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7일 해군기지 안에서 송강호 박사는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류복희씨는 “구럼비야 봄잠 잘 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지난해 3월 7일 해군기지 안에서 송강호 박사는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류복희씨는 “구럼비야 봄잠 잘 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강정평화네트워크)

제주해군기지 파손 혐의로 구속된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등의 실형을 확정하는 항소심 결과를 두고 시민사회가 재판부를 비판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정평화네트워크,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5일 공동 성명을 내고 "기지 건설의 불법성에 대해 언급하는 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4·3 당시 군법재판에 가담해 가해자를 도운 법관들과 다를게 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2018년 관함식 당시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불법적인 공사로 인해 사법 처벌을 받는 것은 농부, 어부, 학생들, 목사, 카톨릭 신부 등 무고한 시민들 뿐"이라고 개탄했다. 

송 박사와 류복희 씨가 철조망을 뚫고 해군기지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3월 7일. 구럼비 발파 8주년을 맞아 둘은 기도를 드리기 위해 해군에 수차례 방문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송 박사는 철조망을 잘랐고, 둘은 수변공원에 남은 구럼비에 앉아 기도 드렸다. 송강호 박사는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류복희씨는 “구럼비야 봄잠 잘 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30일 해군의 고소로 구속, 1심을 맡은 제주지방법원 재판부는 송강호 박사에 징역 2년, 류복희 씨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으며(2020년 9월 24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유지했다(2021년 3월 31일). 

이에 평화활동가와 시민들은 "송 박사와 류복희 씨는 마을의 기도처요 놀이터였던 구럼비를 애도하고 제주도가 전쟁도 군대도 없는 평화의 섬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을 뿐"이라며 "해군기지가 유죄고, 이 둘은 무죄"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송강호 박사와 류복희 활동가의 항소심 최후 진술문 전문

 

(사진=강정친구들)
(사진=강정친구들)

송강호 박사 항소심 최후 진술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어린 시절 자라난 고향은 아름다운 소은산이 있고 한탄강 맑은 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입니다. 저는 산과 강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해 질 녘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제게는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저를 서울로 전학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는 부모를 떠나 삭막한 대도시에서 청소년 시절을 외롭게 지내며 방황하는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의 일기장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 펜글씨에 번져 얼룩진 자국들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왜 어머니께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저를 떠나보내야 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제가 청년이 돼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제 고향 마을 주변에는 미군 부대가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사창가가 즐비했습니다.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고 여학생들은 본인의 주거지를 숨겨야만 시집을 갈 수 있다며 대부분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제 고향 동두천입니다. 이제 그 미군 기지는 철수하고 그 자리에 동양대학교의 새로운 캠퍼스가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게는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운 변화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와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발칸반도의 전쟁터를 방문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분쟁과 갈등 지역에서 희생자들을 돌보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저는 군대가 악이고 국익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이라고 선전하면서 거대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무시무시한 화력과 무기로 무장한 군함과 잠수함들을 배치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고 패착입니다.

제주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중국과 일본에 군사력으로 대항할 경우 우리나라는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그 손실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 손실을 포함하는 것이고 그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현대전은 군인보다 민간인들 피해가 훨씬 크고 그 비율이 1대 9에 이른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에서는 피해에 못지 않은 가해 국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고상한 인류애 때문에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도 그런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가족이 내게 소중하듯이 이웃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그 누군가의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내 나라 군대와 군인에게 무참하게 살해돼 피 흘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은 최소한의 양심 때문입니다.

군대와 무기가 우리 안전과 평화를 지켜 준다는 고정관념은 단지 주입되고 세뇌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기망하는 그 헛된 희망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인해 각종 재앙이 인류 생존과 지구촌 전체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국가 간 협력과 공조는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적 요구입니다. 상호 불신과 대결 구도 속에서 강화되는 군사주의는 우리 시대가 나아갈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입니다.

게다가 군대는 젊은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합니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 정부를 비난하지만 우리 정부도 조직적으로 미군 위안부를 관리하고 지원했으며 한국군 부대가 주둔하는 지역에도 그 어디나 성매매 업소가 늘어서 있습니다. 군대는 전시에는 살인과 강간을 일삼고 평시에는 성매매의 주범입니다. 군대에서 젊은이들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바라보도록 세뇌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식의 퇴화 없이는 인간을 육축처럼 죽일 수도 없고 여성을 강간하거나 쾌락을 위해 상품처럼 살 수도 없습니다. 제 경험도 그리고 '살인 금지'와 '원수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도 모두 군대와 전쟁을 배격하는데 제가 어떻게 거대한 군사기지가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에 건설된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군사기지가 구럼비와 같이 아름답고 거룩한 바위를 파괴하고 그 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입니다. 구럼비 앞에는 푸른 바다 위에 범섬, 문섬, 섶섬이 조각배처럼 떠 있고 뒤로는 한라산의 영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지어지고 나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광경이 됐지만, 100마리가 넘는 돌고래 떼가 하늘로 뛰어오르며 유영하는 모습은 상서러운 느낌을 줄 정도로 장관을 이룹니다. 그 구럼비바위에는 층층고랭이, 붉은발말똥게, 새뱅이, 맹꽁이 같은 희귀 멸종 위기종들이 깃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너럭바위 위에서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솟아올라 이곳저곳에 예쁜 선녀탕들을 만듭니다. 제주도가 구럼비를 경관 1등급의 절대 보존 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인류 사회가 누리고 보호해야 할 이 소중한 자연유산을 불법적으로 파괴하고 시멘트 콘크리트로 묻어 버린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군기지의 펜스를 절단하고 구럼비에 들어간 날은 바로 그 구럼비를 폭파하기 시작한 2012년 3월 7일로부터 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2월 14일 오전 한 차례, 그리고 3월 7일 오전 8시경과 12시경 두 차례 도합 세 차례 정식으로 방문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른 이유로 방문이 거절됐습니다. 만일 민간의 방문 신청을 담당하는 실무 장교(민사 장교)가 한 번만이라도 방문 거절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그 이후 방문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과 절차를 알려 주는 성의를 보였더라면, 그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군사주의에 희생당한 구럼비바위를 애도하고 제주도가 군대도 전쟁도 없는 평화의 섬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위해서 구럼비바위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해군이 구럼비바위를 기지 안에 가둬 두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군기지에 들어갔던 것이지 원래 목적지는 구럼비바위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구럼비바위는 모든 시민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려받은 그대로의 모습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천혜의 자연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구럼비에 가서 기도한 행동 즉 제 '범죄' 행위의 동기와 최종적인 목적 그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군이 그 특정 지역을 부당하게 사유화해서 그 동기와 목적을 실현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불가피하게 펜스를 훼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 행동이 범죄행위라고 생각지도 않았고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힘들거나 두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저로 인해 공범으로 오인받고 있는 류복희 자매에게 미안합니다. 평생 전쟁 피해자들을 도우며 살아온 존경하는 류복희 씨에 대한 사법 처벌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몹시 불편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구럼비바위에서 기도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럼비바위를 반드시 다시 되찾아 다시 시민들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 모든 활동은 언제나 그랬듯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저는 해군이 제 구럼비바위 출입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실정법을 최대한 존중해 다시 규정된 절차를 밟아서 방문하겠습니다. 해군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방문을 불허했으니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규정을 지켜 방문 신청을 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사회에서 법은 왜 존재합니까?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입니까? 1심 재판부는 군대라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손궤하고 군대 안에 들어간 행위에 대해서 2년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군대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강정마을의 땅과 공유수면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제주법원도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가 파괴돼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불법적인 공사로 인해 1000명이 넘는 시민이 사법 처벌을 받았고 30명이 넘는 시민이 투옥됐습니다. 그들은 농부와 어부, 목사, 학생, 가톨릭 신부·수사 같은 무고한 시민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파렴치범이나 잡범으로 처벌받은 기록이 없는 선량한 시민이었습니다. 국가가 군부의 이익을 위해 군사기지를 무리하게 건설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희생당했지만 이에 분노하는 검사도 이 정부의 범죄행위를 징벌한 판사도 없었습니다. 법이 억울한 약자들의 정의를 지켜 줄 것을 기대했던 우리 주민들의 희망은 결국 좌절당했습니다.

재판장님은 거의 매일 제주법원에서 4·3 희생자들을 위한 재심 재판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부터 75년이나 지난 옛 사건을 다시 꺼내어 억울한 희생자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재판입니다. 저는 희생자들은 있지만 가해자들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이 이상합니다. 틀림없이 가해자들이 있었고 법관들은 그들을 도왔습니다. 저는 당시 법관들이 오늘날의 법관들과 달리 무능하거나 악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뛰어난 준재들이었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자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이런 가해의 공범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개인의 인권보다 주어진 현실, 국가 제도를 우선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눈을 감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눈을 부릅뜨고 약하고 힘없는 시민들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용기 냈더라면 제주는 이렇게 처참한 비극의 섬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법이 법정에 끌려온 개인의 결과적인 행동뿐 아니라 그 동기와 목적,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의 꿈과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군사기지화하는 제주도처럼 일본 오키나와 열도에도 미군 기지와 일본 자위대의 군사기지가 계속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지금 강정처럼 군사기지 건설과 군대 주둔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완에도 잠자고 있는 군사기지가 많습니다. 오랜 기간 독재했던 장개석 총통이 본토 회복을 위해 섬 전체를 기지화했기 때문입니다. 이 잠들어 있는 군사기지들이 다시 중국의 태평양 패권 다툼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성화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타이완이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반면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주도뿐 아니라 오키나와와 타이완의 주민들과 함께 한국·중국·일본이 서로 전쟁하지 않는 평화로운 이웃 국가로 공존할 수 있도록 '평화를 위한 섬들의 연대(Inter-island solidarity for peace)'라는 국제 회의를 제안했고 2014년부터 매년 세 섬을 순회하며 그 회의를 진행하는 데 동참해 왔습니다. 저는 이 국경의 섬들에서 전쟁도 군사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한·중·일 청년들을 세일링 요트에 실어 함께 항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재작년 9월 일본 동경에서 요트를 구해 제주 강정까지 그 배를 타고 왔습니다. 지금 강정에는 그 배를 타고 평화의 항해를 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제가 감옥에 앉아 이 노년의 한 해를 더 보내기보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이 젊은이들과 함께 군사주의로 짓눌려 있는 이 국경의 섬들을 순항하며 전쟁 없는 세상의 꿈을 전파하는 평화의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이제는 자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판사님, 제주가 거대한 항공모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류복희 활동가 최후 진술문-

다시 3월 7일 구럼비 발파의 날.

올해도 3월 7일이 다가오면서 다시 구럼비에 들어가겠다는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 같지 않습니다. 바로 헌병대장이 전화로 몇 사람이 들어갈 건지, 얼마나 머물 건지, 어떤 행사를 할 건지 신청서에 구체적으로 적어 달라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뜻밖에 연락이었습니다. 강정에 함께 계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경험으로 알게 된 부정적인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헌병대장과 두 번 정도 만나고 누가 들어 갈 것인지를 결정했었습니다. 그런데 3월 7일이 되는 5일 전에 헌병대장이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코로나가 아직 진정국면이 아니어서 부대 안의 모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될 뿐 아니라 부대 안에 있는 사병들도 외출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면서 부대 안 수변 공원에 남아 있는 구럼비에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부대 개방의 날을 조만간 만들 테니 그때 들어오라 합니다. 3월 7일이 특별한 날이어서 저희가 들어가려는 것이지 부대를 구경하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3월 7일 구럼비에 들어가는 것은 거절되었지만 저희는 구럼비 기억 순례 시간을 가졌습니다.

3일간 집회신고를 하고 해군기지 앞에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깃발들과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코로나로 함께 한다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을 뿐 많은 사람이 직접 방문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7일 기억 순례의 시간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긴 행렬이 되었습니다. 철조망을 따라 구럼비와 함께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갔습니다. 구럼비가 바다의 텃밭이었고, 구럼비가 꽃밭이었고, 구럼비가 놀이터였고, 구럼비의 할 망 물은 치료하는 물이었고, 구럼비는 신성한 기도처였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며 그렇게 걸었습니다. 군인들도 휴일이었는데 비상령이 떨어져 중무장하고 저희을 향해 경계를 서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함께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며 행렬을 하고 있는 저희가 위협적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경계 근무를 서야 하는지 의아해하며 군대가 뭐지? 라는 의문을 품었을 수도요. 아마도 대부분은 휴일 근무 때문에 엄청 짜증이 났겠지요…

제주도는 점점 군사기지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더니 여론조사에서 분명히 반대 의견으로 결론이 난 제 2공항을 계속해서 강행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축구장 152배나 되는 국가종합위성센터를 구좌읍 덕천리에 짓겠다고 합니다. 제주를 항공모함과 공군기지 그리고 레이더 기지를 갖춘 거대한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제주가 어떤 곳입니까? 4.3 항쟁으로 군경에 의해 민간인 3만이 희생당한 곳입니다.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도 몰랐던 그 때의 일들을 진상규명과 함께 희생자 명에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73년이 넘어 이제야 발의 되었습니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한 지역 안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묵인되었으며 희생에 대한 신음 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 왔을 때 처음 마을 어르신이 ‘까매기 모르는 식게’ 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제주도 방언으로 제사가 끝난 뒤 까마귀가 걸명(제사 끝에 잡귀에 주기 위해 음식을 조금씩 뗀 것)을 먹으러 오기도 전에 몰래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라고 하시면서 어렸을 때  집집마다 귀신도 모르는 제사를 지내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혹여나 잘못되어 연좌제로 남은 자식들에게까지 올무가 될까 봐 죽은 자도 마음 놓고 기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아픔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평화의 섬에 대한 담론이 이런 역사의 피 흘림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다른 길은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은 현대전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민족상잔을 겪은 나라입니다. 전쟁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국방력을 키우는 것에는 수조 원을 들이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에는 너무 인색합니다. 남미의 코스타리카라는 군대를 없앴습니다. 남미만큼 국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곳에서 군대를 없앴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을 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교적인 노력과 그들의 비무장이 국제사회를 움직여서 위험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유엔 평화 대학이 들어섰고 감히 누구도 그곳을 무력으로 공격한다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럽의 EU 국가들을 보십시요. 그 땅에서 수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런 나라 간에 전쟁이 있으리라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안보를 지킨다는 것은 아마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힘으로 누르는 것을 포기하게 되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이해해야 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합니다. 그것은 품격을 높여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품격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있지만,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이제 대한민국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힘이 우리에게 있는데도 게으르게 우리를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이용당하도록 내어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제주를 군사기지화 하려는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의 최전선에 제주를 세우려는 것이겠지요. 다시 제주를 희생양으로 내어 주려는 것입니까?

어느 날 엔가 전쟁도 전쟁을 연습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이 제주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비무장으로 그 첫발을 내디뎠다고 그렇게 역사에 기록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한 염원을 오늘도 해군기지 앞에서 백배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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