경조사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반드시 돼지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경조사 첫째 날은 이름자체가 ‘돼지 잡는 날’이다. 잡은 돼지는 버릴 것이 하나 없다. 고기는 물론이고 고기를 삶은 물은 ᄆᆞᆷ(모자반)을 넣어 국을 끓이고, 피와 내장은 수에(순대)가 된다. 발은 족발이 되고, 머리는 머릿고기가 된다. 마을 전체가 영양보충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온 이때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 똥돼지 문화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 귀한 돼지고기를 한 점의 낭비도 없이, 그리고 고르게 분배하는 일을 하기 위해 특별한 전문가를 초빙한다. 그 사람이 ‘도감’이다. 도감은 손님수와 고기의 양을 가늠해서 얇게 썬 살코기와 비계, 수에 한 점, 그리고 두부 한 점을 넣은 ‘고깃반’을 구성하는 사람이다. 도감의 칼솜씨에 의해 똥돼지 문화는 완성된다. 그것은 제주만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이자 평등의 문화였다. 

제주에도 이제는 더 이상 통시간이 남아있지 않으며 돼지고기는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똥돼지 문화’도 사람들에게서 잊혀가고 있다. 하지만 똥돼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지구를 청소하고 자원을 순환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의 성스러운 임무를 마친 후에 제주인들에게 평등한 공동체 문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는 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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