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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루트탐사기]③청산에 앉아 등경돌에 불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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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루트탐사기]③청산에 앉아 등경돌에 불 밝히고
  • 한진오
  • 승인 2021.04.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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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루트탐사기]①설문대할망과 만나기에 앞서

[설문대루트탐사기]②섬과 산의 창세기

#망망한 바다 위에 섬 하나

망망한 바다 위에 섬 하나가 태어났다. 행여나 큰 물살이 섬을 삼킬까 싶어 한가운데를 도드라지게 퍼 올리니 높다란 산이 되어 마음이 놓였다. 이만하면 제아무리 큰 물살이 밀물져 와도 섬이 잠길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생명이 움트기에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해와 달이 비치지 않아 밤과 낮이 없었다. 계절이 흐르지 않으니 바람도 없고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다.

고심하던 할망은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으리라 작정했다. 큰 섬 귀퉁이에서 떨어져 나온 청산이 물레를 놓고 길쌈을 하기에 알맞아 보였다. 그리하여 할망은 청산에 물레를 놓고 그 중턱에 불쑥 불거져 나온 바위기둥에 돌 하나를 더 얹어 등잔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물음표는 여신 설문대가 길쌈을 했다는 전설이 깃든 일출봉을 찾아 등경돌 앞에서 태초의 할망을 떠올렸다. 할망께선 자신의 창조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서 이곳에 앉아 시간을 엮는 직조를 했으리라. 물음표는 다시 여신이 행한 직조에 담긴 뜻을 탐문하며 오정개에서 광치기 끄트머리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명의 발원지가 궁금해 고향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하는 물고기처럼.

(사진=한진오 제공)
일출봉 중턱에 우뚝 솟은 설문대할망 등경돌(사진=한진오 제공)

#여신의 직조가 뜻하는 것은

일출봉을 오르는 중턱에 등경돌이 있다. 커다란 바위기둥이다. 설문대할망이 이 바위 위에 등잔을 올려놓고 길쌈을 했다고도 하고, 바농상지(반짓고리)를 올려놓고 바느질을 했다고도 설화는 전한다. 길쌈이나 바느질이나 모두 직조로 볼 수 있다. 무슨 이유로 할망이 직조를 했을까 하는 점은 설문대루트 탐사를 떠난 물음표가 아니더라도 궁금해할 사람이 많겠다. 여신의 직조에는 과연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이런 경우 직관적인 판단이나 깊은 사색을 통해 제 나름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신화와 전설을 견주어보며 뜻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교를 통해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설득력이 높은데 설문대의 직조도 이런 방식으로 살펴보자.

역사서이면서 구비전승되는 이야기까지 기록한 일연의 삼국유사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사연이 나온다. 여느 날처럼 갯가에 나와 해루질을 하던 연오랑이 바위를 타고 동해를 건너 일본에 다다랐다. 외짝의 기러기 신세가 된 세오녀가 연오랑이 사라진 바다를 헤매다 그 역시 바위를 타고 낭군의 경로를 따라 일본까지 갔다.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신비한 존재들에게 경외감을 느낀 일본사람들은 두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

두 사람이 사라진 뒤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게 놀란 아달라왕이 신하들에게 원인을 알아내라는 명을 내렸다. 신하들은 수소문 끝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왕은 당장 두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고 신하들은 멀리 일본으로 건너가 왕명을 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돌아갈 수 없다며 대신에 세오녀가 짠 옷을 건네줬다. 세오녀의 옷을 받은 신하들이 신라로 돌아오자 빛을 잃었던 해와 달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멀리 아유타국에서 가야까지 뱃길로 들어온 허황옥이 뭍에 내리자마자 능현에서 산신에게 폐백으로 비단 치마를 바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오녀가 짠 옷이 해와 달을 불러모아 시간을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면 허황옥의 비단 치마는 신천지에 다다라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기원의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직조에는 창조의 의미가 깃들어 있어서 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타난다. 게르만신화 속의 최고신 오딘의 아내 프리그는 열한 명의 시녀와 함께 물레를 돌리며 열두 달과 사계절을 창조한다고 한다.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누트 또한 직조를 통해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제주의 창조주 설문대의 이야기에도 유독 직조와 이어지는 사연이 많다. 제주섬을 만들 때에도 치마폭으로 흙을 날랐다고 하고, 섬 여기저기서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결국 일출봉자락에서 펼쳐진 설문대의 직조는 창조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한진오 제공)
성산갑문과 광치기 해안도로가 생겨나 뭍이 된 일출봉과 호수가 된 오조리 내수면(사진=한진오 제공)

#청산은 본래 섬이었으니

일출봉을 일러 제주사람들은 ‘청산’이라고 부른다. 청산은 애초에 섬이었다. 조선의 시인 임제는 제주목사인 아버지에게 자신의 과거급제 소식을 알리러 제주에 내려와 일출봉에 오른 뒤 이런 글을 남겼다.

“성산도(城山島)라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은 마치 한 송이 푸른 연꽃이 파도 사이에 꽂혀 솟아오른 듯했다.”

원래는 섬이었다는데 청산은 어쩌다 뭍이 되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청산은 육계도(陸繫島)였다. 4.3학살지 중 한 곳인 터진목에서 광치기로 이어지는 곳이 썰물이 일면 걸어서 청산과 본섬을 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매립되어 지금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로 변했다. 반대편으로는 오조리와 청산을 잇는 성산갑문이 20세기 후반에 생겨났다.

그 때문에 오조리 바다는 갑문에 막혀 바닷물도 민물도 아닌 어정쩡한 호수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설문대는 육지까지 다리를 놓지 않았지만 우리 인간은 청산과 본섬 사이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이만하면 자연을 정복했다는 오만에 빠질 만도 하다.

이곳이 섬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청산의 품에 기대어 살아온 이력을 말한다. 이들은 청산의 분화구를 ‘토상안’이라고 불러왔다. 토성(土城)의 안쪽이라는 뜻인데 삼별초와 관련된 이름이다. 삼별초 항쟁 당시 김통정이 이곳에 진을 치고 설문대할망의 등경돌에 올라서서 적경을 살폈는데 그의 발자국이 바위에 찍혀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토상안은 겨울철 청산 일대에서 기르는 소들의 월동 방목지였다. 1980년대 초까지도 수백 마리의 소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났다. 지금은 일출봉 등반로의 하산길이 그 옛날 소 떼가 오르던 길이라고 한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면 토상안에는 ‘새’라고 부르는 띠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벼를 재배하기 어려운 제주에선 초가의 지붕을 정비할 때 새를 이용해 부러 이 풀을 기르는 ‘새왓’을 따로 둘 정도였다. 청산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에게 토상안은 천연의 새왓이었으니 시시때때로 새를 베러 오르내리는 발길이 잦았다고 한다.

청산은 바다밭으로도 매우 유용했다. 현재 해녀의 집이 자리한 청산 밑자락 우뭇개와 우뭇개동산 건너편의 오정개 바닷가까지 곰들래기, 옷덕, 용촐리, 창꼼 등 수많은 갯바위가 수면 위아래로 진을 치고 있어서 금싸라기 같은 바다밭 구실을 톡톡히 했다.

사시사철 물때를 맞춰 목숨 건 물질에 나섰던 이 마을 해녀들에게는 모르는 이가 처음 들으면 혀를 내두를 엄청난 이력도 있다. 이른바 ‘섬바르’ 또는 ‘선바르’라고 부르는 물질인데 그것은 우뭇개를 지나 청산의 바다 쪽 벼랑을 타고 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가파른 절벽을 타고 성산굴을 지나야 닿는 섬바르 물질은 돌아오는 길이 더욱 고역이었다. 수확물로 그득한 망사리는 보통 3~40Kg은 될 텐데 그것을 등에 지고 절벽을 탔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조천읍 북촌리 해녀들도 서우봉의 ‘몬죽이알’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절벽을 타고 넘나드는 물질을 했었다고 하니 이들의 고역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었겠다.

(사진=한진오 제공)
우도에서 바라본 일출봉과 새끼청산(사진=한진오 제공)

#고래와 물개는 반쪽 잠만 잔다

청산의 바다 쪽 끄트머리 앞에는 코뿔소의 뿔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바위섬 하나가 있다. 아마도 설문대할망의 치맛자락에서 떨어진 흙 부스러기인 듯하다. 이 조그만 바위섬의 이름은 청산에 딸려 있어서인지 ‘새끼청산’이다. 새끼청산을 드나들던 어부와 해녀들에 의하면 수십 년 전까지 이곳은 물개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물개가 아니라 강치라고도 하는데 어찌 되었건 그 많았던 물짐승들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시로 이 바다에서 자맥질하던 돌고래도 더는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창조주 설문대는 이 섬을 만들 때 모두가 공생하는 만생명의 고향을 떠올렸을 테다. 모든 생명이 창조주의 뜻을 잊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왔지만 우리 인간만은 어느 순간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된 듯하다. 신을 숭배하는 일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기도로 가득 찼고 자연은 한낱 마음대로 다뤄도 좋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느덧 물음표는 섭지코지를 장악한 리조트 코앞까지 다다랐다. 그는 환락의 휴양지를 애써 외면하며 고래도 물개도 사라진 새끼청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래와 물개의 깊은 잠을 떠올렸다. 원래 뭍짐승인 포유류였던 고래와 물개는 바다 살이를 하는 쪽으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허파로 숨을 쉰다. 깊은 물속에서 잠이 들더라도 좌뇌와 우뇌 중 하나는 늘 깨어있다.

호흡이 달릴 때 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들이키지 않으면 잠든 채로 목숨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물음표는 고래와 물개의 반쪽 잠을 달리 풀이했다. 먼 옛날 창조주의 섬에서 태어나 바다로 떠나갔지만 두고 온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늘 깨어있는 것이라고. 고래와 물개는 만생명이 함께 공생하라는 여신의 뜻을 여전히 간직한 채 섬을 향해 숨비소리를 내고 있는데 인간만은 눈을 떠도 잠든 영혼인 불쌍한 존재라고.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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