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거니?》 송주연 글/그림(독립출판물)

철 지난 음악 이야기 하나. 1960년을 지나며 세계의 대중음악은 로큰롤을 얻었고 마침내는 헤비메탈까지 낳았다. 10대 철부지와 낙오된 젊은이들이 즐기던 일종의 하위문화에 불과했던 로큰롤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우뚝 서고, 더 나아가서는 보다 광포하고 거친 헤비메탈이 폭넓게 사랑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눈여겨봐야만 할 역설도 존재한다.

청년세대의 울분과 저항을 대변하던 록음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화되기 시작하는데, 가령 헤비메탈은 록음악보다 더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아주 숙련된 솜씨를 지닌 음악인들만이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되고 그런 사람들만 감상하는 음악으로 변모됐기 때문이다. 함께 즐기던 음악이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의 록음악에 담겼던 정신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와 아주 흡사한 사례가 우리 출판계에도 있다. 독립출판 혹은 독립출판물Independence Book이 바로 그것이다. 독립출판(물)은 정형화되지 않은 아이템, 거침없는 표현방식, 소박하지만 개성적인 책꼴 등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아울러 여러 성과들을 낳기도 했다. 독립출판의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는 ‘나의 책은 내가 만든다’ 아닐까.

출판사라는 기성의 완고한 제도로부터 독립하자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다고나 할까. 거기에 내용과 형식의 독립까지 곁들여진다. 이쯤에서 “독립만세!”라고 합창할만하다.

타인의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파는 것으로 이윤을 남기는 출판사의 생리에 거슬러, 나의 글이 비록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글이 못될지언정 그것이 곧 나의 글의 가치를 판별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소리 없는 항의가 그 마인드에 숨겨져 있다. 그렇게 출판사라는 기성의 완고한 제도로부터 독립하자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다고나 할까. 거기에 내용과 형식의 독립까지 곁들여진다. 이쯤에서 “독립만세!”라고 합창할만하다.

하지만 록음악의 경우처럼, 여기에도 역설은 존재한다. 기존의 상업 출판사들은 독립출판의 과육을, 일방적으로, 아주 재빠르게 흡수한다. 가볍고 날렵해진 판형, 내용과 형식에서 의도적으로 구사된 아마추어리즘, 소비자로서의 독자들을 겨냥한 프로페셔널한 포지셔닝 등을 통해 독립출판물들로부터 발원된 여러 자산들을 새로운 상품들로 변환시켜 열성적으로 론칭한다. 마치 게릴라 혹은 민병대를 정규군으로 편제시킨 모양새라고나 할까.

그러나 ‘독립’은 머릿수 문제 이전에 마인드 문제다. 독립 출판물처럼 만드는 일은 돈이 된다. 그렇게 출판사들은 시대의 변화를 아주 유효적절하게 상품화시킨 셈이다. 이윤의 생태계는 결코 쉬는 법이 없다. 독립의 합창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립은 또 하나의 독립을 꿈꿔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 길에서 이제 막 출간된 독립출판물을 한 권을 읽는다.

송주연이 쓰고 그린 《어디로 가는 거니?》

글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그림이 압도적이다. 그림은 둥글둥글 모나지 않고 색채는 투톤으로 소박하다. 48쪽이며 171×210cm 판형에 중철제본 돼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림체나 색채나 타이포그래피 등이 딱히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쉽게 읽히고, 읽고 나면 뭔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왜일까?

《어디로 가는 거니?》 송주연 글/그림(독립출판물)<br>
《어디로 가는 거니?》 송주연 글/그림(독립출판물)

책 내용은, 반려묘인 고양이가 집을 나가자 쫓아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는 식으로 단순하다, 어쨌든 그 흐름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출근하지 않는다→고양이가 나간다→쫓아간다→함께 돌아다닌다→집으로 돌아온다. 더 줄일 수도 있다. 집에 있다→고양이가 나간다→쫓아간다→함께 돌아온다, 결국 이거다. 나간다→돌아온다.

곧 이 책의 내러티브는 일종의 짝패 동사 ‘가다/오다’ 위에 구축돼 있는 셈이다. 고양이가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는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게 판타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집을 나가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쫓아나가지만 그 둘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동사 단지 ‘가다’의 주어로서 움직일 뿐이지만, 주인공은 동사 ‘나가다’의 주어인 동시에 ‘돌보다’의 주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와 주인공의 외출은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리티의 울타리 속에 있다. 그 울타리에서 펼쳐지는 것은 현실에 실재하는 풍경들이다. 바닷가, 감귤밭, 동백꽃... 그들은 풍경들을 함께 통과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모든 풍경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생기는 일종의 안온함의 이유가 이것일까.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고양이에게 묻는다. “아리야, 또 나갈 거니?” 무사히 제자리로 온다는 것,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것 때문일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리얼이 아니라 판타지 아닐까? 지금 이곳에는 리얼과 판타지, 그 양자택일 말고는 없는 게 아닐까? 그 사이에 많은 대안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독립군들 다 모여라. 구호는, TATA! There are thousands alternatives!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세상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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