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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농업]고사리를 꺾으며 농지개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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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농업]고사리를 꺾으며 농지개혁을 꿈꾼다
  • 고기협
  • 승인 2021.03.30 17: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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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사리.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 고사리.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4월이 되고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고사리가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기 시작한다. 고사리 장마(4월에서 5월 사이에 내리는 장마;편집자)가 지고 형제가 아홉인 고사리가 여기저기 돋아나면 산과 들엔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고사리를 꺾는 재미는 쏠쏠함을 넘어 중독성이 강하다. 덤불에 숨어 있는 고사리를 찾아서 꺾다 보면 농경시대 이후 봉쇄되었던 수렵채집 DNA가 풀려나와 몰입하게 된다. 고개를 땅에 박고 고사리만 찾다 보면 길을 잃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제주소방안전본부에서는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길 잃은 사람을 구조하기 위하여 바빠진다. 찾기의 연속이다.

고사리는 내 땅이건 네 땅이건, 사유지건 국유지건 꺾는 사람이 임자다. 자격 제한도 없다. 생업으로 하루 40kg을 꺾는 50대 아저씨나, 아이들 손을 잡고 소풍으로 나온 젊은 부부나, 고사리를 처음 꺾는 관광객이나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끝나는 시간도 정해진 것이 없다. 보통 새벽에 집을 나서지만 돌아오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또 고사리를 꺾는 데는 특별한 기구도 필요 없다. 가시에 찔리지 않을 재질이 촘촘하고 두꺼운 옷과 고사리를 담을 찰리(‘자루’의 제주어;편집자)만 있으면 된다. 거기에다 자기가 꺾은 수확물에서 지대나 이자라는 명목으로 일부를 상납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가 꺾은 것은 오고생이(온전하게 고스란히) 자기 소유다. 사유재산과 분업·교환이 없는 신세계이다. 아니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유지했던 자급자족 채집경제 양식이다. 

요즘 LH 직원의 땅 투기에서 유발된 기득권의 도덕적 해이가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그 공분에는 사유재산 불평등에 따른 경제적 상실감과 공정성을 부르짖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실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는 사유재산제를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유재산제는 인류사에 있어 특정시대, 특정사회의 제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도로, 공원 등은 국가나 지자체 소유다. 

[한라산이 보이는 '감귤밭']<br>
한라산이 보이는 감귤밭. (사진=제주투데이DB)

독일 헌법 제15조는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정도를 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공유재산 및 공동관리 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고, 아일랜드는 토지와 광산, 광물 및 용수는 국가에 속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토지개혁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고, 싱가포르와 홍콩은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 중이다. 심지어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조차도 건국 초부터 토지공개념을 조세제도에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지는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50%에 가까운 농지가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다. 누구보다도 법을 잘 지켜야 할 국회의원과 언제 씨를 뿌리는지도 모르는 재벌 임원, 판검사, 고위공무원, 의사, 약사, 변호사, 교수 등도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온갖 변명을 대지만 투기가 목적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땅 투기는 농지매입 사전·사후관리 강화, 공직자 부동산 등록·거래신고 의무화 등의 대책으로는 근절되지 않는다. 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땅값이 상승하면 엄청난 불로소득이 발생하는데, 관리를 강화한다고 투기를 하지 않을까? 사촌의 사돈을 통해서라도 투기를 할 것이다. 돈에는 영혼이 없다. 돈은 이익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도입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고려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은 권문세족이 토지 대부분을 차지하여 농민들이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흥사대부가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것은 과전법 때문이다. 최초의 구상인 계민수전(計民授田: 백성의 수를 헤아려 토지를 백성에게 나누어주는 제도)에서 후퇴하여 전국 토지를 국가 소유로 하고 전·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조세를 받을 권리;편집자)를 받게 한 제도임에도 말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은 1951년 농림부장관 조봉암의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한 토지개혁에서 마련됐다. 이 개혁을 통해 자신이 소유한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자작농이 성장하여 우골탑(소의 뼈로 쌓은 탑.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골에서 소를 팔아야 했던 때 ‘대학’을 부르던 말;편집자)으로 상징되는 고급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으로 안정적인 식량생산이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공공재로 인식할 필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의 농지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 앞으로 20년 이내 고령농의 농지가 상속 등으로 비농업인에게 넘어가 임대차 비율은 현재의 47.2%에서 7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다. 지주가 양도소득세 감면 등을 받기 위하여 임대차 계약서를 써주지 않거나 임차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본인 이름으로 농업경영체에 등록하는 등 농지문제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공익직불제에 따라 0.5ha 이하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농업인들도 연 120만원의 직불금을 받게 되면서 고령농의 농지임대도 줄어들고 있다. 만약 1ha 규모의 과수원에서 노지감귤을 재배할 경우 90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1ha의 감귤밭을 살 수 있다. 이것도 농지가격이 전혀 상승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부모님 세대는 농사를 지어 농지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2000평의 농사를 해야 굶어죽지 않는데 2000평을 소유하려면 적어도 10억원이 필요하다. 농업에 대한 진압장벽이 한라산만큼이나 높아진 것이다.

농민이 농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농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지금 당장 제2의 농지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농업의 미래는 없다. 

이번 주말에는 돌담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여자 셋과 고사리를 찾아다니며 원시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뚝뚝, 또옥또옥, 띡띡하고 여자 셋의 성깔에 따라 다르게 들려오는 고사리 꺾는 소리가 벌써 나를 들뜨게 한다. 

“농민에게만 농지를 허하라.“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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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영 2021-04-01 23:33:13
농업의 진입장벽을 허하라.
고사리에서 농지개혁으로 이끌어가는 필력이 대단합니다.

희망 2021-03-31 22:47:50
농지에 투기한 지도층 인사들의 행적이 뉴스에 나온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의식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에게는 그 땅에 제대로 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 같은데, 개발독재 이래 도덕과 가치가 완전히 전도된 것 같다. 들판에서 가족과의 고사리 채취가 비정상적인 농지실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분노도 일으킨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이제라도 토지공개념 도입과 더불어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지제도를 확실히 개혁했으면 한다.

참농부 2021-03-31 00:06:10
고사리를 따는 날 밤에 잘 준비를 하고 누어 눈을 감으면 고사리들이 반짝 반짝 눈 앞에 펼쳤는데 이제 곧 고사리를 꺽을 시기가 왔군요^^
내 땅에 농사를 짓고 싶지만... 제주도 땅값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올랐네요~~~ 꼭 농지를 구입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부드러운 필체로 가려운 곳은 살살 긁어주고 토닥 토닥 등 두르리며 위로 해주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농린이 2021-03-30 22:49:35
농지가 올곳이 농민에게 안기는 순간까지
농민여러분 힘내세요^^

창업농 2021-03-30 22:28:21
청년 창업농이 농지 걱정 없이 농사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