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 자료사진(사진=제주투데이 DB)
자료사진(사진=제주투데이 DB)

강정 해군기지 건설 이후 제주지역 최대 갈등이라 불리는 제2공항.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5년 12월 사업 부지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부 지역(수산리, 난산리, 신산리, 온평리, 고성리)을 포함하면서 지금껏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5년이 넘도록 이어지던 찬반 갈등은 지난달 실시된 도민 여론조사를 기점으로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공개 토론회를 통해 도민들은 제2공항과 관련한 정보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다. 공론화 절차를 충분히 거친 셈. 그 결과는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가 나온 다음 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결과 그대로를 국토부에 전달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지역언론 매체는 이제 공은 국토부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9월 국토부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수렴한 제주도민 의견을 정책 결정에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제주도와 도의회 등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제주특별자치도는 국토부에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도민 여론조사 등에 대한 입장문’을 제출했다. 여기서 돌연 원희룡 지사는 여론조사 결과와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입장문에서 ‘도민 의견’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전문가 자문’이라는 단어가 채워졌다. 

‘제주도의 입장’이 아닌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입장’에 가까웠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에선 도민 여론조사를 거스른 비민주적인 행태인데다 사실과 다른 점이 다수 확인되는 점을 들며 원희룡 지사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제2공항 찬반 입장을 떠나 원희룡 지사의 ‘입장문’에서 발견된 치명적 오류 네 가지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이를 통해 해당 입장문이 과연 지난해 9월 국토부와 제주도, 도의회가 합의했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도민 의견에 부합하는지, 또 국토부가 이 같은 입장문을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따져본다. 

지난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2공항 관련 입장문을 발표한 뒤 SNS에선 성산읍장인지, 제주도지사인지 헷갈린다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사진=페이스북 화면 캡쳐)
지난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2공항 관련 입장문을 발표한 뒤 SNS에선 성산읍장인지, 제주도지사인지 헷갈린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사진=페이스북 화면 캡쳐)

#첫 번째 오류: 제주도지사인가, 성산읍장인가

제주도가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 관련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은 △도민 여론조사 결과 △제주 제2공항 사업 추진 필요성으로 나눠 작성됐다. 

우선 첫 문장에서 ‘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설명하며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지역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반대’가 높았다는 점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제주도민 여론조사라고 밝히면서 정작 ‘도민’의 의견은 아예 배제한 채 성산읍 주민들의 여론만 ‘고려’한 것을 두고 SNS에서는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지사’가 아닌 ‘성산읍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주도민의 뜻은 무시하고 성산읍 주민만의 뜻을 대변한다는 것. 

한 시민은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 성산읍장”이라고, 또 다른 시민은 “제2공항 추진의 근거가 성산지역 찬성 때문이라면 원희룡 도지사는 성산읍장으로 취임하고 도지사를 다시 뽑으면 되겠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또 “이제 제주도지사는 전체 도민 투표에서 져도 성산읍에서만 이기면 당선되는 건가”라는 쓴소리도 나왔다. 

#두 번째 오류: 주민 수용성 확보됐다? ‘거짓’

‘원희룡 지사의 입장’에서 “성산지역 주민들의 압도적인 찬성 의견을 고려하면 제2공항 입지에 대한 지역주민 수용성은 확보된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도로나 항만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할 땐 주민 수용성이란 단어가 항상 등장한다. 주민 수용성이란 말 그대로 사업 부지 또는 인근 주민들이 이 사업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납득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짓는 시설이지만 사업 부지에서 생활하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등 피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국가 또는 행정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충분히 보상함으로써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할 수 없고 국가에겐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소음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공항을 방문한 제2공항 피해지역 주민들(사진=김재훈 기자)
항공기 소음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공항을 방문한 제2공항 피해지역 주민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두고 주민 수용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제2공항 사업으로 피해를 입는 지역은 제주도 전체인가, 또는 사업 부지에 들어갈 지역인가. 

제2공항에 반대하는 도민 중 다수는 이 사업으로 제주도 전체 주민의 삶의 질이 저하한다고 주장한다. 공항 하나를 더 늘려 더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쓰레기와 하수, 교통량 등을 감당하지 못해 그에 따른 피해를 도민 모두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전체 도민 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높게 나타났다. 

어떤 이들은 제2공항 사업의 주민 수용성은 사업 부지에 포함되는 지역주민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농사를 짓던 밭과 수십 년을 살아오던 집이 사라지거나 남은 평생 비행기 소음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주민들이 여기에 속한다. 실제로 직접적인 피해지역은 성산읍 마을 14곳 중 4곳(수산1리·온평리·난산리·신산리)으로 본다. (다만 고성리의 경우 사업 부지에 포함되는 면적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수혜지역에 속한다.) 4곳 중 3곳에서 ‘반대’가 높았다. 

주민 수용성의 ‘주민’을 광의의 의미로 본 전자와 협의의 의미로 본 후자 모두 ‘반대’가 높았다. 하지만 ‘원 지사의 입장문’에서 ‘주민’의 기준은 모호하다. 성산읍 전체를 제2공항 건설에 따른 피해지역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산 마을 14곳 중 나머지 10곳은 ‘수혜지역’에 속한다. 수혜지역은 비행기 소음 등으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지만 주변 개발사업으로 인해 땅값 상승 및 상권 활성화 등으로 혜택을 입는 지역이다. 물론 ‘찬성’이 높다. 게다가 수혜지역 주민 수는 피해지역 주민 수의 두 배가 넘는다. 

홍명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게시한 글. 왼쪽은 성산읍 마을별 할당 표본 수, 오른쪽 지도 상 붉은 네모는 제2공항이 들어서는 지역, 노란 원은 소음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사진=홍명환 의원 페이스북 계정 게시물)
홍명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게시한 글. 왼쪽은 성산읍 마을별 할당 표본 수, 오른쪽 지도 상 붉은 네모는 제2공항이 들어서는 지역, 노란 원은 소음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사진=홍명환 의원 페이스북 계정 게시물)

성산읍 주민만을 별도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주민 비율로 표본을 할당했다. 지난 1월 18일 현재 성산읍 인구 수는 모두 1만5412명이며 피해마을 4곳 주민 수는 4208명으로 전체의 약 27%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이 비율이 적용됐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성산읍 전체를 놓고 본다면 ‘찬성’이 높게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선 이번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홍명환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갑)이 지난달부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그는 가공하기 전 원자료(로데이터·raw data) 검토에도 참여해 마을별 찬반 주민 수를 파악하고 있었다.

홍 의원은 제주투데이와 만난 자리에서 “원희룡 지사가 도민이 아닌 ‘지역’주민 수용성을 말하고 싶었다면 성산읍 전체가 아닌 직접적인 피해지역 4곳의 결과에 대해서만 얘기해야 했다”며 “이 마을 중 3곳은 압도적으로 반대가 많았다. 원 지사 역시 이런 부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여론조사를 주관한 언론사들과 제주도, 도의회는 주민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성산읍 마을별 찬반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세 번째 오류: 거리가 멀어서 반대한다?

‘원 지사의 입장문’에서 전체 도민 여론을 언급한 지점이 딱 한 군데 있다. 제2공항 건설의 찬성과 반대를 구분 짓는 이유를 설명하며 “전체 도민 여론의 가장 큰 특징은 제2공항 인근 지역은 압도적으로 찬성한 반면 공항에서 먼 지역은 반대가 우세하다는 점”이라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 제주도민들은 거주지와 제2공항 간 거리를 두고 찬성과 반대를 결정했다는 것. ‘내가 사는 동네와 가까우면 찬성하고 내가 사는 동네와 멀면 반대한다?’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5년 전과 지금의 여론이 크게 바뀌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지난 2015년 국토부가 제2공항 입지를 선정한 직후 이를 찬성한 도민은 70%가 넘었으나 점차 낮아지다가 최근 조사에선 43~44%에 그치며 반대보다 낮은 결과가 나왔다. 

20일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교통부의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을 분석한 결과 숨골에 대한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엉터리 평가"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비상도민회의의 동굴숨골조사단이 발견한 성산읍 사업 부지 내 숨골. 오른쪽은 위성지도에서도 명확히 보이는 혼인지 인근 숨골. (사진=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공)
지난 2019년 8월 20일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교통부의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을 분석한 결과 숨골에 대한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엉터리 평가"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비상도민회의의 동굴숨골조사단이 발견한 성산읍 사업 부지 내 숨골. 오른쪽은 위성지도에서도 명확히 보이는 혼인지 인근 숨골. (사진=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공)

 

이에 대해 홍명환 의원은 “반대하는 단체나 시민들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강조했던 반대 이유들이 단 하나도 없다”며 “각종 토론회나 공식 자료를 통해 제2공항이 들어서면 오름을 절취해야 한다거나 숨골 또는 동굴, 철새도래지가 사라지는 문제, 쓰레기와 하수, 교통량 같은 환경 수용력 문제 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가 점차 증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지어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했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지적한 부분도 빠져있다”며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배제하고 반대 이유를 왜곡한 것”이라고 따졌다. 

#네 번째 오류: 여론조사에서 숫자는 중요치 않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목적은 대통령 선거 등 민감한 사회 현안을 두고 대다수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특히 정부는 정책 결정에 반영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참고한다. 

이번 여론조사는 당초 제주도와 도의회가 주관하려 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안심번호를 부여받지 못하게 되자 언론사 9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행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여론조사를 끝까지 추진했던 이유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도민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도민의 의견이 수렴된 결과가 바로 여론조사의 ‘숫자’다. 그 숫자를 알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원 지사의 입장문’에선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여론조사는 단순한 찬반 숫자보다도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숫자(또는 결과)가 나왔든 원 지사의 입장문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11일 오후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박원철 의원(왼쪽)과 홍명환 의원(오른쪽)이 원희룡 지사가 제2공항 관련 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도의회와의 합의를 깬 데 대해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11일 오후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박원철 의원(왼쪽)과 홍명환 의원(오른쪽)이 원희룡 지사가 제2공항 관련 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도의회와의 합의를 깬 데 대해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이에 홍명환 의원과 박원철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한림읍)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원희룡 지사는 국토부와 제주도, 도의회가 합의한 내용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고 규탄했다. 

지난 16일 제주를 찾은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경기도 고양시갑)은 “누구보다 도민의 민의를 존중하고 실현에 앞장서야 할 원 지사가 민의를 거스르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도민에게 약속한 갈등 해결을 위한 절차조차 부정한다면 도민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 피해는 도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원 지사의 입장문’이 공개되면서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데 대해 제주도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11일 좌남수 의장과 면담을 끝내고 나가는 고영권 도 정무부지사에게 물어봤다. 

고 정무부지사는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달에 담백하게 보내지 않았나. 그걸로 국토부가 알아서 판단할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성산읍 별도 조사 결과를 마을별이 아닌 전체 결과로 공개한 데 대해선 “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성산읍 전체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와 함께 사업 예정지 인근 부동산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와 함께 사업 예정지 인근 부동산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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