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엄문희 활동가)
(사진=엄문희 활동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어떤 자리에서 나를 설명할 때, “강정마을‘에’ 사는”이라며 인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강정마을‘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강정’은 어떤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불러오는 이름이 되었고, 사건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가 그 이름을 내 이름 앞에 수식하며 산다는 것은 강정이란 말이 가리키고 있는 어떤 일을 겪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선가, 사람들은 나의 첫 마디로 나에 대해 상당 부분을 파악하거나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강정’이란 이름 역시 ‘마을’이라는 또 다른 현상과 함께 놓인다. 강정은 유독 ‘마을’이라고 불린다. 나는 그 ‘마을’이라는 상태 혹은 방법이 ‘강정’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사고와 결부돼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을 주거나 새롭게 문제가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연루되고 휩쓸리기도 한다. 그래서 단지 어떤 지역이나 장소로서의 강정이나 마을이 아닌 ‘과제’로서 ‘강정마을’과 관계 맺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강정은 아니었다. 제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생겼고, 나는 그 사건에서 ‘나의 피해’와 ‘나의 가해’ 모두를 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래서 강정의 일에 줄곧 마음이 쓰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금 여기서 살게 된 것은.

이 마을에서 살겠다고 왔던 2015년이었다. 마을은 크고 높은 펜스에 갇혀 모든 길이 미로 같았다. 나는 높은 벽이 바다까지 이어진 것을 보았다. 벽은 ‘볼 수 없게’ 하는 것이었고 “넘지 못하는 바깥”으로 나를 내모는 것 같았다. 여기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문제를 떠안게 되었고, 일방적으로 권력이 구획한 담에 갇혀서 국가를 두려워하게끔 강요당하고 있었다. 

(사진=엄문희)
(사진=엄문희 활동가)

사람들은 구럼비로 가던 길에 <구럼비로 가는 입구>라고 썼다. 범섬이 보였던 위치마다 <범섬이 보이던 곳>이라고도 썼다. <할망물 가는 길>도 있었다. 장벽으로 가로막은 진실을 되살리기 위해 사람들은 펜스 높은 벽에다 <생명 평화 강정 마을>이라고 썼다. 이따금 담 너머로 폭발음이 들리고 땅을 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벽 너머에 그리운 것들을 남겨두었다. 나는 그 고유명들이 그저 물질로써 고유명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섬이나 바위의 이름으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빼앗긴 자유와 존재의 권리였다. 누군가 그 벽에다 문을 그려놓았다. 문은 단지 벽에 그려진 그림만은 아니었다. 이 벽을 극복할 엄청난 상상력이 거기 있었다. 

벽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절이 그래도 나았다는 걸 준공식에 알았다. 보이지 않아서 상상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견뎠다면 얼마나 이상한 말인가. 2016년 2월 해군기지 준공에 맞춰 높고 큰 펜스가 걷히던 날, 사람들은 너무도 달라진 풍경에 망연자실하여 멈춰 서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눈에 보이던 벽이 철거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의 시대가 열렸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강정마을이라는 그 사건.

 

엄문희 활동가
엄문희 활동가

엄문희 
강정마을주민이자 강정평화네트워크활동가 엄문희 씨는 강정 해군기지 준공식 날 강정마을에 집을 얻었다. 2019년에 마을친구 둘과 함께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가 하는 모든 활동은 병역을 거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병역이란, 인간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두를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소중한 별명, ‘멸치’도 그런 고민 끝에 얻어낸 이름이다. 사라질 滅멸, 다스릴 治치. 멸치가 매월 1회 운영하는 [아직,강정]은 먼저 온 미래, 강정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마을은 정신적·물질적 공동체성 테두리를 공유한 집단이었고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적인 단위였다. 향약이 인정되는 것도 오랜 시간 공동체의 형편에 따라 조정되어 온 경험과 가치가 법보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가를 내면화한 마을은 내부 민주주의를 지속해서 훼손했고, 국가의 개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동원하게 되었다. 국가의 척도와 가치가 내면화될 때 그 실행 주체들의 권력은 국가를 대행한다. 심지어 자치규약인 향약을 통해 마을 주민 일부를 외부화 해버렸다. 이런 일련의 광경을 멸치는 ‘기지촌’이라 부른다. 그는 마을서 ‘있으나 없는 존재’가 되고서도 ‘끝까지 살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미 목격자가 되어버린 이상, 그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현재는 과거에서 오는 어떤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래 때문에 발생하는 ‘시도’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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