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마(수레의 방언)를 끌고 소와 말들이 다니던 길 

제주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숲 '곶자왈'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 또 누군가에게는 탐험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인 버려진 땅,

2월이 시작되면서 꿀내음은 어김없이 곶자왈로 향하게 한다.

[제주백서향]
[모진흘물]

아직은 찬 기운이 감도는 모진흘물 

(가축을 방목하면서 소와 말들의 급수용으로 사용하던 유서 깊은 물이다)

약 500년이 넘은 4그루의 팽나무는 앙상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고 

목장 주변으로 도드라진 수박무늬로 눈길을 끄는 '왕도깨비가지' 

잎에 돋아있는 무시무시한 가시는 마소들도 뒷걸음치게 하고 

왕성한 번식력은 자람터가 되어 곶자왈 속으로 들어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왕도깨비가지]

평범한 일상을 찾기 위한 잠시 멈춤

차가운 바람 한줄 주워 담아 곶자왈의 봄을 향기로 알려주는 '제주백서향' 

사계절 다른 숲을 통한 힐링의 길,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숲 속을 들어서자

멀리서도 향기로 알려주는 순백의 '제주백서향'

첫 만남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은은한 꽃향기의 주인공 

윤기 나는 초록잎 사이로 수수한 십자 모양의 사각 별 

작고 예쁜 꽃들이 동그랗게 모여 핀 모습이 신부가 든 부케를 닮았다.

[제주백서향]

곶자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바람 타고 스며드는 은은한 꿀내음은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바람이 잎을 흔들 때마다 자태를 드러내는 '제주백서향' 

빌레 위로 살짝 얼굴을 내민 신부의 부케를 닮은

순백의 사각 별은 슬그머니 다가와 하얀 웃음을 짓는다.

[제주백서향]<br>
[제주백서향]

제주의 중산간 곶자왈에 자생하는 '제주백서향'은 

꽃받침 통에 잔털이 없고 타원형 잎이 백서향과 달라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Kim)'이라 따로 구분하고 있다.

울창한 상록활엽수림 지대보다는 숲 가장자리나

겨울 햇빛을 볼 수 있는 낙엽활엽 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일 년 중 일정 기간 충분히 햇빛과 자랄 수 있는 조건은 

곶자왈에 뿌리를 내려 자생하는 이유이다.

곶자왈 용암지대는 토양 발달이 빈약하고

표층은 물론 심층까지 크고 작은 암괴들로 이루어져 식물이 자라기 어렵고 

식생의 발달 속도가 느려 숲의 형성은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곳으로 볼 수 있다.

숲은 조용한 듯 하지만 햇빛과의 전쟁을 치르며 

다툼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열려있는 곶자왈의 뷰를 만들어냈다.

곶자왈이 품고 있는 숲의 생명력 

나무는 돌에 의지하고 돌은 나무에 의지하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곶자왈의 매력은 사계절 얼굴 속에 숨어있는 늘 푸르름이다.

[가는쇠고사리]

곶자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주위는 어둡고 

늘 푸르름을 간직한 용암숲은 생명의 공간으로 양치식물들의 천국이다.

나무의 씨앗은 바위틈에도 발아하고 토양으로 뿌리를 길게 내려 

열대우림의 나무뿌리처럼 기괴한 형상의 모습, 나무와 암석이 만들어낸 착생식물과의 공존, 

숲의 땅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내음성 강한 난대성 양치식물의 서식밀도가 높은 편이다.

[녹나무]
[밤일엽]
[콩짜개덩굴]
[보춘화(춘란)]
[더부살이고사리]
[가는쇠고사리]

바람이 머무는 숲길...

나뭇잎을 만들기 전에 봄바람 타고 가버리는 작아도 너무 작은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작은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 

곶자왈의 발레리나 '길마가지나무'

작은 바람이지만 시간이 멈춘 듯 잠시 멈추길 간절히 바라본다.

[길마가지나무]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편안한 숲의 기운 

바람이 머무는 자연의 숨소리가 오롯이 남아 있는 생명을 품은 숲 

때 묻지 않은 은은한 향기로 봄을 채우며 곶자왈의 전설을 만들어가는 '제주백서향' 

봄은 소리 없이 곶자왈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다.

고은희

 

한라산, 마을길, 올레길, 해안길…. 제주에 숨겨진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작지만 이름모를 들꽃들.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생명의 꽃들과 눈을 맞출 때 느껴지는 설렘은 진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조경기사로 때로는 농부, 환경감시원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고픈 제주를 사랑하는 토박이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