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12일 오전 11시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퇴진"을 외쳤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12일 오전 11시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퇴진"을 외쳤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제주도정의 의견을 묻는 국토교통부에 제주도민의 여론조사 결과와 상반된 제2공항 건설 찬성의견을 발표하였다. 노골적이고 적의에 가득 찬 당당한 모습이었다. 가덕도 신공항을 깽판 친 정부를 비판하면서 ‘제주도 깽판 좀 치면 어떠냐’는 설레발이었다. 전혀 예상 밖은 아니었다.

반대측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이하 비상도민회의)는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원 지사의 퇴진과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스스로 물러날 리 만무하지만 원 지사가 아닌 다른 도지사는 제주민의 민의를 받들 것인가.

이전 도지사들을 보라. 혹시 지난 선거 때 문대림 후보가 뽑혔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이후 모습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또한 지금 대통령은 무얼 결단할 수 있을까. 직접 가덕도까지 행차하여 깽판 친 것이 엊그제인데 제주민의 반대의견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거라 어떻게 장담하는가. 

이럴 때 쉽게 쓰는 말이 ‘민의를 거역한 모든 책임은 원 지사에게 있고 대통령에게 있다’인데,  그러한가? 언제든 치고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오직 제 한 몸 영달에 혈안이 되어있는 자와 제코가 석 자라 국가백년대계를 선거판 졸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는 자에게 무슨 책임을 물을 것인가. 끝내 오롯이 피해를 떠안고 살아갈 궁리를 해야하는 것은 제주민들 아닌가.

그나마 제주민의 결의와 용심을 보이고 단합된 행동을 보일 때 ‘앗, 뜨거워라’라며 돌아보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지금 우리 제주는 시급하고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미 지하수는 바닥을 보이는데 삼다수니, 드림타워니, 워터파크니, 화산섬의 금쪽같은 생명수를 육지사람 관광객 물놀이에 빼쓰고 있다. 

가축분뇨 등의 무단 방출로 제주 서부의 지하수 오염도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가축분뇨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이미 해안지대 지하수의 경우 지하수 고갈과 아울러 질산염 수치가 기준량을 초과한 지 오래인데 오염된 물은 제주민들이 뒤집어쓰고 가야 할 숙명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하수 오염을 보면 알다시피 2016년 도두동 하수처리장에서 똥물을 바다에 무단으로 방류한 사건 보도 이후 도내 하수처리장의 무단방류는 일상이 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지난 5년 동안 정수 처리용량이 그대로라면 대체 그 많은 똥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걸까.

특히 양돈분뇨는 앞이 캄캄한데 인구 땅 비례 전국 최고의 사육두수를 자랑하는 제주는 50여만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는데 하루 분뇨 배출총량이 2800톤. 이를 삼다수병에 담아보라. 도대체 매일 쏟아지는 양돈분뇨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쓰레기는 또 어떠한가. 1인당 상수도 사용량이 전국 평균 2배인 압도적 1위와 더불어 1인당 쓰레기 발생률도 전국 1위, 이거다 제주도민이 썼겠나. 입도한 관광객들이 흥청망청 쓴 게 대부분 아닐까. 현재 봉개 쓰레기매립장에 적치된 압축 쓰레기더미가 9만톤에 이른다고 한다 (900kg들이 압축팩 10만개 분량이다). 이를 태우는 데만 5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바다 오염도 심각하다. 하수처리장마다 똥물을 모아 그대로 방류하고 해안마다 질산염을 먹이로 하는 파래가 창궐하고 전국 해양쓰레기 발생량 3위로 그 중 60%가 플라스틱이란다. 해안마다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폐어구가 널부러져있는 모습도 어느덧 눈에 익은 그림이 돼버렸다.

보다시피 제주는 관광객을 더 받느냐 이를 받기 위해 공항을 더 지을거냐 어쩔거냐 하는 논의가 한가해 보일 정도로 지금 위기 상황이다. 그나마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전은 못할망정 관광객을 더 받기 위하여 5조원을 쓸어부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을 하여 제주를 망가뜨리겠다는 행태는 결코 현실적일 수 없다. 당장 필리핀의 망가진 보라카이를 보라.

2월 8일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장 풍경.(사진=김재훈 기자)
2월 8일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장 풍경.(사진=김재훈 기자)

더하여 누가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하였나. 이제 강정을, 다시 성산을 기지화하여 제주를 전장으로 내몰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예전 노랫말을 떠올릴 법하다.

“하늘엔 유에스에이 전략폭격기가 떠 있고/똥물이 된 바다에는 핵항모가 떠있고/ 산들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여있고/땅 밑은 비료 농약과 돼지 똥오줌으로 범벅이고/먹을 물 찾아 물동이에 항아리 이고지고 떠다니는”

이게 생존의 문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제2공항 반대 싸움은 단순히 공항을 더 짓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제주민의 생존을 위한 결집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하며 그 조직은 하나의 큰 구심점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비상도민회의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지난 2019년 당시 회의자료를 보면 도내 130여개 단체가 모여 분담금도 정하고 나름 전체회의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후 진행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지금 비상도민회의 명의로 나오는 결정사항은 어떤 논의를 거쳐 누가 결정하고 집행하는가. (도청앞천막촌사람들이나 민중연대에 대하여는 논외로 하자) 

무릇 조직이라 함은 네트워크 수준의 낮은 단계에서 정당이라고 하는 목표지향적 결합체까지 다양하겠지만 최소한의 역할로 나누더라도 선전교육, 조직과 연대, 재정, 기획과 이를 아우르는 지도부가 요구될 것이다. 한눈에 봐도 머릿수가 필요하고 개인적 역량을 극대화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논의나 논의의 필요성을 제의한 걸 본 기억이 없다.

3월 10일 원 지사의 발표 이후 비상도민회의를 비롯한 반대 측의 행보를 보면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 원씨의 폭탄발언이라는 표현도 마땅치 않지만 여론조사 이후 싸움에 대한 어떠한 준비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당연히 찬반 간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주민들을 설득하고 반대 입장을 공고히 하면서 필요하면 어떤 액션을 취할지 논의나 결정된 것이 있는지 묻고싶다.

아니 무기력한 대로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싸움에 뛰어들 준비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싸움 방법이나 향후 일정 등 개인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는 자리라도 만들어야 하지않나. 무슨 밀린 숙제하듯이 기자회견 마치자마자 도의회 의장을 만나러가야 했나.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와 함께 사업 예정지 인근 부동산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와 함께 사업 예정지 인근 부동산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따지고 보면 원 지사의 뒤에 숨어있는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의 입장 표명이 더 중요하고 궁금한 것 아닌가. 지난 15일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가뭄에 단비 같은 일이었지만 그 자리에 제주도 국회의원이 서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원 지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끝나고 일주일 뒤에 촛불집회가 잡혔다. ‘이거 시급하고 절박한 거 아닌가’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결의에 찬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싸움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촛불이 아니라 단합된 대규모의 직접적이고 단호하고 지속적인 형태의 싸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집권여당과 국회의원 도의원들의 확실한 포지션을 묻고 동참 여부를 압박할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촛불집회를 하더라도 제 정당 사회단체의 적극적 참여방안이나 또 비상도민회의 소속 단체나 회원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은 있는지, 이런 의논을 위한 범시민적 회의 구성은 있는지 아니면 이런 전체회의 구성을 위한 논의나 계획은 있는지 묻고 싶다.

어찌 됐건 우리 싸움은 지금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면 당장에 모이기부터 하자. 앞머리에 제안한 ‘제주민 생존을 위한 비상도민행동’은 지금 시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급하고 절박한 반대의 뜻을 가진 제반 정당과 단체가 연석회의 형태로라도 눈앞의 과제를 두고 모이기부터 하자. 각 단체가 할 수 있는 것과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일과 돈을 분담하고 좀 더 높은 수준의 결사체를 지향하며 싸움을 벌이자.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