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전상서] 원희룡 지사님. 저는 '주간원희룡' 코너로 종종 찾아뵙던 김재훈 기자입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벚꽃 구경도 좀 하셨습니까? 올해 벚꽃은 제법 화사했습니다. 하지만 저 화사한 벚꽃을 제주제2공항 피해 지역 주민들은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셨겠지요. 주민들의 시름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르시지는 않겠죠. 굳이 알고 싶은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이런 와중에,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들었습니다. 원 지사께서 지난 24일 YTN 라디오(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내뱉었죠. “4월 3일 대통령께서 오실 텐데 그때도 (제2공항 건설 추진을) 적극 건의할 생각이다. 4·3 73주년(추념식)에 오신다.”

4·3 희생자들을 추념하기 위해 제주를 찾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2공항 추진 의지를 전하겠다고요? 일국의 대통령 동선을 무심히 공개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지만 그보다는, 경건하게 보내야 할 4·3추념식에 제2공항 건설 갈등을 키울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말에 생각이 깊어집니다. 이는 4·3 희생자를 추념하는 도민사회에 제2공항 갈등 폭탄을 던져놓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드립니다.

국가 공권력으로 인한 상처의 역사 제주4·3. 바로 그날, 도민들의 바람을 찍어누르는 건의를 대통령에게 하겠다뇨. 공권력이란 단지 총칼의 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죠. 정책 결정을 함에 있어 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공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역시 공권력입니다.

4·3추념일 그날 하루만이라도 희생자를 위무하며, 말을 아끼며 경건하게 보낼 수는 없습니까? 4·3추념일을 그런 식으로 이용해야겠습니까? 문 대통령의 4·3추모식 방문 동선이 공개된 뒤 제2공항 찬성단체는 그날 집회를 열 준비 중입니다. 지사님은, 그런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지사님의 그런 발언이 찬반 단체들을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까? 제2공항 갈등이 더욱 커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원 지사님, 도민의견에 고개를 숙이고 전향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 힘든 일입니까. 전두환에게 납작하게 엎드린 채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쉬웠지만, 도민의견에 고개 숙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원 지사님은, 제2공항 추진 약속을 지킨다는 ‘책임정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는 시대의 흐름과 여론의 변화에 따라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그게 살아있는 정치입니다.

제2공항에 대한 도민 여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찬성에서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환경문제, 조류충돌 문제, 제주의 미래에 대한 철학의 변화 등이 반영된 것이죠. 이와 같은 시대와 도민 여론의 흐름을 놓쳐버린 원 지사님이 보여주는 작금의 정치는, 차라리 ‘정치의 시체’에 가깝습니다.

민심의 변화를 읽으십시오. 그 의미를 되새기십시오.

그리고 부디 4·3추념일만은 망가뜨리지 마십시오. 지난해 광복절의 그 난리를 즐기신 건 아니겠죠.

지사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