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속물이 없는 담백한 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내는 무조건 달달한 빵을 만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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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연발효 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건 니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매일의 빵》 
《매일의 빵》 정웅 지음, 문학동네

《매일의 빵》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빵집에 속하는 ‘오월의 종’의 오너 베이커인 정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실패와 성공 그리고 빵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에세이들로 채워져 있다. 이 글은 독후감이기 보다는 빵 만들기의 ‘다크투어’ 버전 혹은 별책부록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의기투합도 잘 하지만, 곧잘 다투기도 한다. 그런데 그 패턴이 똑같다. 한결같은 이유로 다툰다는 말이다. 우리가 빵을 만들어 팔자고 결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밀가루가 어떻고 발효가 어떻고 하는 등등의 빵 만들기에 대한 기초 상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저 기계적인 동작으로 피자만 만들 줄 알던 나에게 아내는 빵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거기까지는 나도 OK! 그런데 그 출발부터가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빵을 배울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로 가야만 했는데 마침 원하는 커리큘럼이 있는 데는 이미 예약이 차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지인찬스를 이용해 겨우 등록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코스는 나같은 생초보에게는 안 어울리는 거의 중급 수준의 코스였다. 막상 가 보니 실제로 그랬다.

우선, 교육생들 중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생각해보라. 50대를 넘긴(선생보다 내가 나이가 많았다!) 제주 촌놈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빵집에, 그것도 생초보로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쭈삣거리는 꼬락서니를! 아, 그 첫날의 긴장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이런 일로 아내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 다투면 그것야말로 인생초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빵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아주 추상적이고도 거친 아웃라인이 보이자마자, 나는 냅다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이미 세상의 빵을 다 알고 다 만들 줄 아는 것이었다. ‘빵의 역사’를 찾아 읽고 네루다의 ‘빵의 예찬’이라는 시를 읽고, 소문자자한 영어 레시피북도 사고..... 겨우 8번의 교육을 간신히 끝마친 주제에 온갖 주접이라는 주접은 다 떨고 있는 꼬라지였다. 여기서부터 아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 또 시작이네!”하는, 짜증과 갑갑함의 눈빛.

나는 호밀빵과 통밀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내는 크루아상과 타르트를 만들라고 했다.

나는 부속물이 없는 담백한 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내는 무조건 달달한 빵을 만들라고 했다.

아내는 크러스트가 너무 두껍다고 했다. 나는 빵 하나 만드는 데에 이틀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빵맛을 느껴보라고 했다. 아내는 SNS용 사진빨이 좋아야한다고 했다.

나는 천연발효(사워도우sourdough) 빵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건 니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내와의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의 전형인 이상을 쫓고, 아내는 ‘잘 되려는 사람’의 전형인 현실을 잡고자 했다. 나는 우리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시장에 어필하자고 했고, 아내는 시장의 니즈(needs)에 맞춰 우선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생산자의 자존을 말했고, 아내는 소비자의 욕망을 살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깃발을 들고 아내와 나는 서로 등을 돌린 것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달랐고 가치관이 달랐다. 익숙한 싸움이 또 시작된 것이다.

패배는 언제나 나의 몫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의 전투에서 아내도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불안한 타협이 이뤄지고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언제 어느 대목에서 또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위에 우리의 밥벌이 현장은 까치발을 한 채 서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브라우니brownie가 있다. 다들 알겠지만 이 브라우니라는 게 일종의 초콜릿 범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브라우니는 다른 브라우니 레시피와는 조금 색다르게 호밀 사워도우가 아주 많이 포함된 그런 브라우니다. 거친 듯 단맛이 나는 브라우니라고나 할까. 아내와 나의 거친 싸움이 빚은 달달함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젠장! 아내와 나는 어찌어찌 타협을 하지만, 현실은 결코 우리와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 현실은 자영업자의 눈물겨운 타협에 관심이 없다. 현실은 우리를 엿 먹인다. 빵을 만들면서도 슬프고 만들고 나서는 더 슬프다. 눈물 젖은 빵은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러나 아내여 울지 말자. 이 빌어먹은 현실에 제대로 엿 먹일 그날이 오겠지. 내일 또 내일. 굳세자 아내여. 이제 4월이고 또 5월이다. 세상이 발효될 시절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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