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사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을 시켜 그리게 한 《탐라순력도》〈병담병주〉 중 잠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주목사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을 시켜 그리게 한 《탐라순력도》〈병담병주〉 중 잠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원래 비바리는 전복을 캐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남자들의 몫이었다. 전복을 캐는 도구를 빗창이라고 하듯이 ‘비’는 전복의 제주어다. 바리는 군바리에서 보듯 사람을 속되게 말하는 접미어이다. 

자연환경이 척박한 제주에서 외지인이 탐낼 만할 무역품이자 진상품이 전복과 그 속에서 가끔 발견되는 진주였다. 제주에서 전복을 따는 일은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 산업 급이었다. 남자들만으로는 필요한 양을 채취하기 어려워지자 여자들이 돕기 시작했다. 제주 여자들은 거친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전복 따는 일은 남자들의 힘이 굳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차츰 여자들의 몫이 되었고, 비바리는 제주여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해녀가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그것은 마치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와 같았다. 검푸른 바다속에서 조개와 함께 나타난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가 나체였듯이 해녀 또한 그랬다. 옷을 입고 잠수를 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고, 짠물이라 옷감도 금방 상한다. 남자들도 알몸으로 물질을 했다. 음란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겐 망측한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 그것은 성스러운 삶의 현장이었다. 탐라국이 독립된 왕국일 때는 그랬다. 

탐라국은 고려 초까지만 해도 번국(제후국)으로 외국인 취급을 받았다. 과거시험도 빈공과라고 하는 외국인들이 치르는 시험을 봤다. 고려 숙종 때인 1105년에 고려에 속하게 되면서 탐라국이란 이름대신에 탐라군으로 바뀐다. 기록으로는 그 전인 1079년부터 파견공무원인 구당사(고려 시대 탐라를 관할하던 벼슬) 가 제주에 들어왔다고 한다. 배운 남자인 초대 구당사 윤응균의 눈에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물질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미개함 그 자체로 보였다. 구당사는 당장 "해녀들의 나체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나체조업은 제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항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을 본 정약용은 아가사(아가를 위한 노래)라는 연민을 담은 노래를 지었다. 

아가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짠바다를 연못처럼 드나드네
(후략)

제주목사 이형상의 고안한 전통적인 잠녀복. (사진=국립해양박물관)
제주목사 이형상의 고안한 전통적인 잠녀복. (사진=국립해양박물관)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의 토속문화를 유교문화로 바꿔버림으로써 제주에선 가장 유명하지만 동시에 악명도 얻은 외지인이 되었다. 유교 합리주의자인 이형상은 나체조업을 금지하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해녀들이 물속에서 입을 수 있는 잠수복을 직접 고안해 입혔다. 이 잠수복은 고무잠수복이 나올 때까지 200년 가까이 장수한 디자인이다.

해녀는 산소탱크와 같은 기계장치 없이 바다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말한다. 기계장치는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마구잡이로 채취해서 생태계를 파괴해버리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욕심 없이 채취한다. 그렇게 해야 바다도 살고 인간도 산다.

해녀 사회엔 계급이 있어서 하군, 중군, 상군으로 구분된다. 하군은 바닷가에서 헤엄쳐가 물질을 하는 해녀들을 말하고, 상군이 되면 뱃물질이라고 해서 배로 먼바다까지 나가서 물질한다. 상군 가운데에서도 아주 기량이 뛰어난 해녀를 ‘대상군’이라 한다. 대상군 해녀는 한 마을 안에서도 두세 명이 있을까 말까 할 만큼 매우 드물다.  

능력 위주로 매겨진 계급을 해녀들은 잘 지켰으며 대상군을 존경했고, 약자들을 배려해서 수확물을 나눌 때는 몸이 아파 물질을 나오지 못한 해녀의 몫도 남겨두었다. 나이 든 해녀들이 물질하는 수심이 얕은 ‘할망바당’에는 다른 해녀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제주 4·3 이후 많은 남자들이 학살당한 뒤, 남겨진 여자들이 제주 섬을 다시 희망의 섬으로 일궈낸 데는 이런 해녀들의 강인한 세계관이 뒷받침되었다.

‘제주 해녀문화’가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7년 5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기계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작업방식과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통해 가족과 마을을 지켜온 강인한 생활력이 많은 현대인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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