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DC)
(사진=JPDC)

△ 제주개발공사의 ESG 원년 선포... 반갑지만, 남는 아쉬움

제주개발공사가 올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년을 선포했다. 생산부터 수거, 새활용까지 전 과정을 포괄하는 ‘그린 홀 프로세스(Green Whole Process)’ 경영을 본격화한다는 것. 때늦긴 했어도 반가운 소식이다. CSR위원회 일원이었던 터라 고마움마저 느낀다.

그렇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친환경 사업모델로의 전환, 무게중심을 환경에 둔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거창하게 기후위기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삼다수 페트병을 매년 수억 개나 아무렇지 않게 내다 팔았던 기업 아니던가. 이만해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사회, 곧 Social(소셜)이다. 거의 들러리나 다름없다. 게다가 사회공헌이라니?! 왠 뜬금없는 얘긴가. 아니 개발공사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유독 우리나라에선 이제껏 회장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오죽하면 다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마저 그저 자선이나 선의로 도배해 왔을까.

ESG란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and Governance(지배구조)의 줄임말, 유엔이 정한 사회책임투자원칙에서 출발한다. 기업평가나 투자에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환경 및 사회에 대한 책임,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촉구했다. 과거에는 이윤 극대화가 기업의 최고 미덕. 그러나 이제는 ‘지속가능한 경영’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새로운 표준으로 급부상했다. 혹시라도 기업이 소홀했다간 신용등급은 추락하고 결과적으로 투자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 요즘 ESG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전략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는 ‘우리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가 기업미션. 2025년까지 모든 의류를 재생 가능한 재료로 만들겠다 장담한다. 내친 김에 개발공사에 한마디. “플라스틱 분리수거는 본디 시민의 몫이 아니다. 분리하지 않게 기업이 생산하면 된다. ESG란 기업이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업(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충남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충남 에너지전환과 그린뉴딜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K-뉴딜에서 놓친 것, 못내 서운한 Social의 ‘실종’

팬데믹, 경제불황, 그리고 기후위기. 이처럼 중첩된 삼중고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급기야 유럽과 미국에선 ‘뉴딜’이란 해묵은 카드마저 꺼내 들었다. 문재인정부 역시 '한국판 뉴딜'을 표방하고 나섰다. 150조가 넘는 방대한 예산도 투입할 작정이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다. 우선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만 도드라진다. 선도국가 도약을 목표로 산업부흥에 치우쳐 있다. 단지 예산규모로만 따지는 게 아니다. 추진주체나 파트너도 어찌된 영문인지 (대)기업 위주다. 수소기업동맹입네 규제 샌드 박스입네 업계는 잔뜩 들떠있는 분위기다. 저탄소경제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새로운 먹거리... 너무나 긴급하고 중요하다. 그 점만큼은 인정한다. 그래서, 이걸로 충분한가?

단연코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아쉽지만 ‘한국판 뉴딜'에서 놓친 게 있다. 바로 곁가지마냥 달라붙은 안전망 강화, Social의 ‘실종’이다. 소위 이번 K-뉴딜에서 시민사회는 완전히 따돌림 당했다. IMF 파고를 같이 이겨냈던 지난날의 기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연대의 경험이야말로 기초생활보장이란 보편적 복지와 자활 같은 사회적 고용을 만들어낸 산파역 아니던가. 더구나 사회적 가치 확산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문재인 정부라 못내 아쉬움이 크다. 만약 시민사회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K-뉴딜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시금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물론 정부도 그냥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전 국민 고용보험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기본소득도 그간 활발하게 논의된 셈이다. 딱 거기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구멍이 숭숭한 채 누더기로 봉합됐다. ‘기업 살인’일등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모처럼의 기회마저 내동댕이친 것. 코로나 양극화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던 이익공유제도 만찬가지. 빈 수레만 요란할 뿐, 기업들 등쌀에 한바탕 촌극으로 끝날 모양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어떤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현장의 요구는 아랑곳없이 여태 지지부진하다.  

△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방역’

펜데믹을 넘어 뉴노멀에 이르는 길은 지구촌 모두에게 그야말로 거대한 전환의 서막이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생태적 전환,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전환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 될지 모른다. 탄소중립사회나 스마트시티로의 길은 환골탈태하는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숙제 또한 남아 있다. 바로 사회양극화와 일상의 위기를 견뎌낼 포용적 전환.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새로운 길이다. 펜데믹 1년, 휩쓸고 간 상처는 정말 엄청났다. 그리고 언제나 위기는 취약한 사람들에게 훨씬 가혹했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가장 먼저 건강에 치명상을 입는다. 그뿐 아니다. 맨 앞에서 실업이나 불황이란 직격탄을 온몸으로 맞는다. 생활은 마비되고 생명마저 위태롭다. 거주 불능 지구라는 섬뜩한 말까지 떠다닌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안정적인 일터, 함께 돌보고 보살피는 따스한 삶터. 무엇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절실하다. 안전, 일자리, 먹거리, 돌봄, 주거, 교육 같은 생활가치, 이른바 ‘사회적 방역’이 필요하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 포용적 전환. Social의 ‘복귀’, 그날이 그립다. 이야말로 우리 모두 바라던 정의로운 전환 아니겠는가. 

 

강종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 그가 매달 셋째주에 연재하는 '호박벌의 제주비상'은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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