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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우다]친구라는 말의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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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우다]친구라는 말의 온도차
  • 에밀리
  • 승인 2021.03.27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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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말은 따뜻함을 준다. 서로 우정을 나눠주는 평등한 관계라는 신뢰와 기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따뜻한 말로 인식되기 때문에 편하게 많이 사용하는 습관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 생활에서 친구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빈번하게 부딪히는 벽과 온도차 때문에 적응이 필요했다. 

얼마 전에 유치원에 입학한 도담(가명)이와 함께 등원했다. 다른 어린이와 아이엄마를 만났고, 그 아이에게 "도담아, 같은 유치원에 다니게 될 친구예요. 인사해요!"라고 말을 건냈다. 그러자 선생님이 친절하게 "친구 아니고, 언니예요."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나이 더 많은 친구군요!"라고 대답하고 넘겼다.

도담이도 비슷한 경험을 4~5살 때부터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도담이가 5살였을 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내던 2살 더 많은 친구랑 신나게 놀다가 속상한 표정으로 나에게 뛰어와 말했다. "xx가 우리는 '친구'가 아니래, 언니라고 부르래." "속상해." '친구'가 아니라, '언니동생' 관계가 돼 이제 이름 대신 '언니'라고 불러야 하니 마음이 속상하다고.

여기서 살아온 경험이 있어서 보통 '친구'라는 것은 나이의 조건을 추가한 '또래친구'를 의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래여야만 친구인 것일까?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머리로는 '친구'라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지만 마음에 잘 안 박혀서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하다. 왜냐하면 그말에서 캐치된 또래친구의 핵심은 나이의 공통점을 나누는 친구를 말하기보다 또래이어야 친구라고 불릴 수 있다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전달되고 있으니 힘의 행사라고 느꼈다.

사회질서, 문화 등에 의한 예의라고 하더라도 아무래 생각해봐도 평등한 우정에 대한 기대는 존재의 존엄함과 비슷한 것이니 더 이상 수정당할 수 있는 부분 없는 것 같다. '예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특권이라면 모르지만 상호존중이라면 사람을 치켜세우지도 않고 깎아내리지도 않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그래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도담에게 늘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너의 친구이기도 하다는 말을 해줬다. 주변 내 친구들도 도담과 호칭 말고 서로 별명만 부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친구가 아니라는 말, 그 선정된 (나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행동을 보니 한국적응을 11년째 하고 있는 나도 답답한데 태어난 지 5년 밖에 안된 도담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도담은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에게 "속상하다", "(존대말 쓰는 것을) 그냥 깜빡한 것이다", "(언니라고) 부르기 싫다"는 표현들을 많이 한다. 그 표현들을 통역해보면 "평등하고 싶다", "배려받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말 정도될 것 같다. 그 어린 나이부터 이미 시작한 이 외로운 저항은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 사람들이 초면에 나이의 차이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을 보면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서 신경쓰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발견한 차이도 아닌 정해진 사회질서의 기준을 선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그 차이를 어른들이 의도적으로 예의 교육을 통해 알려준 식이었다.

만약 차이를 인식한다면 서로 조금 달라도 괜찮다는 안전감 형성을 위해 당연히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차이를 알게 한 어른들이 하는 그 다음 행동은 차별방지가 아닌 예의를 가르쳐주는 일이다. 그로 인해 차이에서 차별로 더 변질 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선정된 차이점 혹은 공통점이 특별히 강조되는 과정에서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해지고 서로 연결을 시켜주는 다양한 공통점의 힘을 약화되며 다양성을 함께 만들어주는 각자의 고유함도 당당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니 구조에서 강조하게 된 단일적인 차이와 공통점만 눈에 띄어 그로 인해 서로 서열로 서게 된다.

집단적으로 힘을 행사하거나 포기하는 현상까지 이른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이 군대생활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로 존중을 위해 예의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서열이 서게 된 이상 존중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예의를 그렇게 강요하지 않아도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이미 힘의 차이가 크다. 평등하고 안전한 장을 만들려는 마음이 있다면 힘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나눠주는 일을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평등하기 위해 힘이 필요한 사람들도 힘의 나눔을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예의에 관해 수정을 당하는 어린이들 보면 어른들이 힘을 포기하는 연습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와닿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한테 자기를 '너'라고 불러도 된다, 안 된다 표현하기 시작하는 도담. 그 '친구'에게 지지를 보낸다. 6살 어린이의 당당함을 나의 당당함으로 마주하는 것이 내가 보낸 연대이다.

에밀리
에밀리

 

글쓴이 에밀리는 대만 출신이다. 제주에서 정착하기 전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고, 지금 제주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아이를 낳았다.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붓는 일상 속에서 제주의 '인간풍경'을 글에 담고자 한다. 이 땅의 다양성을 더 찬란하게, 당당하게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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