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볍씨학교)
글쓴이 최연재(오른쪽에서 3번째) 학생과 바람반 친구들. (사진=볍씨학교)

지난 14일, 나는 볍씨학교 제주학사를 마무리하는 마침보람을 했다. 매년 12월에 하던 마침보람이지만 작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미뤄져 올해 3월이 돼서야 할 수 있었다. 3월에 하는 것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제주학사 생활을 할 계획이니 2021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정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지난해 생활이 마냥 좋아서 올해 제주학사에서 2년차로 살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2020년 제주학사 생활이 힘들고 버거워 당시에는 제주학사 생활을 1년만 버텨내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이 힘든지 나열해 보자면 정말 끝도 없다. 달리기와 일을 늘 하기에 체력소모가 크고 매일 밤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수면시간도 단축됐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수없이 많고 제주학사의 환경 자체가 열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부 적응이 되면 이겨낼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제주학사에서 지내며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의 격정과 마주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나의 격정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매번 회피했다. 나의 격정을 모두 앞에서 드러내는 것도, 완전히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두려웠다. 나의 가장 큰 격정은 불안이었다. 불안했기에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려고 했다. 나에 대한 자신이 없다 보니 외형적인 것으로 나를 꾸미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했고 그렇게 꾸며낸 내 모습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공허함도 나의 격정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내 안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나의 공허함을 채우려 했다. 주로 소비를 하며 물질로 나의 공허함을 채웠다. 또 조용한 상황이나 답답한 상황이 되면 공허함과 불안감이 커져 늘 ‘빨리, 빨리’를 외쳤다. 성격도 급해 나의 행동은 정신이 없었고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땐 짜증을 냈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행동을 보여왔었고 크게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지난해 제주학사 생활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늘 정신이 없었고 산만했다. 물론 짜증도 많았다.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전보다 더 강하게 코멘트를 받았고 나도 나의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제주학사에서는 나의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문제들을 내가 깨닫고 인정하며 남들에게 받은 코멘트를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렵지 진심으로 나의 잘못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면 내 행동을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나의 격정을 마주해야 하지만 회피하게 되고 내 모습에 대한 코멘트를 수용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당시에는 너무 지쳤다. 그 이야기가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보다 스트레스로만 다가왔다. 지난해 당시 제주학사 2년차인 선배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선배들 없이 우리 반인 바람반끼리만 생활해야 하는 시기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때 나의 모습과 표정이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졌다. 스스로 하는 힘도 많이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 시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의 격정을 하나 하나 이겨내다 보니 1년을 함께한 친구들과의 사이도 돈독해지고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서로의 모습을 전부 이해해 줄 수 있었으며 서로 정확한 코멘트를 해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반 모두 함께 제주학사 2년차를 결정했을 때 우리 반의 에너지가 매우 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마음과 기분을 떠올려보자면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1년간 우리 바람반에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단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각자의 격정에 부딪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단합이 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격정을 이겨내고 나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단합이 되었다.

모두가 확신에 차 2년차를 결정했으니 마침보람을 12월이 아닌 3월로 미뤘고 출정의 의미를 담기로 했다. 1월에 육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2년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 명이 아닌 모두가 다른 이유로 고민을 다시 했다. 간단하게는 육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시 치열한 제주학사 생활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다른 가족들이 2년차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고 작년과는 다른 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싶은 이유처럼 다양한 이유로 각자 다른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결정이 치열한 고민을 통해 내린 결정인지 판단해야 했다. 물론 나도 2년차 결정에 대한 고민을 다시 했다. 결론은 지금 내게는 다른 것보다 제주학사 2년차가 많은 성장을 줄 것이다.

다시 얘기하는 과정에서 세 명은 2년차 생활을 함께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정의 이유가 이해가 되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2년차 이야기가 꼭 좋게 끝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2년차 결정은 우리가 함께한 결정이고 약속이었다. 서로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제주에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나도 올해를 함께하지 못하게 된 친구들에게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당연히 같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속상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들을 강하게 신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함께 치열한 제주학사 생활을 이겨냈고 서로의 성장에 과정에 함께 있었으며 그 증인이라고 생각한다. 제주학사는 내게도 우리 반 전체에도 좋은 에너지를 주었다.

비록 바람반 6명이 모두 함께 2년차를 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만큼 더 올 한해를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는 진행되지 않은 활동 많았고 2년차가 되고 나니 제주학사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폭이 넓어졌다. 작년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고 있다. 작년 2년차 선배들이 우리 반에게 해준 것처럼 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긴장을 주는 역할, 때로는 멘토처럼 때로는 동료 같은 역할이 되고 싶다. 올해 2021년은 작년과 다른 모습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해 내 격정을 인정하며 더 밝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최연재 

저는 볍씨학교 제주학사에서 2년째 생활하고 있는 최연재입니다. 볍씨학교는 육지에 본교가 있고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이곳 제주학사로 와서 부모와 독립해 생활하게 됩니다.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친 뒤에도 배움과 성장을 위해 제주학사에 남아 지내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2년 차로 제주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학사에서는 자치와 자립, 생태적인 삶을 지향합니다. 생태적인 삶을 위해 생태화장실과 태양열 온수기, 빗물 저금통 등을 사용합니다. 손빨래하고 우리가 먹을 밥을 지으며 자치와 자립을 배워갑니다. 자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하고 농사일과 돌집을 직접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매일 아침달리기를 하며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매 순간, 자신의 격정을 확인하고 진실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최선의 선택을 위한 노력과 태도를 익히며 함께 성장하고 배워갑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