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지민)
[사진=김지민)

한국에서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입국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여전히 재택근무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고 컴퓨터를 켜서 일한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삼시 세끼를 먹는 시간이 조용하다. 혼자 먹는 식사는 이미 익숙하고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끼니를 잘 챙기지 않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어째 혼자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1인 가구가 끼니를 챙기는 것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정확하게 무엇이 먹고 싶다고 떠오르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어제는 무엇을 먹었더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그 재료들의 조합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빨리 처리해야 하는 재료는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밑반찬을 만들어 두고 꺼내어 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한식의 밑반찬들은 한 번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가고 양을 조절하기 어렵다. 혼자 먹을 것을 고려해 조금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양을 적게 만든다 해서 들이는 품이 적은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양껏 만들어두면 어느새 뚜껑을 열어보기도 겁나는 무엇으로 전락하고 만다. 또 찌개나 카레 같은 국물 요리들은 한 번 하면 사흘 정도는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날이 더우면 만들기 곤란하다. 고작 한 끼를 챙기는 데에 이렇게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결국 생각하기도 귀찮으니 끼니를 거르자는 결론이 나기 쉽다.

그러나 끼니는 귀찮다고 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밥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제주도에서 배웠다. 필자는 연구 자료 수집 때문에 제주도에서 10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이 마을 저 마을 경로당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풍경도 다르고 날씨도 달랐지만 한 가지 어디서나 같았던 점이 있다. 어느 지역의 경로당이든 간에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꼭 밥을 먹고 가라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조금 갈등했었다. 연구자는 연구 참여자에게 지켜야 할 몇 가지 수칙이 있다. 연구자는 연구 참여자의 삶에 되도록 큰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정해진 조사 이외에의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혹시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거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부담을 더하는 일이지는 않은가? 하지만 문화적으로 어른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적당히 심적 거리를 줄일 필요도 있었다. 학교의 윤리위원회가 이 식사에 대해 문제 삼을 경우 소명할 근거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뒤에야 삼춘(제주어의 경우 집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 성별 구별 없이 연소자를 '조캐', 연장자를 '삼춘'으로 부른다. 편집자)들 밥상의 한구석에서 끼니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만도 내게 끼니란 때우는 것이었다.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때 그렇게 당신들께서 식탁 한자리를 내어주셨던 그 순간들의 기억은 지금도 남아,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공부하게 만들어준다. 따뜻한 밥에 호박이 숭덩숭덩 들어간 국. 김치 그리고 나물무침 같은 푸성귀들. 방금 구운 파전. 가끔은 수육이 상에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크기지만 먹어 본 귤 중에 제일 맛있었던 파치. 귤은 얻어먹는 파치가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생처음 본 무생채를 넣은 기름비빔국수를 먹은 날엔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 왔다. 설 즈음이 되어서는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떡국을 내주셨다.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항상 음식을 나르거나 치우는 것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느 집 똘(딸의 제주어)인가 며느리인가’ 하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를 주시기도 했다. 그 황금레시피는 커피 한 스푼 당 설탕은 두 스푼 넣는 것이라고 한다.

삼춘들은 차린 것 없이 변변찮은 밥상이라고 하셨지만, 그때 맛있게 먹었던 밥상의 따뜻한 온기를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대화들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역만리에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시면서 삼춘들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밥을 잘 먹어야 공부도 잘 할 수 있다’ 하셨다. 또 어느 경로당에서 한 삼춘이 하신 말씀도 떠오른다. 내가 누군지 모르셨던 그 삼춘은 내가 누군지 물었다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누군지가 중요하냐며 ‘누구든 간에 배 안 곯는 게 중요하지.’라고 말씀하셨다.

한국 사람들의 안부인사는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밥이 주는 위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운 유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식사하는 일에는 단순히 인간의 몸이 움직이고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원을 섭취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삼춘들이 챙겨준 밥을 먹었기 때문에 나는 쓴소리를 듣거나 문전박대를 당해도 다시 씩씩하게 걸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삼춘들은 나를 그렇게 키웠다.

사람은 그런 찰나의 좋은 기억을 챙겨 먹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밥을 먹으며 얻었던 힘을 학습한 나는 다시 내가 먹을 밥을 차린다. 여전히 바쁘면 끼니를 어쩔 수 없이 거르게 되거나 하지만, 적어도 하루 한 끼는 제대로 잘 챙겨 먹는다. 접시에 깔끔하고 예쁘게 담아 먹는다. 조금 더 좋은 재료로 건강한 한 끼를 만들어 먹는다. 일면식 없는 삼춘들도 챙겨주었는데, 내가 나를 챙기지 않는 것은 나에게 미안할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리고 그때 나누어 받았던 온기를 기억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온기 담긴 끼니를 챙겨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누군가에게 외면당해 다리에서 힘이 빠진 이가 밥심으로 허리를 당당하게 펴고 다시 두 다리 딛고 설 수 있도록.

 

 

 

 

 

 

김지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제주 4·3에 대해 연구 중인 김지민은 온 마을이 키운 박사 과정생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와 런던을 잇는 [지민in런던]은 매월 둘째주 월요일 게재된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