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소비는 동물복지, 생물다양성과 탄소중립 등의 친환경, 자신을 위해 남의 몫을 빼앗지 않는 정의로운 관계 등 지속가능성의 추구다. 농산물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이 지속가능한 가치로 연결될 때 우리는 어둡고 단절된 세상에서 나와 환하고 함께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로보트 태권브이(왼쪽)와 마징가 제트(오른쪽).
로보트 태권브이(왼쪽)와 마징가 제트(오른쪽).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는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였다. 당시 필자는 접근전을 펼치기 전 마징가 제트가 로봇 펀치 등 첨단 무기로 공격하면 태권브이는 태권 기술을 써보지도 못하고 질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태권브이의 공중 돌려차기 한 방이면 마징가 제트는 나가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의 격투기는 태권도이고, 그 태권도를 가장 잘하는 태권브이가 발차기조차 못 하는 마장가 제트를 쉽게 이긴다며 근거를 대었다. 그리고 우렁차게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라며 ‘로봇 태권브이’ 만화 주제가를 떼창해 나의 기를 죽였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을 빼면 6학년 남학생 전부가 하얀 도복을 입고 도장에 다녔던 그 시절. 태권 기술을 구사하는 ‘대한민국’ 로봇 태권브이는 아이들의 자존심이자 영웅이며 애국심 자체였다. 첨단 무기를 장착했지만 ‘일본’ 로봇이란 이유만으로 마징가 제트는 큰 인기가 없었다. 

지난 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농촌에 대한 2020년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산 농산물에 대한 인식에서 도시민의 49.2%가 ‘별다른 거부 반응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5년에 비해 10.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외국산 농산물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고 구매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015년 25.2%에서 19.0%로 감소했다.

‘외국산 농산물에 비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국산 농산물을 구입할 것’이라는 응답은 2010년 45.1%에서 21.2%로 떨어졌고, 국산 농산물이 외국산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면 외국산 농산물을 구입할 것이라는 응답은 28.3%에서 36.8%로 높아졌다. 또한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품질을 우선 고려해 구입할 것’이라는 응답은 26.7%에서 42.1%로 증가했다. 

50%에 가까운 도시민이 외국산 농산물을 거리낌 없이 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외국산과 국산 농산물을 구별하지 않고 구입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한마디로 국산 농산물에 대한 충성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이 경향에 따라 농축산물 수입액은 2010년 192억 달러에서 2019년 343억 달러로 증가하였고, 곡물 자급률은 2019년 기준으로 쌀 92.8%, 밀 0.7%, 콩 26.7%, 보리 47.7%, 옥수수 3.5%로 우려를 넘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산 태권브이는 외국산 마징가 제트를 무조건 이긴다는 정서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라는 경제 논리에 무릎을 끊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것이 무조건 좋다는 신토불이에 호소하는 마케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어 국산 농산물이 외국 농산물과 견주어 가성비가 높거나 다른 특별한 가치를 지녀야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외국산 농산물을 물리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산 농산물의 가성비를 높이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1.9ha의 호당 경지면적을 지닌 우리나라가 182ha의 호당 면적을 지닌 미국과 경쟁하고, 최저 시급이 9036원인 우리나라가 시급이 1700원인 중국과 겨루어 가성비가 높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가치소비에서 찾아야 한다. 가치소비는 ‘본인이 부여한 가치를 우선으로 소비하는 성향’이다. 공정무역커피, 일본제품 불매운동, 바이소셜(Buy Social: 사회적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지지하는 캠페인), 영혼 보내기(영화의 흥행을 위하여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표를 구매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언택트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우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직장·교육·여가생활은 물론 구매·소비 패턴도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는 지난 2월 인터넷을 달구었던 ‘돈쭐(돈으로 혼쭐을 내주자자는 신조어)’ 치킨처럼 SNS를 통해 가치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히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만든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친환경적인지, 공정한지 등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는지를 검토하여 소비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문제 등의 해결에 참여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를 SNS로 적극 공유하고 전파하면서 연대 의식을 소비로 나눈다. 

경북 영주 지역 사과 농가들이 2017년 여름 우박 피해를 입었을 때 못난이 농산물 전문 유통 플랫폼 ‘파머스 페이스’에서는 우박 맞은 사과의 모습을 보조개로 빗대 ‘보조개 사과’로 판매했다. 이때 MZ세대들은 힘든 농가에 힘이 되어 준다고 못난이 사과를 자기 것처럼 홍보하고 구매하며 완판시켰다. 
 
코로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소비는 동물복지, 생물다양성과 탄소중립 등의 친환경, 자신을 위해 남의 몫을 빼앗지 않는 정의로운 관계 등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추구라고 생각한다.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은 유기농업을 지속가능한 생태계, 안전한 먹거리, 양질의 양분, 동물의 복지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련의 과정에 기반한 종합적 접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의 4원칙으로 건강, 생태, 공정, 배려를 제시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소비와 유기농업이 추구하는 목적이 너무나 흡사하다. 그러나 아직 MZ세대와 유기농업인과의 관계는 ‘소 닭 보듯’에서 조금 진전된 정도다. ‘연인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구 관계’까지는 갈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농산물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이 지속가능한 가치로 연결될 때 우리는 어둡고 단절된 세상에서 나와 환하고 함께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태권브이가 이긴다고 생각한다. 정재승 교수는 “태권브이는 훈이가 생각하는 동시에 움직여, 조정을 받는 마징가 제트보다 먼저 행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태권브이는 0.2초 만에 움직이는 반면 마징가제트는 0.4초가 지나서야만 움직일 수 있어서 그 0.2초로 승부가 갈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태권브이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유기적 관계’다. 태권브이는 훈이와 몸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일심동체지만 마징가 제트는 가부토코지의 조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 

지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관계가 생태적이며 공정하고 배려하는 유기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효율과 자본보다 가치와 관계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는 당연히 태권브이가 마징가 제트를 이기지 않을까?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