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 이런 거 좋아하네.’ 결국 알고리즘 신은 틀리지 않았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문경연 지음, 돌베개

내가 요즘 드라마를 보는 기준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있다. 구독과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알고리즘 신은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을 끊임없이 찾아내 코앞에 대령해준다. 가끔 엉뚱한 것들을 추천해 줄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어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엉뚱한 추천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 영상을 흡족하게 감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나 이런 거 좋아하네.’ 결국 알고리즘 신은 틀리지 않았다.

<취미가 무엇입니까?>는 두 가지를 묻는다. 하나는 으레 하는 그 질문, 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 다른 하나는, 취미란 대체 무엇입니까? 후자에서는 취미의 출발과 역사를 모두 다룬다. 책의 부제는 일상 개념사와 한국의 근대다.

좋은 취미와 나쁜 취미 논의는 서양에서 17~18세기에 이뤄졌고, 당연히 “평민이나 대중을 ‘좋은 취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다시 말해 본래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근대의 미적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1900년대가 되면서는 일본은 취미/taste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취미>라는 제목의 잡지도 만들었다. 유행어처럼 말끝마다 ‘취미’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다.

192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적 도시 생활’의 한 유형으로 ‘취미’ 활동이 널리 퍼지게 된다. 서구와 일본의 취미가 우리의 취미가 달랐던 대목은 물론 식민 현실에 있었다. 거대 담론으로서의 국가 안에서 개인으로서의 자기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취미가 작동하는 대신, “1920년대를 통과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식민지적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영화와 유행가 등이 확고한 소비시장을 형성했고, 독서 붐이 일었으며, 각종 사치스러운 물건들이 기호품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동양극장 신드롬’도 이때 생겨났다. 금강산 관광과 서양식 무도회가 유행했다. 유명인들은 신문과 잡지에 실릴 때 마다 꼭 취미를 밝히기 시작했고, 결혼과 연애의 조건으로도 ‘취미가 풍부한 사람’, ‘취미가 같은 사람’이 등장했다.

식민의 현실에서는 취미의 장도 안타깝게 왜곡되거나 적극적으로 통치 수단에 편입되었다. 이를테면, 신식 트레머리를 한 소녀와 화려한 의복을 입은 가족의 실물 마네킹은 일본에서 건너와 쇼윈도에 세워졌다. 근대와 일본은 날마다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취미는 조선 거주 일본인들이 주도했다. 식민지인들은 구경꾼이나 관람객의 자리에서 매우 한정적으로 식민지 자본주의의 소비 주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뿐이다. '일본 취미'로의 유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유행가와 서양 영화들은 퇴폐로 규정되기도 했다. 조선의 어린이들이 농사 취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명인들의 취미에 관심이 많고, 결혼 상대 뿐 아니라 친구들과도 공통의 취미를 누리려고 한다. 노동하지 않는 시간은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나의 취미’로 채우려 애쓴다. 취미에서 더 나아가 취향을 보존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독립 선언이 되었다. 이른바, ‘취존’.

1인 미디어 시대에 우리의 취미도 돈이 된다. 삶의 ‘사소한 재미’였던 것이 타인들과 광범위하게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경제활동으로 손쉽게 뒤바뀔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다. 바야흐로 취미와 취향에 절대적으로 취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서너 달 전, 유튜브가 완전히 먹통이 된 날이 있었다. 구글의 스토리지 할당 문제로 생긴 오류 때문이었다. 엊그제는 유튜브 방송마다 엄청난 버퍼링이 걸렸다. 유튜브만 멈추지 않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는 나의 하루 역시 일시정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확실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영화와 드라마는 작가주의 관점에서 선택하고,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하루 종일 틀어두는 사람이고, 꽃놀이 문화에 홀린 듯이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구글신의 세계에서도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빌어먹을, 아니다, 알고리즘은 위대하다. 그는 나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새로운 취미의 장을 열어 보인다. 나의 취미는 그의 것이다. 알멘!’

p.s. 얼마 전, MBC의 <스트레이트>에서는 네이버의 알고리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보도를 해석해 보자면, 알고리즘에도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보수 편향의 취향. 경험상, 다음의 알고리즘 성향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깊게 파고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의 취향 위에 알고리즘, 알고리즘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너는 누구냐?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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