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봄이 찾아오자 학교앞 부추밭에서 검질매는 볍씨학교 받침반 친구들 

우리 볍씨학교 9학년 받침반은 2주 전부터 녹색평론 선집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자연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알기 위해서, 그러므로 우리가 생활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짚어가기 위해서 선집을 읽기 시작했다. 2주 전에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읽었다. 추장이 연설문을 쓰게 된 이유는 워싱턴 대추장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던 피어스)이 그들의 땅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파는 것이 어떠냐면서 전갈을 보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을 위하여 쓴 글이었다.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읽으며 알 수 있는 사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그러니까 만물은 형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만물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아무리 관련이 없어보여도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이야기 한다. 워싱턴 대추장이 그 땅을 사게 되더라도 그 땅을 형제처럼 가족처럼 소중히 여긴다고 맹세한다면 그 땅을 내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땅이 자신의 땅이라서가 아니라 자연을 곤경하고 거룩하게 보는 이유 때문에 그 땅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땅을 내어주면 분명히 자연환경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내용이었다.

나는 이 연설문을 읽으며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깊게 생각해 보면 만물의 연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찔리기도 했다. 내가 비닐봉지 하나를 사용하면서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환경파괴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환경파괴에 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일부로 사실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다. 이 글을 읽으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환경파괴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내가 느낀 것과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정리하기 위해 연설문에 대한 답변을 쓴다.

 
씨애틀 추장에게

당신의 연설문을 잘 읽었다. 그대는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 당신이 워싱턴 대추장에게 땅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신과 당신의 부족을 죽일 것이 훤히 보이는데도 그대가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려고 하는 모습에 깊게 감명 받았다. 나라면 나의 목숨을 챙기기 바빴을 것이다. 창피하기도 하다.

당신이 “공기와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파느냐”고 하는 말을 공감한다. 물, 공기는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팔고 있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분명 맞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행동했다. 이것은 내것, 저것은 네것 하며 뭐든지 주인을 매기려고 하는 사회에 나도 물든 것 같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자연에는 주인이 없다' 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당신이 “땅은 우리의 일부고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다.” 라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온 형제들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에게 한 짓이 나에게 돌아온다. 당연하지만 겉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상의 환경 파괴를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이제 와서 반성하게 된다. 자연에게 미안하다.

그대가 살아온 의미 있는 땅이 있듯이 나에게도 의미 있고 추억이 있는 장소가 있다. 그런데 그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 아픈데 당신은 얼마나 가슴이 쓰라릴지 지금의 나로서는 느낄 수 없다.

그대들이 살고 있는 땅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것이 나로서는 신비롭게 느껴졌다. 원래 상태의 자연의 이미지를 상상하니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신령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자연 환경이 위협받고 있는 게 안타깝다. 나라면 어떻게든 막을 것이다. 지금 제주에는 제2공항 개발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그 공항을 지으려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비자림숲이 파괴된다.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공항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공항을 반대하는 활동이면 뭐든 할 수 있다. 

“백인은 자기가 숨 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백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모르고 행동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도시, 소위 문명의 틀 안에서 길들여져서 내가 하는 일을 인지하지 않고 모든 일들을 감사하지 않고 당연시 했다. 나는 지금 제주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니까 더욱 모든 것이 감사하고 자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며 자연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볍씨학교에 다니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의 많은 시간을 밭일에 투자한다. 자신이 먹는 것을 자신이 키우고 그 음식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한 밭일을 했다. 밭일을 하면 쭈그려 앉게 되고 흙냄새가 올라온다. 그리고 징그럽게만 보이던 곤충들도 신비롭게 보인다. 밭일을 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런데 오늘 밭일을 하면서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밭이란 그러니까 경작지란 노동의 결과인데 왜 주인이 없다고 하는가?’ ‘그 노동자가 가져야하는 게 아닌가?’ 밭일을 하면서 계속 궁금했다. 그래서 스스로 답해보았다.

사람이 밭을 만드는데 쓰는 도구, 일을 하기위해 에너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음식 그리고 제일 중요한 땅 까지 모두 자연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연의 도움을 받아서 땅을 개척하는 것이다. 잠시 빌리는 것이다. 사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면 그건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땅을 개척하는 일은 자연을 기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자연에 연결되어있다. 모든 것이 한사람이 개척한 땅에 영향을 주고 있다. 비, 바람, 흙, 곤충 모두 만물과 연결되어있다. 땅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것을 만물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그 제공된 것을 받아서 개척된 땅이라는 것으로 전환 시키는 것이지 온전히 한 사람이 그 땅을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땅을 개척한 사람이라도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땅은 노동의 결과이고 노동자가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생각은 단편적이 생각이었다. 나는 일상 속에서 배운 대로 몸에 길들여져 있는 대로 지내왔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 것 같다.

또 겉으로 보이는 당연한 사실 뿐만 아니라 그 이유까지 인지하니까 (예를 들면 환경이 파괴되면 안 되지만 왜 파괴되면 안 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인지하지는 못한다.)진심으로 자연환경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자연을 위해 실천하려고 한다. 최대한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친환경적인 브랜드를 사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새것을 사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한다는 등 작은 실천이 될 수도 있고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위 등의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실천 할 것이다. 자연에게 감사하고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당신에게 감사하다.

 

이제윤
저는 올해 처음으로 제주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립을 연습하고 내면에서의 성장을 위해 제주학사에 내려왔습니다. 일상의 패턴이 바뀌고 정신적인 힘듦도 따르지만 그만큼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리라고 믿기 때문에 제주학사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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