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마스크스 표지.
호모 마스크스 표지.

김수열 시인의 더듬이는 예민하게 현재를 감각한다. 감각된 현재는, 시인에 의해 쓰여지고, 그렇게 역사의 한 부분으로 새겨진다. 김 시인은 현재를 역사로 감각한다. 그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을 ‘호모 마스크스’라 부른다. 

마스크가 바람에 펄럭인다/잎 떨어진 가지에 마스크가 나부낀다/빨간 마스크 파란 마스크 노란 마스크 검은 마스크/공항의 감시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마스크다(…중략)/공원의 비둘기는 마스크에 발 묶여 허우적거리고/늙은 어부의 그물에는 해파리 대신 마스크가 올라온다//한해에 6백 억 마리의 닭뼈가 지층을 이루는 지금이다/집안에 들어서야 마스크 벗고 숨비질하는 오늘이다
-<호모 마스크스> 중에서

시인은 표제작 <호모 마스크스>에서 마스크로 인해 바뀌어버린 풍경과 함께, 마스크가 자연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눈에 담는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고집스럽게 쓰고 다니는  마스크는 결국, 다른 생물들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죄스럽다. 인간의 탐욕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은 바로 지금 ‘지층’을 이루며, ‘호모 마스크스’라는 역사를 새기고 있다. 죄 많은 인간들은 약간의 불편함만 견디면 그만이다. 

김 시인은 여러 시편에서, 역사적 사건에서 희생된 이들을 담았다. 시인이 자신의 몸을 빌려,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달보다 먼 곳>, <오월, 아침 한때 비> 등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광주를 다룬 <오월, 아침 한때 비>에서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중에게 밥을 지어주던 소녀로 ‘빙의’한다.(참고로 김 시인은 《빙의》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바 있다.)

이슬비가 내렸어요/이십칠 일 새벽 두 시쯤이었을 거예요/아저씨들이 여긴 위험하니 나가야 한다고 해서/우린 밤참으로 빵과 우유를 나눠드리고/아침 식사 준비를 대강 마친 다음/뒷길로 도청을 빠져 나왔어요//근데, 그분들, 조반은, 자셨나요?
-<오월, 아침 한때 비> 중에서

우리는 이 소녀가 전남도청에서 빠져 나온 뒤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소녀는 그저 묻는다. 그분들, 조반은 자셨냐고.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질문은 이렇게 사소하다. 슬픔은 사소한 데서 흘러 넘친다. 소녀의 철없고 투명한 질문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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