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사진=플리커닷컴)
소금. (사진=플리커닷컴)

바닷물 1리터에서 35g만 나온다는 소금. 소금을 가리키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소금 결정 형태의 글자 ‘鹵(로)’와 ‘鹽(염)’을 말한다. ‘鹵’가 자연 소금이라면 ‘鹽’은 인간이 만든 소금이다. 후자는 기원전 27년쯤 재상 숙사가 바닷물을 항아리에 넣어 끓였다는 내용이 글자의 기원이라 한다. 

정조지에 기록된 우리의 소금은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이 달라서 맛과 색이 다양했다는 자염(煮鹽), 곧 끓여 만든 소금이다. 1950년대까지도 간혹 포구에서 소금을 끓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 중에 소금과 관련된 이야기로 순위 매긴다면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30년의 소금 행진. 79명에서 시작해 6만여 명이 연대하고 390여km에 이르는 시위행진을 이끌어내 인도 독립의 단초가 되었던 사건, 간디의  솔트 사티아그라하(Salt Satyagraha), 시민불복종 행진이다. 영국의 소금 독점에 대한 인도인들의 세금 저항 운동이었다. 

간디의 소금 행진. (출처=위키피디아)
간디의 소금 행진. (출처=위키피디아)

같은 해인 1930년 조선에는 반대로 소금산업을 조선총독부에 전부 내주었다. 그 후 소금과 해산물을 실은 배들이 강의 상류를 오가며 곡식이나 과일과 현장에서 맞바꾸던 민간의 소금 교역 시장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전통 소금 맛의 기억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고, 제국의 재정 곳간을 채워주는 천일염 산업만 남게 되었다.

1900년대엔 맛이 좋았던 조선산(産) 소금이 가장 비쌌다. 100근당 국산은 1831엔(円), 일본산 1335엔, 대만산 1017엔, 청국산 1000엔 정도 순이었다. 정조지에도 장을 담을 때에 쇠솥에서 끓인 동북지역이나 먼바다 소금은 쓰지 말고 반드시 질그릇에 끓인 서남해안 소금을 쓰라고 명기 되어 있다. 조선에 다양한 맛의 소금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제주에서는 소금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소금바치(소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1840년대 제주에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 크게 세 군데였던 것이 근대에 와서는 30여 군데로 늘었다. 

구엄어촌계 돌염전 체험 시설.
구엄어촌계 돌염전.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는 재원이 되는 잉여 생산물이 없는  지방이어서 보통의 사람들에겐 소금이 귀한 것이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배추를 절일 때 바닷가 바위틈에 한 3일쯤 돌로 눌러 두었다가 거두어 썼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바당(바다의 제주어;편집자)에서 씻고 절이고 헹구고, 다해. 오히려 일촐리긴(일차리기엔의 제주어;편집자) 좋았주!’ 소금도 물도 귀한 시절의 즐거움의 조각들 같은 증언이었다.

인터넷에서 양념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약념(藥念)’이 그 어원이라는 근거 없는 정보가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을 통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백문식 선생의 우리말 어원 사전에 의하면 양념을 뜻하는 최초의 한글 기록은 ‘ㆍ약ㆍ내’이다. ‘고추에 약이 오르다‘의 약처럼 강한 향(香)의 의미를 내포한다. 

국어대사전의 설명에도 “양념은 맛을 돕기 위해서 쓰는 재료의 총칭으로 기름, 깨소금, 파, 마늘, 고추, 후춧가루, 설탕, 꿀 등”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약 성분을 목적으로 쓰는 재료라거나 그러하다는 설명이 없다. 

정조지에도 소금은 미료지료(味料之類)의 첫 번째로 다루어지고 있다. 약에 덧붙여진 념은 염(鹽)이 아닐까? 양염(量鹽)이라면 차라리 말이 될 것이다. 음식의 향과 간을 조절하는 양념.

엄와거방(상추밥).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엄와거방(상추밥).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정조지에 수록된 음식을 재현 해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맛을 내는 방법이 참 단순하고 우아하다는 것이다. 그중에 소금만으로 만드는 우아한 음식 엄와거방(醃萵苣方), 절인 상추밥이 있다. 

옛 방법 그대로 하자면 절여지고 마르는 동안 발효의 맛도 더해지겠지만, 요즘은 건조기가 있으니 상추가 맛있는 계절에 송송 썰어서 소금을 뿌려 물기가 촉촉이 배어 나오면 건조기에 널어 말려 두었다가 밥 지을 때 참기름만 섞어 쌀 위에 올려 짓는 것이다.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맛있는 밥이 된다. 조선의 상추는 맛있기로 유명했다.

소금이라는 이름을 나직이 읊조려 보자. 소금, 소곰, 쇼곰, 쇼검, 쇼금, 소금, 소금~ 무언가 오래된 이야기라도 속삭이는 말 같지 않은가? 제주 옛 여인들의 지혜처럼 배추를 바닷물에 담가 본다는 상상을 하며 달큼한 배추 비린내 나는 동지(배추나 무의 꽃대)나 노란 배춧속을 송당송당 썰어 소금을 치고 ‘소곰 쇼곰 쇼금’하며 손으로 주물러 보자. 

숨이 죽기 시작하면 오이와 쪽파, 붉은 래디쉬(radish)나 콜라비라도 얇게 썰어서 섞어 소쿠리에 섞어 담고 파도에 떠밀려 가지 말라는 듯이 무거운 돌로 눌러 놓자. 물기가 거의 다 빠졌다고 생각될 때 제주에서 한창 나오고 있는 레몬 하나를 즙을 내고 껍질의 노란 부분도 갈아 넣는다. 맛있는 과일 식초도 한 숟가락! 올리브오일을 한데 섞어 뿌려준다. 향은 재료가 내고, 맛은 소금이 살려 준다. 해물과 잘 어울릴만한 샐러드이다. 

유채샐러드.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유채샐러드.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사진=김은영 제공)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사진=김은영 제공)

 

우리는 현재에 산다. 과거에서 발원해 끊임없이 흐르며 미래를 향한다. 잊혀져 가는 일만 가능한 흐름 속에서 음식도 그렇다. 냄비 안에서는 늘 퓨전이 일어난다. 잊어버린 현재의 것들을 통해 현재 음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의미있겠다. 최근 출간된 서유구 선생의 <임원16지> 중 '정조지'에 수록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맛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오래된 미래의 맛을 통해서. 

 

김은영 요리연구가.

코삿헌 음식연구소 운영. 뉴욕 자연주의 요리학교 NGI 내츄럴고메 인스티튜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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