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돼다》 김초엽·김원영, 사계절출판사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사계절출판사

취약한 몸들은 언제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의존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삶의 조건이라는 뜻일 따름이다. 따라서 언제나 나 아닌 것에 열려 있게 된다. 기계적 보완을 필요로 하고, 동물들의 도움을 받고, 타인들과의 연대에 나서게 된다. 현재의 삶과 현재의 몸을 부정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된다.

많은 서점주인들 혹은 책 읽는 사람들이 그렇듯 물질로서의 책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지만 순정파는 아니라 오디오북도 즐겨 읽는다. 자꾸 산만해지는 날에는 이상의 <날개>를 듣는다. 배우 김태리가 읽어주는 <날개>는 내가 책장을 넘겨가며 읽는 <날개>보다 훨씬 더 좋다. 나이가 들어서 시각적 피로감 때문에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돼도 오디오북이 있다면 섭섭하지 않을 것 같다. 오디오북 때문에 이어폰에도 바라는 게 많다. 좀 더 충전을 용이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어폰을 귀에 장착할 수는 없을까. 언제가 혹시라도 청력을 상실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보청기의 기능으로 전환될 수는 없을까.

《사이보그가 되다》는 이런 상상의 현실적 요긴함과 존재론적인 고민을 더해준다. 10대 시절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던 작가 김초엽,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어서 30년 이상 휠체어와 함께 생활하는 작가 김원영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그들은 각자의 장애를 보완하기 위해서 보청기를 작용하고 휠체어에 의지한다. 《사이보그가 되다》의 첫 장, 마지막 문단에서 김초엽은 이렇게 쓴다.

“장애인들은 기계, 기술,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일상에서 경험한다. (중략)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의 몸도 장애가 없는 상태로 영속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거의 모두 사이보그이거나 예비된 사이보그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보건대, 기술에 의존해 사는 인간의 많은 형태가 바로 사이보그이기 때문이다. 눈이 나쁘면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고, 귀가 들리지 않으면 보청기를 끼고, 치아에 문제가 있을 때는 임플란트나 의치를 한다. 비록 장기 이식과 약물 주입, 기계와의 보다 정교한 결합을 통해서 우주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증강된 인간은 아닐지언정 말이다. 이 책에서는 사이보그를 장애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호명하는 동시에, 장애인들의 몸이 놓인 어떤 현실에 대한 지칭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장애와 기술의 결합이라는 대목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섣부른 오해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장애가 있을 때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정상성'의 회복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그것을 두고 장애의 해소를 완전하고 우월한 삶의 형태라고 전제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비장애중심주의의 함정이다. 장애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청테이프’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청테이프는 두 개의 사물을 접합시키는 데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인 ‘테크놀로지’다. 금이 간 유리문, 부서진 플라스틱 장난감, 무거운 짐을 포장하는 종이 박스에 청테이프를 잘라 붙이면 두 사물의 관계는 수선/치료/교정/연결된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연결들의 거점에서 등장하는 사이보그적 존재는 그 연결들 때문에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그 연결들을 지탱하고 견딘다는 점에서 ‘청테이프처럼 영웅적이다’.”

존재하는 장애를 마치 없는 것처럼 매끈하게 만들 수는 없고, 그것이 옳지도 않다. 장애는 반드시 고쳐져야만 하는 교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테이프를 붙인 것처럼 수선되고, 치료되고, 교정되고, 연결된 존재로서의 사이보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존재론을 보여준다. 두 작가가 나눈 대담에서 김원영은 사이보그를 이렇게 언급한다.  

“저는 사이보그라는 상징이 꼭 기계나 기술과 결합한 존재만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타자와 연결되고 뒤섞인 잡종의 존재, 그러니까 이른바 ‘자유주의적 주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방식에 주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 상징의 유효성이 있다고 본 것이죠.”

취약한 몸들은 언제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의존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삶의 조건이라는 뜻일 따름이다. 따라서 언제나 나 아닌 것에 열려 있게 된다. 기계적 보완을 필요로 하고, 동물들의 도움을 받고, 타인들과의 연대에 나서게 된다. 현재의 삶과 현재의 몸을 부정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이어폰 얘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다. 나는 노쇠한 몸을 의료기술적으로 더 젊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저 책을 읽을 수 없는 나를 이어폰 너머의 누군가가 돌보아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김태리가 아니어도 괜찮고 기계음이어도 좋다. 장래희망은 사이보그 할머니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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